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에서 <철학을 다시 쓴다>를 2013년 철학 윤리학 심리학 부문 '최우수 교양도서'로 뽑았다고 알려왔다.
속으로 즐거웠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닌 척했다.
많이 팔려서 출판사 살림에도 보탬이 되고,
나도 인세를 좀 많이 챙겼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 같은데도
어쩐지 좋아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가지고 다니는 수첩에 '상, 또는 합리적 의심'이라는 제목으로 끼적끼적 낙서를 했다.
상을 받았다. / 일흔 넘은 나이에 처음으로, / 철학 윤리학 심리학 부문 / '최우수 저술'상이란다.
내 책 읽고 무슨 소린지 / 알 사람 이 세상에 / 아무도 없을 텐데......
모른다고 말하기 쪽팔려서 / 어떤 이가 건성으로 잘 썼다고 / 헛기침하니까 모두 덩달아서 / 그래그래 고개를 끄덕대서 / 주는 상인 것 같다.
<철학을 다시 쓴다> / 도서관에서 750만 원어치 사 주는 게 상금이다. / 도서관에 책 펼쳐 놓고 / 널브러져 자는 놈년들 늘겠다. / 두 쪽도 넘기기 전에 잠이 오는 / 초강력 수면제!
이 책의 머리말 가운데 이렇게 썼다.
글보다는 말이 먼저입니다. 따라서 우리 말이 우리 글에 앞섭니다.
'말'은 입에서 나와 귀로 들어가는, 뜻을 담은 '소리'입니다.
'말소리'에는 '뜻'만 아니라 '느낌'도 담겨 있습니다.
'말소리'의 숲으로 들어가는 길은 어린애들의 놀이마당을 거칩니다.
재잘재잘 물이 흐르고 쫑알쫑알 산새들이 웁니다.
깡총깡총 토끼가 뛰고 머루알이 조롱조롱 달려 있습니다.
얼룩 바지를 입은 새끼 멧돼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호비적호비적 흙을 팝니다.
온갖 소리 흉내, 짓 흉내가 숲을 흔들고 바람에 말 씨앗을 날립니다.
'누리'는 '누르'고 '풀'은 '푸릅'니다. '물'은 '맑'고 '바람'은 '붑'니다.
아이들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하나하나 말로 영글고 '글'이라는 '그림'으로 모래 위에 그려집니다.
'깔깔'은 웃음이 되고, '앙앙'은 울음이 되고,
억지로 '부리'는 '몸'은 '몸부림'이 되지요.
'힘 있는 사람들이 힘센 나라에서 들여온 어려운 말' 쓰지 말고,
누구나 주고받을 수 있는 우리 말로 글을 써야 한다고,
'세 살 배기 아이들도 알아듣고, 까막눈인 시골 어르신들도 귀담아들을 수있는 말'로
'참'과 '거짓' '좋음'과 '나쁨'을 가릴 수 있어야 '참 세상' '좋은 앞날'을 꿈꿀 수 있다고
귀가 닳도록 이야기하는데도 '인문학'을 코에 걸고 사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입만 벙긋하면 '담론'이 어떻게 떠들어댄다.
그런 판에 죽을 날 머지않은 늙은이가 열 마디 백 마디로 '좋은 세상' 앞당기자고 입에 거품을 물어봤자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버리면 그만인데,
'철학적 사유를 매개로 좋은 정치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추천사'를 거들떠볼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쩌다 보니, 내 책에 대한 어쭙잖은 '홍보'가 되어 버렸네! 에라, 내친 걸음이다.
'좋은 세상을 앞당기기 위한 윤구병의 철학 강의 <철학을 다시 쓴다'
너도 나도 한 권씩 사서 책장에 꽂아 놓으시라.
저절로 '최우수 교양인'이 될 수 있고, 초강력 '수면제'로서도 맞춤이니까. 하하.
-윤구병, <개똥이네 집> 201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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