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출판사 블로그

<기획회의>가 만난 사람 보리출판사 대표 윤구병

<기획회의> 269호   2010. 4. 5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mail protected]


출판환경이 어려워지면서 무조건 팔리는 것이 최고라는 인식이 팽배해졌고, 태생이유를 찾기 어려운 책들이 너무 많아졌다. 출판정신이 사라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디지털 세상이라지만 책의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오랜만에 다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첫 번째로 출판계에서 초발심을 유지하고 있는 분이 누구일까를 생각해보았다. 보리의 윤구병 선생은 태어나서 사장 자리에는 처음 올랐다고 한다. 늘 가방을 메고 분주하게 움직이거나 누군가를 열심히 만나고 다닌다. 최근에는 『당산 할매와 나』란 그림책과 『흙을 밟으며 살다』 『자연의 밥상에 둘러앉다』 『꿈이 있는 공동체 학교』 등 세 권의 책을 한꺼번에 내놓기도 했다. 30여 년 동안 공동체, 생태, 교육에 관해 써온 에세이 중에 주제별로 글을 골라 정리한 책이지만 지금 시류에 딱 맞아 떨어진다. 2008년에 펴냈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의 개정판까지 냈으니 저자로서도 매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 윤구병 선생을 먼저 만나보았다.

목적 사업과 수입 사업이 일치하는 출판

출판사 대표를 1년쯤 해보셨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사실 보리 기획실부터 시작했는데, 1988년 9월이었죠. 그때 처음 출판계에 발을 디뎠다고 할까요. 처음에는 웅진 출판사에서 비용을 대고, 저희는 기획인세를 받았습니다. 처음부터 꼭 필요한 책, 여러 이유로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거나 하기를 꺼리지만 꼭 필요한 책을 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출판이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책들이 좋은 평판을 받았지요. 그런데 기획회사 살림으로는 식구들이 먹고살기가 참 힘듭디다. 그래서 출판을 하자고 했어요. 한데 저는 대학 선생을 하고 있었고, 어느 순간에는 변산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보리가 교육출판하고 어린이출판을 시작했는데, 그게 목적 사업과 수입 사업이 일치했어요. 좋은 책은 널리 알려지고 많이 팔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이에 잉크만 발라서 펴내도 책을 팔 수 있다고 하는데, 그건 나무를 가치 있게 쓰지 못하는 측면과 함께 사람들의 정신건강에도 굉장히 큰 해를 끼치는 겁니다. 좋은 책이 많이 팔려야 좋지 않은 책이 자리 잡을 공간이 그만큼 적어진다는 생각을 해서 그런 정신으로 출판을 하자 했었는데, 경영난에 부딪혔어요. 그런데 그 경영난이라는 게 좀 묘해요. 보리가 초기 출판 정신을 점점 잊어가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게 경영난하고 맞물려 들어갔어요. 이 책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책인가, 다른 출판사에서는 낼 수 없는 책인가, 출판의 빈자리를 메울만한 책인가, 이런 의식이 차츰차츰 사라짐과 동시에 옛날에 냈던 책들에 집착하는 경향이 커졌어요.

보리에서 나온 『개똥이 그림책』 60권하고, 『달팽이 과학동화』 50권이 취학 전 아이들에게 많이 팔려나갔어요. 그것이 보리의 재원이 되고, 그 다음에 변산공동체를 일구는 밑돈이 되고, 민족의학연구원 설립 기금이 됐습니다. 그런 책으로 15년을 견뎠죠. 또 교육도서라든지, 북녘 학자들이 낸 『고전문학선집』 같은 것도 내고, 그 다음에 세밀화 도감책 종류도 내고 해서 사회에 기여하고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책을 만들어냈죠. 그런데 그게 너무 더디었어요. 어린이 세밀화 도감, 식물도감, 동물도감, 민물고기 도감, 곤충도감, 나무도감 이런 것들은 세밀하게 하나하나 그려야 하니까 5년 걸쳐서 한 권 나오는 정도였어요. 그리고 거기에 투여된 비용은 4억 원 정도입니다. 재정적으로 이걸 뒷받침해야 하는 거죠. 『보리국어사전』은 7년 반에 걸쳐서 18억 원 정도 들었는데 실제로는 그보다 더 들었습니다. 한데 주 재원이 되는 『개똥이 책』하고, 『달팽이 과학동화』가 어느 순간 판매에 차질을 빚기 시작하면서 모든 사업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리를 위기에서 구출할 경영 사장으로 처음 공식 지위를 맡게 된 겁니다. 공식 지위를 맡고 1년 동안 홍역을 치렀고, 이제 조금 체계가 잡혀가고 있습니다.

