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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 깡패인가 혁명가인가"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이야기, 월간 <작은책> 2010년 5월호 기획 특집
임승수 |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저자


우리 나라 절반도 못살지만 무상 의료, 무상 교육이 실시되고 있는 나라, 베네수엘라



네수엘라는 남미 대륙의 북쪽 끝에 있습니다. 인구는 한 2,700만 명 정도 되고 땅덩어리가 한반도의 한 다섯 배 됩니다. 산유량이 세계 5위쯤 됩니다. 중남미 지역에서 석유가 제일 많이 나는 나라죠. 최근 새로운 석유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는 ‘오일샌드(원유가 섞인 모래나 바위)’까지 다 치면 산유량이 세계 1위랍니다. 석유가 걸프 만보다 여기 더 많이 묻혀 있대요. 석유가 펑펑 나니까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잘살겠구나 하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런데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 아시죠? 옛날 스탠다드오일 사 사장이죠. 록펠러가 베네수엘라에 석유 난다는 소리를 듣고 거기다가 파이프를 꽂아서 다 윗동네로 빼 간 거예요. 베네수엘라 석유가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것이 아니고 거의 다 록펠러 거니까 석유가 많이 난다고 해서 베네수엘라 사람들한테 돌아오는 게 없죠. 베네수엘라 GDP가 2006년 기준으로 7,200달러였어요. 우리나라가 지금 한 17,000달러 되죠? 2만 달러까지 갔다가 좀 떨어졌는데, 아무튼 쉽게 얘기하면 베네수엘라가 석유가 많이 난다고 해도 우리나라 절반도 못사는 나라라는 거예요.

근데 우리나라 절반도 못사는 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냐? 차베스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무상 의료, 무상 교육이 실시되고 있다는 거예요. 돈도 없는 나라니까 그거 뭐 대충 감기 주사 몇 방 놔 주고 무상 의료라고 하는 거 아니냐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가 봤어요. 병원 갔는데 MRI를 공짜로 찍어줘요. 여기서 찍으려면 얼마 들어요? 50만 원? 하여튼 돈 많이 들어요. 임플란트도 공짜에요. 여기서는 한 200만 원 들잖아요? 암센터 가 봤더니 암 치료도 공짜에요. 외국인도 공짜로 치료해 줘요. 소아암센터에 갔는데 소아암에 걸린 볼리비아 애를 데려다가 치료해 주고 있어요. 어쨌거나 GDP가 우리나라 절반도 안 되는 나라가 암 치료까지 무상 의료를 하고 있는 겁니다.

지방 선거 시즌이니까 제가 2006년에 지방 선거 나갔을 때 얘기를 좀 할게요. 그때 제가 무상 의료, 무상 교육 이야기를 막 하니까 사람들이 코웃음 쳐요. “아이고 이 사람아 무상 의료, 무상 교육 그거 좋은지 누가 모르나? 근데 우리나라 요즘 얼마나 먹고살기 힘드냐? 이렇게 먹고살기 힘든데 그게 가당키나 한 얘기냐?” 그런데 보세요. 우리나라 절반도 못사는 나라에서도 진보적인 정권이 들어서니까 바로 암 치료, MRI까지 다 공짜로 되잖아요. 도대체 그 나라는 어떤 과정을 거쳐 가지고 그런 사회를 만들어냈을까요? 그걸 알면 우리도 살짝 벤치마킹 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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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특집 강좌, 차베스, 깡패인가 혁명가인가

우리처럼 IMF한테 돈빌리고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여 경제가 망가져버려

1989년 2월 27일, 이날이 베네수엘라 국민들한테 굉장히 중요해요. 베네수엘라도 우리와 비슷하게 보수 양당 체제가 오랫동안 계속됐어요. 이 당들이 서로 번갈아 가면서 집권했는데, 1980년대 말에 베네수엘라에 외환 위기가 일어나요. 대통령 선거가 1988년에 있었는데, 아까 말씀드린 두 개의 당 중에 민주행동당의 카를로스 페레즈라는 사람이 당선됐어요. 그래서 우리도 그랬듯이 IMF한테 급전을 빌립니다. 아시다시피 IMF는 돈을 한꺼번에 안 빌려 줘요. 뭉칫돈을 쪼개서 조금씩 빌려 주는데, 그때마다 단서 조항을 달아요. 요만큼 빌려 줄 테니까 주식 시장을 개방해라, 요만큼 빌려 줄 테니까 공기업 민영화해라, 요만큼 빌려 줄 테니까 노동법 고쳐라, 하는 식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신자유주의식 경제 시스템을 강요하는 거예요. 그걸 ‘IMF 신탁 통치’라고 하잖아요. 돈을 꾸는 대신 경제 정책에 대한 권한을 그쪽에다 다 넘기는 거예요. IMF의 돈을 꾼 나라들의 경제가 신자유주의로 다 개방되면 결국 어떻게 됩니까? 우리나라도 알짜 기업들이 똥값에 외국에 팔리고, 공기업 민영화되고, 채권 시장 열리고, 투기 자본 들어오고, 그렇게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제국주의 자본들이 들어와서 싹쓸이해 갔잖아요.

IMF가 이렇게 소수의 기득권 나라들을 위해서 돌아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요. IMF 회원국이 180여 개국 되는데, 의결을 위한 투표권이 한 국가에 한 표씩 있지 않아요. 1달러에 한 표, IMF 자금을 댄 만큼 투표권이 있는 거예요. 전체 기금이 100이라면 36~37을 미국이 냈어요. 그럼 100표 중에 37표가 미국한테 있겠죠? 친미 국가들 표를 다 합치면 과반이 넘죠. 사실상 미국의 입장대로 다 결정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미국의 투기 자본들이 다 들어가서 돈 빌린 나라를 거덜 내는 겁니다.

