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출판사 블로그

지금 초등학교를 다니는 어린이들에겐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계실
5~60년대에 자라난 어린이들이 쓴 글을 모아 이오덕 선생님이 펴낸 <일하는 아이들>.

윤구병 선생님은 1970년대에 나온 가장 귀한 책으로 이 책을 꼽는다고 하셨어요.


할미꽃


산에 할미꽃 잎이 말랐기에
파 보니 맹아리가
노랗게 올라온다.
풀로 덮어 주었다.
                                  (1959년 2월 25일)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 한 어린이가 올린 글을 보니 '이렇게 좋은 시 책은 처음이다' 라고 썼더라고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어릴 때 쓴 글에 공감하고 감동받다니.
어린 마음은 이렇게 시간이 지나도 통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찡했어요.

청개구리

청개구리가 나무에 앉아서 운다.
내가 큰 돌로 나무를 때리니
뒷다리 두 개를 펴고 발발 떨었다.
얼마나 아파서 저럴까?
나는 죄 될까 봐 하늘 보고 절을 하였다.

                                    (1969년 5월 3일)
                                  

저도 보리에서 나온 가장 좋은 책을 꼽으라고 하면 아이들이 쓴 글을 모은 책들을 꼽을 거에요.
지하철에서 <일하는 아이들>을 읽으며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져서 사람 많은 곳에서 참지 못하고 끝내 엉엉 울어버리기도 했으니까요.

'청개구리'를 읽을 때는 울다가 웃다가 했었죠.
청개구리한테 장난삼아 돌을 던지곤 발발 떠는 청개구리한테 미안해 하늘 보고 절을 했다니 얼마나 솔직하고 꾸밈없는 글이에요! 얼마나 우리 정서에 꼭 들어맞는 글이에요!

이 글을 쓴 아이들은 어떤 어른으로 자랐을까?
시를 쓴 마음을 잊지 않았을까?
궁금해지곤 했습니다.

2005년에 한길사에서 나온 이오덕 선생님 시집, <무너미마을 느티나무 아래서>을 보고서야 어른으로 자란 아이들 소식을 들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너무나 가슴 아픈 시여서 또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무너져내리는 이오덕 선생님 아픔까지 느껴져 입을 꾹 다물고 그대로 울어버렸습니다.


흔들리는 지구
                                                       이오덕

시를 가르치면서
시를 믿고
시에 기대어 살아가도록
나는 가르쳤다.
모두가
한 포기 풀로 한 그루 나무로
꽃으로
순하디순한 짐승으로
자라나기를 빌었다.

그리고 헤어진 지 30년.
또는 40년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소식은 무엇이던가?
그들은 모두 어디서 어떤 사람이 되어
무엇을 하는가?

이른봄
할미꽃 잎이 말라서
파 보니 노란 맹아리가 올라와
풀로 덮어 주었다는
그 아이는 국민학교를 4학년도 못 마치고
남의 집에 가서 식모살이를 하더니
소식이 끊겼다.
지금은 나이가 쉰쯤은 됐을 것인데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청개구리가 올라 앉아 울고 있는 나무를
장난삼아 돌로 쳤다가
그 청개구리가 놀라 발발 떠는 것을 보고
죄 지었다는 생각이 들어
하늘 보고 절했다는 시를 쓴 아이.
깊은 산골에서 겨울이면 하루 나무를
두 짐씩 하고
여름이면 또 풀을 몇 짐씩 베고
방학 때는 감자를 스무 짐씩 져 날라
그렇게 부지런하고 착하던 아이.
그 아이는 자라나면 훌륭한 시인이 될 것이라
믿었더니
여러 해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무슨 일로
세상이 얼마나 괴로웠기에
얼마나 또 큰 장난을 했기에
지은 죄 갚는다고 목숨까지 버렸을까?

"내가 군대에 가서 총에 맞아 죽을까 봐
걱정이 난다. 무서운 군대, 내 꿈에는
고마 군대 안 가고 고마 나쁜 나라와 우리 나라가
같이 동무가 되었으면..." 하고 글을 쓴 아이도
그렇게 착하고 일을 잘 하더니
30 몇 년이 지난 오늘은
어디서 또 무슨 괴로운 꿈을 꾸는가,
어제는 동창회 모임을 알리려고
10년 전에 살던 ㄱ시의 114를 돌려 전화번호를 물었더니
"XXX란 사람이 XX면에 꼭 한 사람 있는데
전화번호를 알리지 않으려고
번호부에도 올리지 않았습니다." 했다.

이른봄 담 밑에 돋아나는 새파란 풀싹 같고
가을날 개울가에서 실비단 하늘빛으로 눈부시던 달개비 꽃 같던
그 고운 마음들 다 짓밟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시도 말도 죽어버린 이 쓸쓸한 땅 거친 벌판에
다만 약빠른 재주꾼들만 살아남아 선진 복지 관광 문화 국가를 외치면서
활개치고 다니는 세상.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잿빛으로 덮인 이 낯선 거리를
쫓기는 짐승처럼 엉금엉금 기어가듯 하는 나
이제는 마지막으로 남은 우리들의 오직 하나뿐인 목숨
목숨을 지키자고 말을 살리자고
지팡이 짚고 걸어가는 길이 왜 이다지도 어지러운가
멀미가 난다.
땅이 흔들린다.
지구가 흔들리는구나.

                                            (1998.12.12)


이렇에 고운 시를 쓴 아이들이 약빠른 재주꾼들에 밀려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으로 살아야만 하는 세상.
한 평생 오로지 아이들을 위해 그 힘든 길을 걸어오신 이오덕 선생님께서
쫓기는 짐승처럼 엉금엉금 기어가야만 하는 세상.

그래도 그 길이 옳다는 것을 알기에 이오덕 선생님이 가셨던 길을 가고자 합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고운 시를 쓸 수 있게 지켜주는 선생님과 어른들이 많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이 고운 마음을 지킬 수 있을 테니까요.

<무너미마을 느티나무 아래서> 첫머리에 실린 권정생 선생님 글을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자꾸 눈물이 납니다.

선생님의 시를 읽으면서 계속 머리를 갸우뚱거렸습니다. 과연 선생님이 쓰신 건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문학비평문을 쓰실 때의 칼날 같은 말새도, <우리글 바로쓰기>에서 따지고 대드는 듯한 당당한 모습도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한쪽에 다소곳하게 앉아서 어머니께 보채는 응석받이 어린이가 칭얼거리는 듯한 노래였습니다. 늙으면 도로 어린이가 된다더니 선생님이 이렇게 늙으신 모습으로 우리 앞에 계시다는 게 가슴이 찡하기도 했습니다.
:

권정생 선생님





보리

보리 2010-07-27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자. 수익이 나면 다시 책과 교육에 되돌리자. 보리출판사의 출판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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