<개똥이네 놀이터> 독자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제가 새삼스레 늘어놓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보리 출판사가 문을 연 지 올해 구월로 만 24년을 넘기고 25년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사이에 '보리'가 낸 책은 통틀어 300종이 안 됩니다.
한 해에 500종에서 1000종까지 내는 출판사들에 견주면 참 보잘것없는 숫자입니다.
그동안 '올해의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이 단 한 권도 없습니다.
그럴 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출판사를 시작할 때부터 '보리'는 이 책이 나무 한 그루를 베어 낼 가치가 있는지 꼼꼼히 따져 본 다음에 내자고 다짐해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나무와 사람은 목숨을 주고받는 사이입니다.
'생명'의 토박이말은 목숨이고, 이 '목숨'은 '목으로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줄인 말입니다.
우리가 내쉬는 날숨에 섞여 있는 이산화탄소를 나무가 들숨으로 받아들여 자라고,
나무가 내쉬는 날숨에 섞여 있는 산소를 받아들여 우리가 살아갑니다.
그러니, 나무 한 그루의 목숨을 앗아 책으로 묶어 내려면 그 안에 담긴 글이
나무 열 그루를 심을 마음을 내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보리'에서 책을 더디 내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테면 <어린이 보리 국어사전>은 꼬박 7년 반에 걸쳐 20억 원을 들여 만들었고,
온 세계 다 뒤져 보아도 이 사전을 따라갈 만한 어린이 모국어 사전은 없을 것이라는
출판 전문가들의 과분한 칭찬을 받았습니다.
<세밀화도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권 펴내는 데 4년에서 5년 걸리기 일쑤고, 한 권에 들인 비용도 4, 5억 원이 넘습니다.
다른 출판사에서 냄직한 책은 내지 말고, 꼭 필요한 책인데
여러가지 사정으로 다른 곳에서는 내지 못하는 것을 내어 출판문화의 빈 고리를 메꾸자는 것도
'경쟁하지 말자'는 첫 다짐에서 비롯했습니다.
다행히 이 고집스러운 태도를 책을 통해서 확인하고 아껴 주신 뜻 맑은 독자들이 많이 있어서
'보리'는 추운 겨울들을 이겨 낼 수 있었습니다.
이제 보리 씨앗을 새로 뿌릴 철이 돌아왔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튼튼하게 자라게 하는 데 가장 큰 몫을 하는 것은
맑은 바람, 깨끗한 물, 더럽혀지지 않은 땅입니다.
<개똥이네 놀이터>를 읽는 우리 아이들과 <개똥이네 집>을 읽는 어머니 아버지들이
이 잡지를 징검다리 삼아 산과 들과 바닷가에서 열심히 몸 놀리고 손발 놀려
자연스럽게 이 땅의 나무들과 함께 '목숨'을 나누는
부지런한 일꾼들로 발돋움하는 것이 저희들의 바람입니다.
한겨울 모진 추위에도 '보리'는 자라는 우리 아이들한테
자연 속의 놀이마당을 여는 일을 힘껏 거들겠습니다.
다음 달은 <개똥이네 놀이터> 창간 일곱 번째 돌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개똥이네 놀이터>가 '미운 일곱 살' 개구쟁이가 되었네요.
-윤구병, <개똥이네집> 201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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