최근에 『내가 살던 용산』을 읽으면서 저는 가슴이 먹먹함을 느꼈습니다. 이런 책이야말로 출판 본연의 의무에 값하는 책이 아니가 싶은데요.

출판사의 체계가 잡혀가는 것의 상징적인 의미로 『내가 살던 용산』하고 그림책 『파란집』을 냈어요. 가난한 서민들이 살려고 망루에 올라갔는데, 테러리스트로 몰려 떼죽음을 당했거든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알리지 못하는 것은 출판사의 임무를 방기하는 거라 생각했어요. TV나 신문 같은 다른 매체에서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을 조금이라도 했으면 나오지 않았을 책입니다. 일반 매체나 방송 매체를 통해 국민들한테 진상이 널리 알려야 하는데, 그게 안 되기 때문에 오랜 세월 걸려 취재를 해서 책을 만든 거지요. 이것도 출판인들이 꼭 해야 할 일이라고 본 거죠.

평소에 보리에서 아이들 책을 꽤 많이 내는데, 교육도서도 그렇고 아이들 책도 그렇고 굉장히 조심해서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머리가 백지 상태입니다. 흡수력이 강한 종이 같은 두뇌를 가지고 있는데, 좋은 책 나쁜 책 구분을 못 합니다. 그것을 가장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나쁜 책이나 해로운 책을 발간해서 아이들 상대로 돈벌이를 하겠다는 것은 미래 세대에게 범죄 행위를 저지르는 일이거든요. 미래 세대가 우리보다 밝은 세대가 되도록 하기 위해 출판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더구나 청소년이나 아이들의 감수성, 지성, 통찰력 등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하려면 어떤 책을 내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모범을 보이는 출판사가 많지 않아요. 그래서 어떻든 이렇게 좋은 책을 내면서도 실제로는 출판사와 더불어 저희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살던 용산』은 많이 나갔나요?

생각보다 많이 나갑니다. 방송인들이 갖고 있는 오만한 맹점이 뭐냐면, 우리나라 시청자 수준이 낮기 때문에 중학교 나온 보통 사람의 감성과 지성을 가진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하거든요. 예전에 <뿌리깊은나무>를 만들 때 발행인이었던 한창기 선생으로부터 아주 중요한 것을 배웠습니다. “책을 만들 때는 그 분야에서 최상의 책을 만들어라. 그러면 반드시 그것을 알아주는 독자들이 있다”는 거였죠. 당시 가장 많이 팔리던 <주부생활>이 3만 5,000부를 찍었는데, <뿌리깊은나무>는 얇은 책인데도 강제 폐간 직전 그 두 배가 넘는 8만 8,000부인가를 찍었다고 들었어요. 시골 중학생까지 겨드랑이에 끼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화 수준과 독자 수준은 낮지 않습니다. 그래서 출판 사업이라는 게 목적 사업하고 수익 사업하고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 그리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 목적을 널리 알리고 책을 읽는 사람이 거기에 동의를 해서 실제로 새 세상을 여는 데 기여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좋은 책이 많이 팔리고 자연히 수익 사업도 된다, 그래서 목적 사업과 수익 사업을 일치시키되 먼저가 목적 사업이라고 봅니다. 출판해가지고 돈벌이하겠다는 것은 다른 투기보다도 훨씬 더 어리석은 투기입니다.

자율성을 통한 창조적 역량을 키워야

아무리 탁월한 기획을 해도 실제로 책을 잘 만들어주는 기획자들을 찾기가 만만찮을 텐데요.

