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출판사 블로그

내가 들은 썰렁한 농담 하나다.

엄마, 아빠, 아들, 딸 넷이 63빌딩 꼭대기에서 동반 자살을 하겠다고 뛰어내렸는데 한 사람도 죽지 않고 다 무사히 살아남았단다. 그 까닭을 알아보니, 아빠는 '기러기 아빠'고, 엄마는 '새 엄마', 아들은 '비행 청소년', 딸은 '덜 떨어진 애'였다나.

지나가다 들은 말로 치면 그냥 웃어 넘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 가시 박힌 농담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겹겹이 돈으로 싸서 나라 밖 어디론가 멀리멀리 내던지면 그 아이들은 훌륭한 교육을 받아 실력도 있고 품성도 좋은 사람이 된단다.' 하는 소문이 어느 때부터인지 경제 여유가 있는 학부모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미국으로, 캐나다로, 유럽으로, 호주로, 뉴질랜드로, 또 어디로 내던지는 이른바 '조기 유학'이 유행병처럼 번졌는데, 그 결과가 썩 좋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엄마가 아이 곁에서 뒷바라지 겸 '비행 청소년'이라는 샛길로 빠지지 않게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아버지는 경제를 뒷받침하는, 휴가철에나 멀리 떨어져 사는 아이와 엄마를 잠깐 만나고 돌아오는 '기러기 아빠' 신세가 되었다.

이 아빠에게는 조기 유학을 보낼 만큼 기대가 큰 아들도 있었지만, 학과 성적이 썩 안 좋은 이른바 '덜 떨어진' 딸도 있다. 촉망 받는(?) 아들과 아내가 곁에 없고, 남편을 돈 버는 기계로 여긴다는 불신까지 겹쳐서 이 아빠는 재혼을 결심한다.

이제 틀거리가 갖추어졌다. 감시의 눈길을 벗어나 비행 청소년이 된 아들, 기러기 아빠 노릇에 지친 나머지 새 엄마를 맞아들인 아빠와 이 땅에 남은 덜 떨어진 딸, 위기에 빠진 가족 공동체. 그에 따르는 집단 투신자살.

이 농담에는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에 대한 짙은 불신이 배어 있다.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대한민국'에서 제공하는 교육 상품은 불량 제품이라는 거다. 내 귀한 자식들에게 '외제 교육 상품'이라는 딱지를 붙여야 국내외 인력시장에서 우수 상품 대접을 받으리라는 거다.

어쩌다 우리 교육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 교육을 하는 목적은 아주 단순한데, 사람은 유전자에 입력된 정보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어서 집 짓고, 옷 짓고, 농사짓는 법을 따로 배우는 건데, 스스로 제 앞가림하는 힘을 길러 주는 것이 교육의 궁극 목표인데, 그러려면 아이들을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놀게 해야 하는데, 열심히 몸 '놀리고', 손발 '놀려서'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으로 기르려면 일과 놀이가 둘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깨우쳐 주어야 하는데, 사람은 서로 머리싸움으로 갈라서서는 살아남을 수 없고, 머리 맞대고 도와야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체인데.......

지금 이 땅에서 교육을 빙자한 자식 학대, 학생 학대를 보고 있노라면, 온 국민이 투신자살을 작심하고 63빌딩 꼭대기에 올라서 있는 듯하다.

 

-윤구병, <개똥이네집> 2011년 11월호에서

편집 살림꾼 지리소

편집 살림꾼 지리소 2011-12-14

古傳을 만들면서 苦戰을 면치 못하다가, 책 만드는 일에도 사는 일에도 고전하고 있는 困而知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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