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낱말이지요? '영세중립'.
나이 든 어느 스님한테 '영세중립 평화통일'에 대해서 말을 꺼냈더니,
'영세'가 무어냐고 묻더라고요.
머리에 '영세민'이 떠올랐나 봐요.
그래서 스위스나 오스트리아나 코스타리카가 모두 '영세중립국'이라고 일러 드렸더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거리더군요.
그 스님 나이가 환갑이 넘었는데도 그래요.
그래서 '세대 차이'란 참 무서운 거구나 생각했어요.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흔히 듣던 낱말이었거든요.
하긴 그때도 이 세상에 '영세중립국'은 스위스밖에 없는 줄 알았어요.
제가 언젠가 <한겨레> 신문에 '우리는 토끼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어요.
우리 나라에는 아직도 우리가 미국이나 러시아처럼 땅덩어리도 크고 군사력도 강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한때 우리 영토를 바이칼 호수까지 넓히자는 헛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지요.
그러나 젊은이들을 전쟁터에 몰아넣어 멀쩡하게 잘 사는 마을들을 들부수고 다른 나라에 쳐들어가
'로마제국'이나 '대영제국'을 만드는 게 누구에게 좋을까요?
우리에게 그럴 힘이 없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우리가 러시아와 맞서서 싸울 수 있을까요?
중국을 이길 수 있을까요? 미국이나 일본은요?
우리 나라를 동강 낸 '소련'이나 '아메리카 합중국', '병자호란'을 일으킨 중국이나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서른여섯 해나 우리를 지배한 일본은 다 우리보다 더 군사력이 강해요.
'전쟁광'들이 맨 우두머리 노릇을 하던 이 사나운 짐승들에 둘러싸여
토끼 꼴을 하고 있는 게 '조선'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나라가 이 짐승들의 먹이가 되지 않고
남누리 북누리가 하나가 되어 오순도순 살 길은 '영세중립'을 내세우고 평화통일을 이루는 길밖에 없어요.
그러려면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가
힘센 나라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어떻게 중립국이 되었는지,
그리고 온 세상이 부러워할 만큼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지 이제부터라도 잘 살펴보아야 해요.
힘센 나라들에 기대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지금 이대로가 좋으니까
'영세중립? 개나발이야' 하고 비웃을지 몰라요.
그러니까 '영세중립 평화통일'은 못사는 사람들이 입 밖에 낼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좁은 땅덩어리 속에서 한쪽은 러시아와 중국에, 또 한쪽은 미국과 일본에 기대
사람 죽이는 무기 사들이기에 나랏돈을 펑펑 써 대서는 너도 나도 살길이 없어요.
돈이 없어서 가난한 이들을 돌볼 수 없다고요? 거짓말이에요.
무기 안 사들이면 돼요. 우리 아이들 군대에서 썩히지 않으면 돼요.
그러려면 다른 길이 없어요. 남북이 손잡고 '영세중립국'을 만들면 돼요.
쉽겠느냐고요?
쉽지 않아요.
그러나 혼자 꾸면 '백일몽'으로 그치겠지만
여럿이 꾸는 꿈은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어요.
남녘의 씩씩한 사내애가 북녘의 꽃다운 가시내 만나서
러시아 대륙 횡단 열차를 타고 바이칼 호수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꿈, 얼마나 멋져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영세중립'을 다 같이 꿈꿉시다.
-윤구병, <개똥이네 집> 201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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