보리에는 훈련된 출판 인력들이 드뭅니다. 기획이나 편집을 잘못 배운 사람들은 처음 배우는 사람만 못합니다. 책방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그럴듯하게 만들어가지고 잘 팔리는 책을 흉내 내려고만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그렇게 흉내 내면 원작이 훨씬 낫지, 모작이 훨씬 못합니다. 실제로는 원작보다 나쁜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기획이라는 것은 아직 누구도 내지 못했던 책을 새로 창조해내는 작업이어야 합니다. 한데 이런 책을 시장조사 해보니까`‘이런 책이 잘 팔린다더라, 이런 책을 본 따서 내면 되겠더라’는 식으로 생각을 한단 말이죠. 이건 출판 일을 창조적인 작업으로 보지 않는 겁니다. 흉내 내고 본뜨기로 보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대표로 들어가면서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책의 모범이 되는 책은 이 시장에 없다.” 출판사를 시작한 지 20년이 되었으니 보리에도 많은 책이 쌓여 있을 거 아니에요. 새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편집자들한테 “책 다 치워라,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책을 열 권에서 스무 권만 남기고 다 싸서 여기저기 나눠주자”고 폭탄선언을 했어요. 처음에는 난리가 났어요. “삽화를 그려야 하는데, 누구 걸 보고 그림을 선택하느냐? 그리고 어떤 책을 보고 시장의 흐름을 알 수가 있느냐?”라고 얘기를 해요. “우리는 이제까지 다른 사람이 어떤 연유로든지 못 내는 책을 냈기 때문에 보리 시장은 늘 개척해야 할 것이지 기존 시장에 파고들 것이 아니다. 그 머리를 버려라. 그 생각을 버려야 비로소 머리 싸매고 창조적인 기획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말을 하고 다시 처음부터 출발하자고 했어요.


사람을 뽑을 때 경력자보다 신입을 뽑고 계신데요. 그런 이유 때문인가요?

그렇습니다. 한번 잘못 길든 사람은 실제로 이 책 저 책 비슷한 책밖에 못 만들어요. 그러면서 그것이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청소년이나 어린이들에게 건강하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책들을 제공해야지, 낡은 것을 여기저기 짜깁기하는 것은 재원 낭비고 재능의 낭비죠.


대부분의 출판사가 경력자를 뽑으려고 난리인데, 신입사원 데리고 하시면 힘들지 않으세요?

아니요. 훨씬 더 효율적입니다. <뿌리깊은나무> 때부터 웅진의 편집진까지 제가 모두 갖췄습니다. 그리고 보리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경력자들하고 일해본 적이 없습니다. 전부 새로운 사람하고 처음부터 일했습니다. 저는 그게 그나마 보리가 다른 출판사에서 내지 못하는 책을 내는 원동력이 됐다고 봐요.


처음에는 직원들이 한꺼번에 그만두는 바람에 어려움도 겪으셨다고 하던데요.

그렇습니다. 다른 출판사만큼 마구 몰아대지는 않았지만, “올해는 뜻있는 책을 50권 정도 만들 계획을 세워서 추진해봐라”라고 했죠. 전부 기함을 했죠. 그래서 “합리적으로 하면 충분히 할 수 있다, 만약 못 한다면 내부 기획을 바탕으로 임프린트 줘가지고 아웃소싱을 하겠다, 그렇게 해서 실제로 아웃소싱한 결과가 내부에서 만든 것보다 더 좋으면 어떡할 거냐”라고 했어요. 거기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는 거예요. “보리는 공동체 아니냐.” 이것만 부르짖는 거예요. “자본주의 체제 속에 보리도 있다, 이것을 어떻게든 뛰어넘어야 하고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혁명으로 한번에 뒤집어엎을 수 없으니까 담쟁이넝쿨처럼 자본주의 체제라는 벽에 조심스럽게 굳혀가지고 자라서 담을 넘는 수밖에 없다” 그 길을 일러주려는 거죠.

한때 악덕자본가라는 말까지 들었어요. “우리가 만들어낸 책이 전부 공동체의 기금도 되고 민족의학연구원을 뒷받침하는 기금도 된다, 우리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큰 사명감과 긍지를 가지고 자율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했더니 자율적으로 풀어나가려면 민주적으로 일을 해야 되는 거 아니냐는 거예요. 내가 농사 지어봐서 알거든요. 농사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의 법칙을 존중하는 건데, 이제 갓 자란 젊은이들은 자연의 법칙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게 쉽지 않아요. 가뭄도 겪어보고, 장마도 겪어본 노인네들은 “이럴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는 경험 지식이 있어요. 이게 오랫동안 쌓여서 지혜가 되는 거거든요. 자연을 대신해서 노인네들이 얘기하는 겁니다. 시골에서는 노인네들 말을 잔소리로 듣지 않아요. 나중에 경험해보면 다 드러나요. 한데 도시사회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철이 없잖아요. 봄 여름 가을 겨울 한 철 한 철 접어들면서 철이 들고, 한 철 한 철 나면서 철이 나는 건데요. 철이 없으니까 경험이 쌓인 사람이 그걸 전수해주려고 해도 “우리 민주적으로 합시다” 이런 식으로 얘기한단 말이죠. 천부적인 감수성이나 기획력은 민주적인 합의 절차를 통해서 생겨나는 게 아닙니다.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겸손하게 배울 때에만 가능합니다.