IMF가 급전 꿔 주는 나라에 항상 강요하는 것이 고금리 정책이에요. ‘니들이 이자를 많이 줘야 외국 돈들이 투자를 할 것 아니냐. 지금 나라에 돈이 없으니 외국에서 돈이 들어와야 경제 살릴 거 아니냐’ 하고 명분을 내세워요. 그런데 여기 굉장히 재밌는 게 숨어 있어요. 외환 위기가 왔으니 우리나라 주식 시장이 박살났겠죠? 그 상황에서 은행이 고금리 정책을 쓴다면 은행에다 돈을 넣으면 이자를 많이 받을 거 아니에요. 주식이 똥값이니까 주식 시장에 있던 돈이 은행으로 가겠죠. 그러면 주식 값은 똥값보다 더 떨어져서 완전 ‘더블 똥값’이 되는데, 이때 주식을 외국의 투기 자본들이 싹 걷어 갑니다. 그러고 나면 금리를 조금씩 내리라고 해요. 금리를 내리면 또 은행에서 돈이 빠져서 주식 시장으로 다시 들어가죠. 주식 시장에 돈이 들어가면 주식 값은 더 오르겠죠. 그러면 외국 투기 자본들은 똥값일 때 싹 걷어 간 주식을 팔아서 차익을 엄청나게 거둬들인단 말이죠. 이게 IMF의 매뉴얼이에요.

그래서 미국이 외환 위기를 일부러 일으킨다는 얘기까지 있어요. 외환 위기가 일어나야 IMF돈을 꿔 주면서 그 나라의 금융 시장을 한순간에 다 열어젖힐 수 있잖아요. 제국주의 입장에서 이렇게 행복한 게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IMF 때문에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이식받은 나라가 100개국 정도 돼요. 그래서 이렇게 신자유주의가 어느 날 갑자기 전 세계로 급격히 퍼진 겁니다. 베네수엘라도 IMF의 돈을 꿨습니다. 1980년대에는 IMF의 대출 자금 가운데 80퍼센트가 중남미에 가 있었어요. 이게 무슨 이야기냐면 중남미가 IMF에서 급전과 함께 신자유주의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1980년대에 싸그리 망했어요.

베네수엘라도 우리나라가 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신자유주의 경제 프로그램을 하니까 경제가 완전히 망가집니다. 교통비가 너무 많이 올라서 하루 종일 일해서 받는 일당보다 왕복 교통비가 더 비쌀 정도가 됐습니다. 물가가 미친 듯이 뛰고 경제가 망가지니까 사람들이 꼭지가 돈 거예요. 아까 말씀드린 1989년 2월 27일에 수도 카라카스를 중심으로 민중 봉기가 일어납니다. 그러자 페레즈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군대가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쏴서 수천 명이 죽었어요. 베네수엘라가 못사는 나라고 정치도 후진적이니까 그런 거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우리나라가 대통령 직선제 1987년에 됐죠? 베네수엘라는 1950년대도 대통령 직선제였어요. 굉장히 예전부터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돼 있었고, 중남미에서 이른바 미국식 정당 정치 시스템이 가장 선진화된 나라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 나라에서 그놈의 신자유주의 때문에 폭동이 일어나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자국의 민중들을 총으로 쏴 죽였어요.

이 일을 계기로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뭔가 느낀 거죠. ‘아, 보수 양당 다 똑같은 놈들이구나. 번갈아서 대통령 만들어 줬더니 우리를 대변하는 놈들 하나도 없구나. 우리가 못 살겠다고 거리로 나갔더니 총까지 쏘는구나.’ 이게 세계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라는 생각하는 까닭은 제가 알기로 제3세계에서 신자유주의에 반대해서 일어난 최초의 대규모 항쟁이기 때문입니다. 멕시코의 사파티스타도 1994년에 봉기했잖아요. 이건 1989년이에요. 이 민중 봉기를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서 일어났다고 ‘카라카소’라고 하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베네수엘라에 급격한 변화의 기운이 돌게 됩니다.

콜럼버스 이후로 스페인 사람들이 중남미에 들어와 죽인 선주민이 8천만, 쿠바 100만명은 모두 죽여

여기서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고 차베스. 1954년에 태어났는데 집이 찢어지게 가난했어요. 그런데 집안이 가난한 데에 내력이 있어요. 차베스의 외증조부가 어떤 사람이랑 굉장히 친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사람이 시몬 볼리바르입니다. 우리한테는 잘 안 알려져 있지만 중남미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분입니다. 이분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중남미 역사를 잠깐 살펴봐야 합니다. 중남미 사람들은 죄다 스페인 어를 쓰죠. 아시다시피 중남미는 오랫동안 스페인의 식민지였죠. 콜럼버스 이후로 스페인 사람들이 중남미에 들어와서 선주민 8천만 명이 죽었어요. 쿠바에서는 100만 명이 살았다는데 다 죽였습니다. 다 죽여 놓고 험한 일 하기 싫으니까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사 온 거예요. 그렇게 스페인 제국주의가 한참 동안 나쁜 짓을 많이 했는데, 볼리바르가 그런 스페인 제국주의에 맞서 싸워서 중남미의 6개국을 해방시킨 사람이에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니카라과, 파나마, 콜롬비아.

제국주의와 맞서싸워 중남미를 해방시켰으나 지방 호족들에게 쫓겨난 시몬 볼리바르

볼리바르는 집안이 아주 좋았어요. 스페인에서 이주한 귀족의 집안입니다. 대귀족도 보통 대귀족이 아니에요. 쉽게 말하면 삼성 이건희 아들 이재용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집이 잘 사니까 가정 교사를 들였는데, 시몬 로드리게즈라는 이 가정 교사가 쉽게 얘기하면 전교조 교사였던 거예요. 이 사람이 볼리바르한테 ‘참교육’을 한 겁니다. 루소의 공화주의 사상, ‘사람은 다 평등하다’ 하는, 지금이야 상식인 이야기들을 해 준 거죠. 그래서 볼리바르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 거죠. 그래서 돈도 있고 권력도 좀 있으니까 그걸로 베네수엘라인민해방군을 조직한 거죠. 스페인 군대랑 전쟁을 하다가 아야쿠초전투라는 결정적인 싸움에서 이겨서 중남미를 해방시킵니다.

