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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는 3.1운동에 이어 사회 여러 부문에서 운동이 일어나던 때다. 교육 운동, 노동 운동, 언론 운동, 여성 운동 들이 일어났다. 그 가운데 또 하나 중요한 운동이 '어린이 해방' 운동이다. 사실 어린이 해방 운동, 어린이 운동이라는 말은 방정환이 중심이 되어 쓴 것으로 그때만 해도 '소년 운동'이라는 말을 더 널리 썼다. 3.1운동이 일어난 뒤 여러 성격을 가진 소년 운동 단체들이 태어났다.

1919년 임시 정부에 딸린 조직으로 연해주에 소년애국단, 우리나라에서는 원산,안변,왜관 소년회가 조직되었다. 1920년 진주소년회 만세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1921년 천도교소년회가 조직되었고, 뒤이어 불교소년회, 대종교소년회, 조선소년소녀회들이 들불처럼 조직된다. 1920년 진주소년회 만세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1921년 천도교소년회가 조직되었고, 뒤이어 불교소년회, 대종교소년회, 조선소년소녀회들이 들불처럼 조직된다. 대한 제국 시절 애국계몽기에 소년 교육 운동이 활발했는데, 그 맥이 1920년대로 이어져 다시 살아난 것이 소년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애국계몽기 소년 교육 운동은 주로 학교 설립과 맞물려 있었다. 그러나 1920년대 소년 운동은 종교나 지역에서 활동하는 민족 독립운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학교 밖 사회단체를 조직한다. 그때 일제가 학교를 식민지 노예교육을 강화하는 통치 도구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1920년대 소년 운동 단체는 400개가 넘었는데, 조선소년연합회(위원장 방정환)가 그 중심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소년 운동 단체들이 다 같은 생각은 아니었다. 방정환을 중심으로 하는 '어린이 문화 교육', 조철호를 중심으로 하는 '소년 군사 교육', 정홍교를 중심으로 하는 '무산 소년 대중 조직', 이광수를 대표로 볼 수 있는 '학교 교육 참여' 운동으로 나눌 수 있다.

방정환을 중심으로 하는 천도교소년회는 천도교 사상을 바탕으로 어린이를 어른과 다른 특성을 가진 동등한 인격체로 보고, 그 본성을 지키고 갖가지 억압과 굴레에서 어린이를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실천으로 문학, 음악, 미술, 체육(놀이)에 걸친 문화 예술 활동을 펼쳤다. 잡지 <어린이> 발간, 동화 창작과 구연, 노래 창작과 보급, 연극 공연, 미술 대회, 체육 대회 들이 그것이다.

대한 제국 무관 학교를 나온 조철호를 중심으로 하는 조선소년단, 조선척후군(보이스카우트 전신)은 '너희는 조선의 화랑이다, 민족을 구하는 선봉이 되라'는 강령처럼 소년 군사 조직이고자 하였다. 화랑처럼 독립운동에 몸을 던질 군인을 길러 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이스카우트는 본디 인도에서 영국군이 소년 군사 조직으로 만들어 전투에서 공을 세운 뒤 국가가 나서 북돋아 준 소년 단체였다. 따라서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산에 오르기, 배 젓기, 헤엄치기, 야영을 비롯한 체력 단련과 군사에 비길 만한 훈련을 하였다.

사회주의자인 정홍교를 중심으로 하는 조선무산소년회는 사회주의 단체인 5월회 사람들이 주된 활동가였고, 무산자(프롤레타리아) 계급 소년, 소녀들을 주된 조직 대상으로 하였다. 그 강령에 있는 교양 항목을 보면 뚜렷하게 알 수 있다.

