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출판사 블로그

 

  어느 날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기분좋은가게'에 갔습니다. 버리거나 못 쓰게 된 물건들을 가져다 되살리는 '되살림 가게'지요. 그 가게를 지키는 고운 분이 저한테 '투명 옷' 하나를 줍디다. 누가 기증했대요. 얼씨구나 했지요. 저는 그 옷을 입고 근처에 있는 빵 가게에 가서 먹고 싶은 빵을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먹었어요. 사흘 굶은 처지에 무엇인들 못 하겠어요. 그러고 나니 배가 불러서 빵 가게 문을 열고 나오려는데 주인이 저를 붙들대요.

  '어, 투명 옷을 입었는데 어떻게 내가 훔쳐 먹는 걸 알아보았지?'

  저는 어안이 벙벙해졌어요. 그래서 내 옷소매를 붙든 그분한테 물었지요.

  "제가 보여요?"

  "보여."

  "어떻게 하시려고요?"
  "돈을 받거나, 경찰을 불러야지."

  "돈이 없는데요."

  "그럼 경찰서에 가야지."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는데요?"
  "경찰에서 검찰로 넘어가겠지."

  "그다음에는요?"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겠지."

  듣고 보니 황당하데요. 그래서 웃으면서 그분한테 이렇게 따졌어요.

  "에이, 아저씨도. 온 세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백억 수천억을 꿀꺽하는 사람도 검찰에서 본척만척한다는데, 그 사람들이 할 일이 없어서 저같이 배고파서 빵 몇 개 훔쳐 먹은 사람을 붙들어 가겠어요?"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느냐고요?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요, 절도죄에다가 이 잘사는 나라에서 '배고프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국격을 손상시켰다는 불온죄까지 뒤집어쓰고 감방 안에서 썩고 있는 중이유.

(이 이야기는 어젯밤에 홧술을 잔뜩 마시고, 억병으로 취해서 쓰러져 자다가 꾼 '청년 백수'의 꿈입니다.)

 

-윤구병, <개똥이네집> 2011년 7월호

편집 살림꾼 지리소

편집 살림꾼 지리소 2011-07-15

古傳을 만들면서 苦戰을 면치 못하다가, 책 만드는 일에도 사는 일에도 고전하고 있는 困而知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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