사람들이 볼리바르한테 황제가 되라고 했지만 거부했어요. 모두가 평등한데 자기가 황제가 돼서 신분이 생기면 안 된다고 공화국을 선언하고 그 공화국의 대통령이 됐어요. 근데 볼리바르는 스페인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신분제가 없어지면 민중이 평등한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왜냐면 볼리바르랑 같이 스페인에 맞서 싸웠던 세력 가운데 이른바 지방 호족들이 있었던 겁니다. 자기 군대도 가지고 있고, 땅도 있어서 대장질 하면서 잘살았는데 스페인 애들이 간섭을 하니까 스페인 제국주의만 몰아내면 자기들이 여기서 대장질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볼리바르랑 같이 스페인에 맞서 싸운 거죠. 근데 스페인 제국주의가 나가고 나니까 스페인 애들 하던 나쁜 짓을 이 사람들이 자기 지역에서 하게 된 거예요.

볼리바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토지도 나눠 주려고 했는데 이 호족들은 그거 절대 찬성 못하겠죠. 그래서 이 사람들이 규합해서 볼리바르를 쫓아낸 거예요. 볼리바르는 물론 볼리바르랑 같이 혁명을 했던 사람들이 다 밀려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랑 비슷한 거예요. ‘친일’하던 놈들이 아직도 ‘친미’하면서 해먹느라고, 항일운동을 했던 분들은 물론 후손들까지 굉장히 힘들게 사시잖아요. 차베스네 집안도 그렇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거꾸로 이야기하면 혁명의 전통이 있는 집안이기도 합니다.

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 사관 학교에 들어간 차베스

차베스는 어려서부터 집안 어른들한테 그런 이야기 들으면서 자란 거 같아요. 그런데 어린 시절 차베스의 꿈은 야구선수였습니다. 그런데 집에 돈이 없어서 야구 방망이도 못 사 주고, 글러브도 못 사 주거든요. 야구를 제대로 하려면 수도인 카라카스에 있는 야구단에 들어가야 하는데, 차베스가 수도인 카라카스에 근거지를 마련할 유일한 방법은 사관 학교에 들어가는 거였어요. 그때 베네수엘라의 사관 학교는 우리나라의 옛날 육사처럼 집안은 가난하지만 똑똑한 사람들의 출세 코스 같은 거였거든요. 차베스도 공부를 참 잘해서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사관 학교에 입학했어요. 그런데 차베스는 원래 사관 학교를 1년 이상 다닐 계획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뭐 하려고? 야구 하려고.

그렇게 야구 소년이었던 차베스가 야구의 꿈을 접게 만든 계기가 있죠. 차베스는 책을 잘못(?) 읽었어요. 쉽게 말하면 <작은책> 같은 책을 정기구독 한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야구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구나’ 하고 느낀 거죠. 석유는 다 미국이 빨아 가고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다 가난하게 사니까, 뭔가 잘못됐단 말이죠. 그래서 동료 군인들한테 <작은책> 같은 걸 퍼트린 거죠. 그러다가 징계도 받고 그랬던 모양이더라고요. 베네수엘라 군대가 이런 차베스를 받아 줄 정도로 진보적인 곳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때만 해도 베네수엘라를 침략한 침략자인 콜럼버스 동상에 경례를 붙일 정도로 썩은 곳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콜럼버스 동상에 경례를 붙이지 않아요. 지금은 선주민 저항운동가의 동상에 경례를 붙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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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특집 강좌, 차베스, 깡패인가 혁명가인가

좌익 빨치산 잡는 임무를 맡은 차베스

아무튼 차베스가 사관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맡은 임무가 좌익 게릴라를 잡는 것이었습니다. 쿠바혁명이 1959년에 성공했잖아요. 쿠바의 바티스타 군부 독재 정권이 얼마나 민중들의 고혈을 짰습니까? 그 바티스타 군부 독재가 쉽게 얘기하면 빨치산 운동으로 무너진 거 아닙니까. 카스트로를 중심으로 한 빨치산 운동, 좌익 게릴라 운동과 도시에 있는 노동자 서민들의 봉기가 결합해서 나라를 뒤집었단 말이죠. 쿠바가 그런 방식으로 혁명에 성공하고 노동자 서민이 주인 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니까, 다른 중남미 사람들도 ‘아, 쿠바식으로 하면 우리도 혁명할 수 있겠구나’ 했겠죠. 그래서 그때 대세가 빨치산 운동, 좌익 게릴라 운동. 그런 생각을 ‘체게바라주의(포코주의)’라고 합니다.

베네수엘라도 마찬가지였어요. 혁명하겠다는 사람들은 총 들고 산에 들어갔단 말이죠. 그 사람들이 책도 썼는데 차베스가 공부한 책들이 다 그런 책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군인으로서 자기 임무가 좌익 빨치산을 잡는 건데, 잡을 수가 있어요? 심정적으로 동조하는데. 그래서 임무를 전혀 수행 안 하고 책만 읽으면서 상부에서 보급품 나오면 가난한 농민들한테 나눠 주면서 살았대요. 그런데 하루는 상부에서 한 지휘관이 차베스의 부대로 임무 지휘를 와서는 부하를 시켜서 농민 한 명을 잡아다가 의자에 묶어 놓고 막 고문을 하는 거예요. 차베스가 깜짝 놀라서 뭐하는 거냐고 물으니 빨치산을 잡아 가지고 심문하고 있다는 거예요. 차베스가 이 사람이 무슨 빨치산이냐, 어제 요 앞 밭에서 씨 뿌리던 사람인데 하고 항변했는데, 다음 날 그 농민을 포함해서 그 지역의 농민들 여럿이 시체로 발견됐어요.

