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출판사 블로그

서정오 | 228쪽 | 12,000원

 

 

 

안녕하세요.

보리에서 책 만들고 있는 양똘입니다.

 

요번에 인사드릴 책은

<옛이야기 되살리기>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구요?

맞습니다. <옛이야기 들려주기>를 쓰신

서정오 선생님의 신작이지요.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를 왜 들려줘야 하는지,

어떻게 들려줘야 하는지

조곤조곤 말씀해주시던 선생님께서,

이번에는 좀 더 엄격한 목소리를 내십니다.

 

말로 이야기를 전하는 이야기꾼이 사라져가고

그 구실을 이야기책이 대신하는 세상이니만큼,

옛이야기에서 '무엇을 이어받아 어떻게 되살려 쓸 것인가'에 답하게 되신 거죠.

 

 

  

  

럼 이 책은 옛이야기 작가들을 위한 책일까요?

절반은 맞습니다. 직접 옛이야기를 각색해서 어린이책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가능하면'이 아니라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온 옛이야기는 이 땅 수많은 백성들이 함께 만든 것이지요.

그이들이 어떻게 살았고, 어떤 세상을 꿈꾸었는지 고스란히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작가 개인이 내키는 대로 다듬어 내놓는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 자체를 훼손하고 정신을 왜곡하는 일이 돼버릴 테니까요.

 

그렇다고 작가들만을 위한 책은 아닙니다 

옛이야기를 다시 '쓰는' 사람, 써놓은 것을 '고르는' 사람, 잘 골라서 '들려주는' 사람

그 모두가 이 시대의 옛이야기 전승자인 셈이거든요.

이 책은 그 막중한 책임을 짊어진 모든 어른들에게 보내는 간곡한 제언입니다.

말투는 편안하지만, 한마디 한마디 허투루 넘길 수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습니다.

 

시중에 옛이야기책은 정말 많고도 많지요

동화책, 그림책, 어떤 형태로든 옛이야기를 담은 수많은 책들이 있고, 앞으로도 틀림없이 계속 나올 겁니다.

그럴수록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옛이야기책을 골라 읽게 할 것인가 고민은 깊어집니다.

지금 집 책장에 꽂혀 있는 옛이야기책을 한 권 빼서 찬찬히 읽어보세요.

과연 그 이야기는 '잘' 이어받아 '제대로' 다시 쓴 것이 맞을까요? 그건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옛이야기 되살리기>에서 그 답을 찾으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구구절절 설명하지는 않을게요.

한 가지 귀띔을 드리자면, '민중성'이라는 개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낯설게 들릴 수도 있지만, 글쓴이가 이 단어에 담고자 했던 뜻은 쉽고 명확합니다.

바로 옛이야기가 어디까지나 '약자의, 약자에 의한, 약자를 위한' 이야기라는 것이지요.

핍박받고 고달프게 살던 백성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북돋우던 작은 의식인 셈입니다.

그러니 옛이야기 세상에서는 언제나 힘없는 쪽이 보란 듯이 승리할 수밖에요.

토끼가 호랑이를 이기고, 바보가 욕심쟁이를 이기고, 무지렁이 백성이 임금을 이기다니,

이렇게 통쾌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또 어디 있을까요.

 

운이 좋아서 옛이야기 이론서를 두 번째 편집하게 되었습니다만

저 또한 전에는 옛이야기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모르면서 우습게 보기도 했고요. 

현대소설을 워낙 좋아하고, 그 화법에 익숙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 겁니다.

어김없이 '옛날 옛적에 누가 살았다'로 시작해서 '오래오래 잘 살았더란다'로 끝나는 이야기.

그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라고는 착한놈이 나쁜놈을 이겼다는 것뿐인 이야기.

천편일률적이라고도, 평면적이라고도, 이분법적이라고도,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었죠.

하지만 서정오 선생님의 책들을 작업하면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옛이야기는 바뀐 게 없는데, 여전히 옛날 옛적에 어느 착한 사람이 어느 나쁜 사람을 이기고

오래오래 잘 산다는데, 그걸 바라보는 제 눈이 달라진 거지요.

왜 그 옛날 백성들이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는지, 나눌 수밖에 없었는지,

주제는 물론이고 형식조차도 필연적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알고 나니 묻게 됩니다. 옛이야기는 과연 '옛날' 이야기일까요?

그 '백성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곧 '지금 우리'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근근히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내고, 정직한 노동으로 밥벌이를 하고,

힘없는 사람들끼리 손을 잡고, 지금보다는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우리' 말입니다.

그 '우리'가 함께 만들고 함께 나누고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이야기.

'옛이야기'가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야기'인 까닭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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