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고 살림에 보탬이 되는 말은 거의 모두 쉬운 말들입니다. 예부터 사람들은 가장 입 밖에 내기 쉬운 소리로 가장 가깝거나 소중한 것들을 가리켰습니다. 이를테면 엄마, 아빠는 입술만 떼면 젖먹이도 낼 수 잇는 소리지요. 물, 밥, 몸, 배 같은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을) 마시다, (배가) 부르다, (무가) 맛있다, (불이) 밝다, (물이) 맑다, (바람이) 불다, (목이) 마르다, 밤, 마당, 밭, 밀, 보리, 벼 같은 말은 어떤가요? 찾아보면 외마디나 두 마디로 이루어진 소리 내기 쉬운 우리 말이 지천으로 깔려 있습니다. 이렇게 말이 쉬워도 살아가는 데, 살림을 꾸리는 데, 오순도순 말을 주고받고 뜻을 모으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때부터인지 어려운 말을 입 밖에 내면서 어려운 글을 마을 담벼락에 붙이는 사람들이 창 들고 칼 차고 마을을 휘젓고 다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사람들이 귀, 눈, 입, 코를 '이목구비'라고 해야 사람대접 해 주겠다고 윽박질렀습니다. '새, 마, 하늬, 놉(뒤)'을 '동서남북'으로 불러야 한다고 하고, '모래내'를 '사천'으로, '바람들이'를 '풍납동'으로, '삼개'를 '마포'로, 마을 이름까지 제멋대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해'를 '태양'이나 '년'으로, '달'을 '월'로, '날'을 '일'로 써야 교양 있다고 우기고, '자지, 보지'는 입 밖에 내면 욕이 되니 '남근' '여근'으로, '샅'은 '음부'로 바꾸어야 남세스럽지 않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양'은 '위장'에 자리를 내주어 '양에 안 찬다'는 말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게 하고, '애'를 '창자'로 바꾸어 부르라는 통에 '애타다' '애먹이다' '애닳다' '애끓다' 같은 말도 뿌리를 잃었습니다.
요즘 들어 이른바 '인문학 붐'이 일어, 여기저기서 '인문학 강좌'가 열리면서 우리 말이 더 어지러워지고 있습니다. 옛날 지배자였던 사람들이 중국 말을 끌어들이고 흉내 내서 멀쩡한 사람들을 상스럽고 무식한 사람들로 만들고, 식민지 시대에 새로운 지배 세력으로 발돋움했던 사람들이 일본식 한자를 마구 끌어들인 데다가 일류 대학 나오고 유학까지 갔다 온 잘 나가는 사람들이 꼬부랑말을 들여와 거리거리 집집마다 간판으로 내걸고, 그 말들이 그럴듯하다고 너도나도 덩달아 입에 달고 다니는 바람에 '이야기'는 어린애나 시골 노인들이나 나누는 것으로 알고, 학식 있는 교양인은 '담론'을 해야 되는 것으로 알고들 있습니다.
삶에서, 살림에서 멀어진 이 어려운 말이 퍼지면 보통 사람들이 살 길은 점점 더 막히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는 어린애도 시골 무지렁이 할배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어서 민주 세상은 그만큼 까마득해집니다.
말 어렵게 하는 사람들을 멀리합시다. 그 사람들은 '민중' 편이 아닙니다.
-윤구병, 개똥이네집 2011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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