그 지휘관이 다 죽인 거죠. 왜? 실적 올리려고. 죽은 자는 말이 없잖아요. 이 사람들 다 빨치산이라고 상부에 보고하면, 막말로 고과 점수 올라갈 거 아닙니까? 차베스가 그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습니다. 군대를 그만두고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형한테 상담을 합니다. 차베스의 형인 아단 차베스는 물리학을 전공해서 대학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었거든요. 차베스가 형한테 대학 들어가는 것을 좀 도와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뜻밖에 형이 고백을 하는 거예요. 알고 봤더니 형은 비밀 혁명 조직인 베네수엘라혁명당(PRV)의 간부였던 거죠. 16살 때부터 활동했는데 비밀이니까 가족한테도 말 안 했겠죠.

그래서 차베스가 형과 함께 베네수엘라혁명당의 사령관인 더글러스 브라보를 만났어요. 차베스처럼 진정으로 민중을 생각하는 군인이 군대 안에 있어야 한다는 브라보의 만류 때문에 차베스는 그때부터 예전과는 다른 고민을 가지고 군대에 남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군인들을 좀 더 나라를 사랑하고 민중을 사랑하는 군인으로 만들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군대 안에 조직을 세웁니다. '볼리바르혁명운동(MBR-200)'. 조직 이름에 ‘200’이 붙은 것은, 이 조직을 1983년에 만들었는데 볼리바르가 태어난 1783년부터 200년이 지난 해라고 해서 붙은 겁니다.

그러고 나서 차베스는 한동안 정훈 장교로 일합니다. 정훈 장교는 사관생도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장교입니다. 승진도 미뤄가면서 5년 동안 그 일을 했는데, 왜 그랬겠습니까? 젊은 사관생도들에게 올바른 사상을 가르치기 위해서 그런 거죠. 그러면서 진보적인 군인들을 많이 모아 나갔습니다.

실패한 혁명에 국민들은 감동

그러던 가운데 아까 말씀드린 1989년 2월 27일의 카라카스민중봉기가 일어난 겁니다. 정권이 군대를 투입해서 국민들을 총으로 쏴 죽였다고 말씀드렸죠? 이 사건 때문에 군 내부도 크게 동요하게 됩니다. 아무리 군대가 보수적인 조직이라고 해도 일단 군대는 외적하고 싸워서 국민들을 지키라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자국민을 총으로 쏴 죽였으니 아무리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군인이라도 마음이 어땠겠어요.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 했겠죠.

그래서 불만을 가진 수많은 군인들이 MBR-200에 가담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차베스도 자국민을 총으로 쏴 죽이는 이런 정부는 더 이상 놔 둘 수 없다고 ‘거사’를 일으킬 날짜를 잡죠. 1992년 2월 4일. 아까 말한 더글러스 브라보로 대표되는 민간 운동 진영과 차베스의 군부 세력 사이에는 일상적인 교류가 있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차베스의 군대가 먼저 일어나서 대통령을 체포하고 주요 기관을 장악하면 민간에서는 그것을 지지하는 데모를 하겠다고 작전을 짠 거죠. 그때 차베스는 공수 부대의 연대장으로 있었어요. 왜 공수 부대에 갔을까요? 최강 물리력을 가진 부대니까요. MBR-200의 다른 한 사람은 기갑 부대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최강 물리력을 가진 부대에 다 들어간 거예요.

그때 베네수엘라 군대 규모가 한 25,000명 정도 되는데, 이 가운데 10퍼센트 정도 되는, 2천 몇백 명 정도가 이 혁명 운동에 가담했습니다. 핵심인 기갑 부대와 낙하산 부대, 공수 부대 등을 위주로 해서요. 그런데 이 정도 수의 군대가 움직일 정도면 아무리 보안을 유지한다고 해도 정보가 다 새죠. 그래서 미리 정부에서 다 대책을 세워 논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민간 운동 진영에서 지지 엄호하는 데모를 하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날 안 나왔어요. 그러니까 모양새가 완전히 그냥 쿠데타가 돼 버린 거예요

뒷날 인터뷰에서 차베스는 그때 자기가 ‘혁명적 처녀성을 잃었다’ 하고 표현했습니다. 배신을 당했다는 것이죠. 그런 우여곡절 끝에 봉기는 실패합니다. 군인 10퍼센트가 움직였는데 나머지 90퍼센트랑 교전을 벌여 봐야 중과부적에, 무의미한 살상만 일어나는 거죠.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정부 측과 교섭을 하고 기자 회견을 열었죠. 차베스가 그 자리에서 ‘혁명 운동에 나선 동지들 너무 고맙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 무의미한 살상을 피하기 위해서 여러분이 무장을 해제해라. 나중에 더 좋은 때가 올 거다.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내가 다 지겠다’ 하는 내용의 연설을 합니다. 그러고 나서 당연히 체포됐고 감옥에 갔습니다.

그런데 이 방송을 온 국민들이 다 보고 감동한 거예요. 특히 가난한 사람들은 나라가 망해 가는데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일어나는 군인이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가 다 책임지겠다는 모습에 감동했다고 해요. 왜냐하면 정치인들은 나라를 말아먹고도 한 명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때부터 차베스가 전국으로 알려지게 된 거죠. 지금 베네수엘라에서는 이 운동을 기리기 위해서 해마다 2월 4일에 대규모 퍼레이드를 해요. 왜냐하면 자신들의 혁명 운동의 기원을 여기에서 찾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같은 해 11월에 군부의 무장 봉기가 한 번 더 일어납니다. 차베스가 감옥에서 배후 조종을 해서 일어났는데, 그것도 실패해요. 그런데 재밌는 건 대부분의 국민들이 군부의 무장 봉기를 지지한다는 거예요. 그건 페레즈 대통령은 사실상 정치적 식물인간이라는 얘기죠. 상황이 이러니까 보수 정당 쪽에서도 페레즈 대통령을 버립니다. 그래야 국정 운영이 될 거 아닙니까. 보수 정당들이 차지한 의회에서 부패 혐의로 탄핵을 시켜 버려요.