<교양 문제>
종래의 부르조아적 혼미한 교양으로부터 과학적 지식을 보급할 것, 그 방법으로
가. 무산 소년 교양에 주력할 것
나. 미취한 소년에게 대한 강습소 설치
다. 농촌 무산 소년 야학 설치
라. 도시에는 노동 야학 설치
마. 아동 도서관 설치
('자'항까지 9개 조항이 있음)

'종래의 부르조아적 혼미한 교양'이란 방정환을 중심으로 하는 어린이 문화 운동을 비판한 것이다. '과학적 지식'이란 사회주의 지식을 의미한다. 조직과 교양 대상을 뚜렷하게 모산 소년으로 삼고 야학이라는 비제도권 학교를 세우는 데 힘을 쏟은 점이 방정환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때로서는 적잖이 호응을 받아서 어린이 잡지도 따로 펴내고, 1928년 조선소년운동협회 전국 총회에서 방정환을 누르고 정홍교가 위원장이 되면서 이름까지 '조선소년총동맹'으로 바꾼다. 곧 방정환이 이끌던 어린이 문화 운동에서 정홍교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소년 운동으로 바뀌게 된다. 나아가 1930년대는 어린이 문화 운동보다는 사회주의 소년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진다.

이광수가 대표 격인 학교 교육 참여 운동은 사회단체나 야학이 아니라 학교에 가서 공부하자는 주장이다. 노아자라는 필명으로 여러 언론 매체에 발표하였는데, 노아자란 바로 이광수다.

<공부 동맹>
1. 소년들아 덕행 있는 사람이 될 공부를 하기로 굿게 동맹하자.
2. 소년들아 아모리하여서라도 보통교육과 전문학술의 교육을 받아 한 가지 직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공부하기를 동맹하자.
3. 소년들아 건장한 신체와 기력을 가진 사람이 되도록 공부하기를 동맹하자.
4. 우리의 동맹으로 하여곰 가장 확고하게 가장 신성하게 뭉쳐진 단체가 되어 민족개조의 대업을 성취하기에 위대한 힘을 내도록 공부하기를 동맹하자.
(<한국소년운동사>에서)

노아자(이광수)는 소년 운동이 중요하며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담은 글을 많이 발표했다. 지금 보면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이러한 주장은 3.1운동 뒤에 문화정책을 내세우던 조선 총독부가 주장하던 것과 맞닿는다. 그때 조선 총독부는 대한 제국 애국계몽기에 우후죽순처럼 세워졌던 수천 개 학교에 '학교 근대화'란 이름으로 학교 시설과 규모에 대한 법령을 발표했다. 그 때문에 민중이 직접 세웠던 수천개 학교가 문을 닫거나 야학과 같은 비제도궈 학교로 바뀌었다. 그리고 교육 내용도 일제 식민지 노예교육으로 치달았다. 그때 소년 활동가들이 학교 밖 교육을 하기 위해서 소년회와 같은 어린이 사회단체나 야학에 뜻을 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이러한 사정에 비춰 보면 이광수가 내세운 학교 교육 참여론은 사실 민족 말살론을 거짓으로 꾸민 것이며, 실제로 우리 말과 글과 역사와 문화를 뭉개어 없애 버리고 '행복한 노예'로 만드는 황국신민화교육으로 치달았다.

방정환과 김기전, 조철호, 정홍교, 이광수는 그 시기 어린이 운동 노선을 만들어 나가던 주요 지도자들이다. 지금 역사를 돌아보면 저마다 좋은 점, 나쁜 점이 있지만 방정환과 김기전이 주장하고 행동에 옮겼던 방향이 받아들일 것이 가장 많아도 생각한다. '소년 운동', '소년 척후단', '소년 무산자 계급'같은 말이 사라지고, '어린이'라는 말만 살아남은 것도 그런 까닭일 터이다. 이제 '어린이'라는 말만 아니라 '어린이 운동'이라는 말도 다시 살려 내야 할 때다. 우리는 역사에서 무엇을 찾아내고 배워야 할까?

이주영
서울 마포초등학교 교감.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 활동을 하면서 계간 <어린이 문학>을 편집하고 있다.


<개똥이네 집>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보리

보리 201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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