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8일에 보리출판사 지하 '개똥이네 놀이터'에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에서 6학년까지 '개똥이'들 열두 명이 마주 앉아 벌인 이야기 마당이었는데요.
처음에 저는 이런 토론회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한 반에서 토론회를 열어도 '똑똑한' 애들 한두 사람이 말을 독차지하고
나머지는 입을 다물고 우두커니 앉아 있기 십상인데,
1학년에서 6학년까지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제 주장을 내세울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토론은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저마다 주장이 또렷했습니다.
이것은 그 자리에 모인 '개똥이'들이 다른 아이들에 견주어 뛰어났기 때문에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
정답이 하나밖에 없는 '국정교과서'에만 기대어 토론이 벌어졌다면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정답이 하나뿐인데, 그 정답을 맞힌 아이에게 모두 '네 말이 맞다'고 맞장구칠 수밖에, 다른 '틀린 답'을 내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토론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뜻을 맞추어 가는 자리입니다.
토론이 끝나고 나서도 정답을 찾을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과정에서 생각의 차이를 서로 아는 것만으로도 토론의 성과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아주 드물게 '100분 토론'을 보는 때가 있는데, '100분 토론'이 끝난 뒤에도 의견이 평행선을 긋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마지막까지 혹시나 하고 지켜보다가 마침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저 자리에 나온 이들은 100분 동안에 무슨 깨우침을 얻을까,
왜 저 자리에서 저렇게 줄기차게 제 이야기만 하면서 상대방 이야기에는 귀를 막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많습니다.
아마 그 토론을 시청하는 사람들도 거의 마찬가지가 아닐까 의심이 드는 때도 있습니다.
이 어린이들이 이렇게 진지하게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 마음이 활짝 열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토론을 이끌어가는 개똥이 선생님 덕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토론을 이끌었던 분은 초등학교 교사인데,
이분은 여러 해에 걸쳐 그이가 담임을 맡았던 반에서 토론 수업을 해 왔다고 합니다.
민주 사회의 시민으로 자라려면 '토론수업'은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땅에서 토론 수업을 제대로 하는 선생님이 있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처음 확인했습니다.
'토론'도 어렸을 때부터 배우고 익혀야 하는구나 하는 것을 이 나이에 접어들어서야 겨우 깨우쳤으니
참 한심한 늙은이라는 부끄러운 생각이 드는 자리였습니다.
이영근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뒤늦게나마 저를 일깨워 준 어린 개똥이들에게도 마음으로 고맙다고 절을 올립니다.
참 기쁘고 고마운 자리였습니다.
다른 개똥이들과 개똥이 엄마 아빠도 다음 달에는 이 토론의 과정과 결과를 보게 되겠지요.
-윤구병, <개똥이네 집> 2014년 2월호
편집 살림꾼 지리소 2014-02-05
古傳을 만들면서 苦戰을 면치 못하다가, 책 만드는 일에도 사는 일에도 고전하고 있는 困而知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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