1993년 대통령 보궐 선거에서 라파엘 칼데라라는 사람이 당선됩니다. 이 사람은 원래 보수 양당 가운데 하나였던 기독교사회당(COPEI) 출신인데, 이회창이 한나라당에서 튕겨져 나와서 자유선진당 만든 것 비슷하게 새로운 당을 만들어서 당선돼요. 왜냐하면 카라카스민중봉기 이후 보수 양당 체제가 완전히 무너졌으니까 뭔가 새로운 세력인 척해야 됐거든요. 그리고 차베스를 지지한다는 연설까지 한 거예요. 그렇게 당선이 됐는데, 사람이 어디 가겠어요? 신자유주의 정책을 그대로 밀어붙였죠. 그래도 약속 하나는 지켰어요. 차베스를 비롯해 무장 봉기한 군인들을 1994년에 감옥에서 다 풀어 줬어요. 쿠데타 군이 2년 만에 풀려나오는 것 본 적 있어요? 예뻐서 그랬을까요? 차베스를 풀어 줘야 자기 인기가 올라가니까 그런 거죠.

차베스, 대통령이 되다

차베스가 감옥에서 나와서 고민을 하죠. MBR-200은 무장 봉기를 두 번이나 실패하면서 와해됐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 조직이 다른 방식으로 성장했어요. 군대 안에 이런 조직이 있다는 걸 알고 민간 운동 진영에서 많이 합류한 거예요. 그렇게 군부와 민간 운동 진영 사이에 연합체가 만들어진 거죠. 차베스는 전국을 돌면서 사람들을 조직하고 토론을 한 거죠. ‘우리가 항쟁을 두 번 일으켰는데 다 실패했다. 지금 사실상 다시 이런 항쟁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기가 힘들다. 우리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이 썩어 빠진 세상을 갈아엎고 혁명을 할 것인가.’ 토론 결과, 1998년 대통령 선거에 적극 참여하기로 한 거예요.

그 전까지는 선거는 다 거부했어요. ‘선거가 무슨 의미가 있냐. 항쟁으로 혁명 정부를 수립하자’ 하는 전술이었는데 선거에 참여하기로 입장을 바꿨어요. 이때 차베스 욕 많이 먹었죠. “차베스도 썩었어.” “개량이야.” 안 봐도 비디오죠. 이렇게 대통령 선거에 적극 참여하기로 하면서 정한 슬로건이 ‘제헌 의회 소집’입니다. 헌법을 완전 새로 쓰겠다는 거죠.

제헌 의회 이야기를 하려면 1970년대 칠레를 얘기해야 할 것 같아요. 살바도르 아옌데라는 대단히 진보적인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여러 진보 정당, 사회단체들이 모여서 칠레인민연합이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선거에서 이깁니다. 요즘이야 중남미에 죄다 좌파 정권이 들어섰으니 뭐 새삼스러울 게 있겠냐 하시겠지만, 그때는 선거를 통해서 진보 정권이 들어선 것은 큰 충격이었어요. 왜 그러냐면 그때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들은 독재 국가였단 말이에요. 독재 국가에서 선거는 다 ‘쇼’죠. 박정희나 전두환 시절에 200명 따로 뽑아서 체육관에서 대통령 뽑는데, 누가 “여러분, 선거로 세상을 바꿉시다!” 하면 사람들이 호응을 하겠어요? 불가능하잖아요. 그러면 선거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해야 될 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때 진보 정권을 세우는 유일한 방법은 무장 투쟁이었어요. 그래서 체 게바라가 무장 투쟁하고 중공도, 베트남도 다 그랬단 말이에요. 그런 상황에서 칠레에서 선거를 통해서 집권했단 말이죠.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요. 의회 과반수를 보수 양당이 잡고 있는 거예요. 아옌데 행정부가 개혁 법안을 의회에 제출해도 의회에서 통과시켜 주지 않죠. 게다가 아옌데가 임명한 장관들을 한 명도 남김 없이 다 탄핵해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죠. 이렇게 지지부진한 가운데 여러분들이 이름을 많이 들으셨을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피노체트는 아옌데가 임명한 군 참모 총장이었어요. 근데 알고 봤더니 CIA의 간첩인 거예요. 스쿨오브아메리카(SOA)라는 미국의 군사 학교가 있습니다. 그때는 파나마에 있다가 지금은 미국으로 옮겼는데, 중남미에 있는 젊은 장교들 데려다가 교육하는 곳입니다. 여기 출신 군부 독재자들이 굉장히 많아요. 피노체트도 그 가운데 한 명입니다.

마침 날짜도 인상적인 9월 11일이었는데, 피노체트 쿠데타의 작전명이 영화 제목으로 유명한 ‘산티아고에 비는 내리고’입니다. <칠레전투>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대통령궁은 불타고 있고, 비행기가 날아가다가 거기다 미사일을 쏴요. 그 안에서 아옌데 대통령은 카스트로한테서 선물 받은 반자동 소총으로 싸우고 있어요. 그러다가 죽죠. 진짜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 그때 칠레에서 있었어요. 그렇게 피노체트 정권이 들어서고 몇 주 사이에 수만 명이 죽거나 실종됐어요. 쉽게 말씀드려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당원들이 다 사라졌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빨리 되시죠?

이렇게 칠레는 선거를 통해서 집권을 했지만 보수 반동 세력들의 불법적인 행위에 의해 정권이 뒤집어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됐어요. 베네수엘라도 마찬가지가 될 수 있죠. 차베스가 대통령 선거에 나섰지만,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해도 이렇게 되지 말란 법은 없는 것 아니에요?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고민한 게 제헌 의회였어요.

차베스가 대통령 선거 참여하기로 하면서, MBR-200은 이게 비합법 조직이니까 ‘제5공화국운동(MVR)’이라는 정당을 만듭니다. 기존 헌법을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헌법을 만들면 공화국이 바뀌잖아요. 제4공화국에서 제5공화국으로. 그래서 이 당의 이름에도 제헌 의회를 소집해서 헌법을 새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은 겁니다. 그리고 이 정당을 중심으로 해서 ‘애국의기둥(PPC)’이라는 선거 연합을 꾸려서 1998년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거예요. 그래서 56퍼센트의 득표율로, 최다 득표로, 최연소 대통령으로 당선됐어요.

한 번에 당선됐어요. 왜?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보수 양당 체제가 완전히 무너졌으니까. 베네수엘라 인구의 80퍼센트가 빈민이었어요. 이 사람들은 새로운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과 두려움이 없어요. 원래 사람은 잃을 게 있을 때 두렵잖아요. 너무 상황이 심각했기 때문에 차베스를 중심으로 한 대안 세력이 굉장히 강하게 뭔가 보여 주니까 사람들이 확 모이는 거죠.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이듬해에 취임하고 우리나라도 방문했어요. 경희대에서 정치학 명예박사 학위 받고 갔어요.

법을 바꾸다, 혁명을 하다.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법안 해석이 충돌할 경우 무조건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한다'
'정부가 민중, 국민들의 말을 안 들을 경우, 국민들이 물리적으로 타도할 수 있다'

취임하자마자 국민 투표를 했습니다. 그 내용은 ‘헌법을 새로 만들기 위한 제헌 의회를 소집해도 좋습니까’ 하는 거였어요. 헌법을 새로 만드는 것은 엄청난 일이기 때문에 국민 투표에 부쳐서 승인받았어요. 그 다음에 기존의 의회는 새로운 헌법을 제정할 권한이 없으니 새로운 헌법을 제정할 의회, 제헌 의회를 구성을 하는 의원 선거를 전국적으로 실시했어요. 131석 가운데 120석을 쓸었습니다. 그 다음에 제헌 의회를 개원했겠죠. 6개월 시한으로 미리 준비해 놓은 새로운 헌법의 초안을 제헌 의회에 넘깁니다.

그 헌법의 내용을 보면 기가 막혀요. 일단 조항이 350개나 된다는 게 웃기죠. 우리나라는 백 몇십 개밖에 안 되는데. 그리고 기막힌 내용이 있어요. ‘사용자와 노동자 간의 법안 해석이 충돌할 경우 무조건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한다’ 하는 게 헌법에 들어가 있어요. 게다가 마지막 350조는 ‘정부가 민중, 국민들의 말을 안 들을 경우, 국민들이 물리적으로 타도할 수 있다’ 하는 내용의, 이른바 ‘민중 저항권’을 보장하는 내용입니다. 베네수엘라에 갔더니 사람들이 이 헌법을 정말 사랑해서, 요만한 헌법 책을 가지고 다니면서 보여 주더라고요. ‘이걸로 부시를 쏘겠다’ 하고요.

그 헌법을 또 국민 투표에 부쳐서 승인을 받았어요. 이제 새로운 헌법이 발효된 건데, 그러면 우선 차베스는 다시 민간인이 된 거에요. 왜? 차베스는 옛 헌법에 근거해서 대통령이 된 사람이잖아요. 국회의원들도 다 마찬가지죠. 국가 기구가 완전히 다 해체됐어요. 그러면 새로운 헌법에 근거해서 새로 국가 기구를 수립해야겠죠. 그래서 2000년에 대선, 총선, 지방 선거를 한꺼번에 다 치릅니다. 차베스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고, 의회에서도 압도적 과반수를 차지합니다. 차베스가 지금 3선 대통령인 이유가 이것 때문이에요. 1998년에 되고 2000년, 2006년에 또 됐잖아요. 결국 새로운 헌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국가 권력을 통째로 틀어쥐게 된 거에요. 그야말로 혁명을 한 거예요, 혁명.

차베스 깡패인가? 혁명가인가? 그 기준은 민주주의.

차베스가 깡패인지 혁명가인지 알려면, 기준을 가지고 평가해야 할 거 아니에요? 제가 보기에 그 기준은 민주주의라는 거예요. 민주주의를 확대, 강화시키는 사람이라면 혁명가일 것이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사람이라면 깡패일 것입니다. 그럼 또 민주주의가 뭔지 알아야 그게 확대, 심화, 강화되는지 아니면 후퇴하는지 알 거 아니에요. 민주주의가 뭐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게 민주주의잖아요. 한 번 더 물어볼게요. 그러면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게 뭐죠? 선거 때 한 표 찍는 거? 선거 때 한 표 찍어서 지금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데요? 5년마다 한 번씩 표 구걸하고 그 다음에는 무시하잖아요. 그게 민주주의인가요?

주인이 된다는 게 도대체 뭐냐 이거에요. 역사 속에서 주인 행세를 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주인 행세를 할 수 있었는지를 보면, 주인이 될 수 있는 요건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인류가 노예제 사회와 봉건제 사회를 거쳐 지금 자본주의 사회까지 왔잖아요. 노예제 사회는 한쪽에 노예가 있고 다른 한쪽에 노예를 부리는 노예 주인이 있는 사회란 말이에요. 단도직입적으로 여쭤 볼게요. 둘 중에 누가 그 사회의 주인입니까? 노예 주인이죠. 왜? 이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를 가지고 있어요. 하나는 경제 권력, 즉 생산 수단이고, 또 하나는 정치권력, 즉 국가 권력이죠.

이 사람들이 토지를 가지고 있고, 노예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경제 권력을 가지고 있죠. 경제를 자기 마음대로 운용할 수 있잖아요. 뿐만 아니라 고대 로마에서 집정관이니 원로원이니 하는,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 국회의원 같은 것들을 노예들이 했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어요? 다 노예 주인들이 한단 말이에요. 국가 운영에 대한 정치적 결정을 하는 권력을 이 사람들이 독점적으로 가지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 사회의 주인이란 바로 그 사회의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란 겁니다. 구체적으로는 국가 권력과 생산 수단이죠.

봉건 사회에는 농노와 지주가 있었는데, 둘 중에 누가 주인이에요? 지주가 주인이죠. 지주가 생산 수단인 땅을 가지고 있었고, 판서니 정승이니 다 양반 놈들이 하면서 정치권력을 가지고 있잖아요.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을 틀어쥐고 있으니까 그 사람들이 그 사회의 주인인 거예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가 이걸 가지고 있는지 한번 볼까요? 얼마 전에 이건희 회장님이 복귀하셨죠. 대단한 사람이에요. 얼굴 두께가 11미터인 거 같아요. 그분이 어느 정도의 권력이 있냐? 그분이 결심하면 20조 원을 꼴아박을 수 있어요. 삼성자동차 얘깁니다. 대부분 삼성이 자동차 만드는 건 미친 짓이라고 했어요. 완전 과잉 생산이잖아요. 하지만 한 사람의 결심으로 20조 원을 꼴아박았고, 완전히 날아갔죠. 채권단들이 난리를 쳐도 아무도 손 못 대요. 왜? 그 사람이 경제 권력을 가지고 있고, 그 사람이 모든 걸 통제할 수 있으니까. 소수의 재벌, 대기업들이 우리나라의 생산 수단의 핵심들을 통제하잖아요. 국민들이 그거 통제할 수 없단 말이에요.

국가 권력을 볼까요? 다 ‘삼성 장학생’이죠. 국민들의 95퍼센트가 노동자 서민이고 나머지 5퍼센트가 ‘좀 되는’ 분들이라면, 국민을 대변한다는 국회도 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290명은 노동자 서민을 대변하고 9명이 잘사는 사람들 대변해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런데 현실은 반대죠. 95퍼센트의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의원이 6명이고, 나머지 293명이 다 잘사는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비정규직법이 통과되죠. 이분들은 비정규직으로 돈도 버는 사람들이잖아요. 재벌의 ‘장학금’을 받고 있으니까. 자, 그럼 이 사회의 주인은 누구인가요?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을 누가 다 가지고 있습니까? 소수의 재벌들과 그 비호 세력들이죠.

그러면 진짜 민주주의 실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인이 되려면 우리가 국가 권력과 생산 수단을 틀어쥐어야 될 거 아니에요. 제가 베네수엘라를 눈여겨본 까닭이 다른 게 아니고 바로 민중을 대변하는 세력이 국가 권력과 생산 수단을 틀어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민주주의의 확대, 강화 아닙니까? 제헌 의회를 통해서 국가 권력을 통째로 접수했잖아요. 정치 권력을 장악하고 그 힘으로 베네수엘라 경제 권력의 핵심인 석유를 차지했습니다. 미국과 매판 자본들이 가지고 있던 석유를 국유화하고, 거기서 나오는 돈으로 무상 의료, 무상 교육을 하는 거죠.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을 틀어쥐었으니까 가능한 거죠.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이렇게 확실한 전망과 계획이 있었어요.

우리는 그게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저 민주주의는 선거 때 한 표 찍는 걸로 끝인 줄 알고 있죠. 한 표 찍으면 주인 되는 걸로 착각하고 있어요. 진짜 주인이 되는 요건은 따로 있는데. 저는 지금까지의 모든 우리나라 정부는 다 반민주주의적이었다고 봐요. 논란이 있을 수 있겠죠. 물론 절차적인 민주주의의 성장을 무시할 순 없겠지만,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면서 분명 실질적인 민주주의는 후퇴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베네수엘라가 우리에게 의미 있는 까닭은 경제 권력과 정치권력을 민중들이 틀어쥐고 민주주의를 확대, 강화시켜 나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무상 의료 하나도 쉽지 않아요. 제가 차베스고 여러분이 의사 선생님이라고 합시다. “여러분 지금부터 공무원 생활 하셔야 됩니다. 월급 한 5백만 원씩 넣어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한 달에 2천만 원, 3천만 원씩 벌던 사람들이 그걸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안 한단 말이에요. 재원을 확보해도 의사들이 안 움직여요. 세상을 바꾸는 일을 굉장히 순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정책만 잘 만들면 된다고 말이죠. 그런데 우리가 언제 정책 없어서 세상 못 바꿨어요? 국민들이 정책 보고 찍었어요? 정책 문구가 안 아름다워서 세상이 지금 이런 거예요? 정책이 문제가 아니고 사람이 문제에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 세력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베네수엘라도 그랬어요. 무상 의료라는 정책은 좋았지만 의사들이 움직여 주지 않았어요. 이때 쿠바가 도와준 거예요. 쿠바가 미국의 경제 봉쇄 때문에 어렵지만, 그래도 무상 의료, 무상 교육을 하고 있잖아요. 쿠바에 의사가 한 6만 명 있는데 그 가운데 2만 명 가까이가 베네수엘라로 갔어요. 물론 베네수엘라는 고맙다고 쿠바에 석유를 보내 주죠, 얼마나 아름다운 무역이에요. FTA처럼 누가 누구를 ‘해먹는’ 게 아니고, 상부상조하잖아요. 이게 품앗이인 거예요.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젊은 의사들을 열심히 가르쳤죠. 그런데 베네수엘라 의사들은 무상 의료 프로그램에 의사가 50명 참가했어요. 참 쉽지 않아요. 우리도 이북이 무상 의료를 하잖아요? 품앗이하면 돼요. 우리는 다른 것으로 도와주고, 그쪽에서는 의사들이 오고. 우리도 생각보다 무상 의료를 위한 조건이 나쁘지 않아요.

그런데 사회 체제가 다르면 의료도 근본이 달라요. 솔직하게 말해서 자본주의 사회의 의료의 목적은 돈이죠? 자본주의 체제의 의사는 사람들이 아플수록 행복해요, 안 아플수록 행복해요? 아플수록 행복하죠. 안 아프면 돈 못 벌잖아요. 그러니까 제3세계에 가서 몰래 병균 풀어 놓고 약 팔아 먹고 하는 일들이 있는 거예요. 신종플루 유행의 뒤에도 구린 데가 있어요. 신종플루 치료약인 ‘타미플루’ 만드는 회사의 대주주가 미국의 전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에요. 럼스펠드가 국방장관 할 때, 조류인플루엔자가 유행하니까 미국 군인들한테 자기네 회사에서 만든 백신을 하나씩 다 지급하라고 했던 전력이 있어요.

그런데 사회주의 체제에서 의료는 공공 서비스고, 의사는 공무원이잖아요. 좀 웃으시라고 쉽게 얘기하면, 공무원은 일이 많으면 힘들죠? 싫단 말이에요. 이 사람들 일이 없으려면 사람들이 안 아파야 하죠? 그러면 이 의사들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예방 의학’으로 가는 거예요. 물론 이건 제가 천박하게 말씀드린 것이고, 쿠바 의사들 훌륭합니다. 외국까지 가서 헌신, 봉사하잖아요. 아무튼 예방 의학, 사람이 아프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 것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어요. 자본주의 의료에서는 예방 의학이 발달하지 않아요. 왜? 병을 고치면서 돈을 버는데 병에 안 걸리게 예방하면 돈을 못 벌잖아요. 그래서 쿠바 의사들이 베네수엘라에 가서 예방 의학과 그 체계를 전수하는 거예요.

정리를 하자면, 차베스가 깡패인지, 혁명가인지 구분하려면 기준이 있어야 됩니다. 제가 보기에 그 기준은 민주주의인데, 그러면 민주주의가 뭔지 알아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국민 대중이 주인이 되는 것인데, 그 ‘주인됨’이란 단순히 선거 때 한 표 찍는 게 아니라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국가 권력과 생산 수단이죠. 베네수엘라는 제헌 의회 소집을 통해서 국가 권력을 장악했고, 그 힘으로 국가의 주요한 생산 수단인 석유를 통제했어요. 근데 그 과정에서 차베스가 죽을 뻔한 적도 있었죠. 2002년 4월 11일, 미국의 사주 때문에 쿠데타가 나 가지고 큰 위기에 처했지만, 민중들이 총단결해서 차베스를 구출하고 쿠데타를 잠재웠습니다. 어렵지만 그렇게 혁명을 지켜 왔고,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석유에서 나오는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고, 그네들이 사회의 주인이 될 수 있었어요.

그래 제가 차베스 대통령의 이 말을 참 좋아해요. “가난을 끝장내는 유일한 방법은 빈민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다.” 누가 누구한테 시혜를 베푸는 게 아니고, 가난한 사람들 자체가 주인이 돼야 가난을 근본적으로 끝장낼 수 있다는 거죠. 항상 누가 누군가에게 시혜를 베풀어야만 돌아갈 수 있는 사회는 어딘가 병들고 잘못된 사회죠. 베네수엘라를 중심으로 한 중남미, 에콰도르나 볼리비아 같은 나라들은 차베스식의 혁명, 제헌 의회를 통해서 자원을 국유화하는 방식의 혁명을 똑같이 하고 있어요. 이제 그런 새로운 전략이 있다는 것을 눈여겨보면서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민중 권력을 만들어 나갈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를 확대, 강화시키기 위해 베네수엘라가 하는 실험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크다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네요.


질문과 대답

차베스도 영구 집권으로 간다는데요?

차베스가 2006년에 또 한 번 당선돼서 3선인데요, 최근에 대통령 임기를 6년에서 7년으로 1년 늘리고 연임 제한을 풀었어요. 프랑스 대통령 연임 제한 없어요. 영국 총리도 연임 제한이 없어요. 근데 왜 언론은 영국이나 프랑스는 놔두고 베네수엘라 차베스만 이렇게 싫어할까요?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외신의 대부분이 서구에서 나오는 거라서 그래요. 그리고 지금 베네수엘라 민심이 어떠냐면, 여기서 대통령 바뀌면 다시 세상이 뒤집힌다고 생각해요. 언제 또 미국이 뒤에서 사주해서 쿠데타 일어날지 모르는 거거든요. 아무튼 쉽게 얘기하면 프랑스, 영국식으로 하고 있는 겁니다.

저는 자본가들이 나쁜 놈들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그 사람들을 정책이나 의제 결정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배제하는 것도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서 차베스는 그런 세력들과 어떻게 조율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진보 세력이 집권하면 오히려 중앙보다 지방이 늦게 바뀌어요. 안 봐도 뻔하죠. 지방 선거에서 토호 세력들이 끝까지 살아남거든요. 베네수엘라도 이런 문제가 만만치 않아요. 그래서 차베스가 택한 방법은 중앙 정부와 민중들이 지방 전부나 의회를 우회해서 직접 소통하는 거예요. 주민자치평의회라는 것을 통해서. 주민자치평의회에 관한 법률이 2006년에 제정됐습니다. 보통 지방에서 어떤 정치적인 결정을 하고 예산 어떻게 쓸 것인지 결정할 때, 지방 정부나 지방 의회에서 하잖아요. 그런데 이 주민자치평의회법은 지방 정부나 지방 의회를 통하지 않고도 주민자치평의회에서 의결된 것에는 법적 효력을 인정해 주는 거예요. 예산도 줘요.

차베스의 중앙 정부의 권력이 강화되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좀 우려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현실을 볼 때 우리나라 지방 자치가 솔직히 지방 자치입니까? 정확히 말하면 지방 ‘유지’의 자치죠. 주민들이 참여하는 게 뭐가 있어요. 제가 구의원 선거 나갔을 때, 저 빼고 다 건설업자였어요. 다 보도블럭 깔러 나온 거예요. 우리가 지방 자치를 생각할 때도 상상력을 발휘해야 해요. 우리가 너무 제도적인 지방 자치에만 매몰돼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만약 지금 상황에서 교육을 지방 자치에 맡기면 어떻게 될까요? 지방은 재정이 없단 말이에요. 그럼 교육 재정은 줄고, 지방 교육은 파탄 나요. 이런 식으로 기계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명백하게 잘못된 거죠.

베네수엘라의 중앙 권력과 우리나라의 중앙 권력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지방 권력도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베네수엘라에서는 중앙 권력이 강화되는 게, 민중 권력이 강화되는 것과 배치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해를 좀 할 수가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이야기, 월간 <작은책> 2010년 5월호 기획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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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보리 201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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