회의를 통해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회사일수록 하향평준화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100명 중에서 99명이 반대를 하더라도 한 사람이 올바른 제안을 하면 따라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돌발적인 상상력이나 창의력이 발휘된 책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게 바로 도시사회 전체의 맹점입니다. 도시는 인간관계를 잘 해야 살아남는 구조거든요. 어떤 면에서 창조력을 말살하는 구조에요. 인간관계 한번 잘못해버리면 발붙일 곳이 없으니까 독자적인 생각이 없어요. 좋은 책을 내야 한다는 생각보다도 회사 안에서 인간관계를 해치지 않고, 다른 사람한테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 더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늘 얘기하는데, 박 터지고 피투성이가 되게 싸우더라도 그 결과로 더 나은 책이 나오면 그것이 바로 출판에 뜻을 둔 사람이 해야 할 일입니다. 내부에서 좋다고 서로 박수쳐주는 일은 그만해야 합니다.


작년에 흑자를 냈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신간 출간하지 않고, 그냥 옛날 것만 팔고 인원을 최소화하면 흑자가 됩니다. 그런데 최근에 정밀 감사에 대비하기 위해 정리를 했더니 작년에 제가 무리한 투자들을 꽤 많이 한 것이 드러났어요. 그래서 선인세가 너무 많이 지급되어 실제로는 적자로 전환되었습니다.


신입 편집자가 꼭 갖춰야 할 자질이라든가 믿음을 얘기한다면 어떤 걸 말씀하시겠습니까.

일단은 창조적인 역량입니다. 경험은 없어도 좋아요. 처음에 서툴러도 좋아요. 창조적인 역량을 뒷받침하는 가장 좋은 길은 자율성입니다. 되도록이면 간부나 경영진이 확보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올바른 원칙, 방향을 알려주고,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때그때 지적을 해주어야 합니다. 이건 어떤 측면에서 잘못인지 얘기해줘야 해요. 중간 간부들이 그런 감각을 갖지 못하면 자기가 전부 꿰차고 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럼 한 사람에게 업무가 과중되어 독재자라는 인상을 주고, 직원들의 뜻이 반영 안 된다는 느낌을 주죠. “나는 나이가 칠십이 가까우니까 오늘 죽어도 자연사다. 보리를 이끌고 갈 사람들은 당신들이다. 모르면 묻고, 겸손하게 배워야 한다. 이 양반이 왜 이렇게 변덕을 부리고 고집을 부리는지 이해가 안 가면 물어라. 물으면 대답을 해주마. 왜 묻지도 않고 토라져서 일손을 놓느냐.” 이런 얘기를 하거든요. 많이 고쳐졌어요. 똑같은 고민을 안고 있을 거예요.


경쟁이 아니라 도우며 사는 방법을 배워야

요즘 매우 정력적으로 움직이시는 것 같아요. 날마다 사람 만나고, 시골도 왔다 갔다 하시죠. 게다가 최근에 책을 여러 권 내셨죠. 에세이 선집을 내셨는데 마지막에 쓰신 머리말들이 가장 격렬하고 격정적이더군요. 그런 면에서 현재 기획의 현실이라든가 우리 생태의 현실이라든가 인간 공동체라든가 뭔가 심각한 위기에 있다고 보신 거잖아요.

한 소장이 이제까지 해왔던 일은 아무도 못할 일입니다. <기획회의>를 격주간으로 내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에요. 편집자들도 그렇고 다들 고생했지만, 그 파급력이 엄청나게 큰 거잖아요. 출판인이 어떤 마음 자세를 갖춰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일깨워준 측면이 있단 말이죠. 나는 <학교도서관 저널>로 그 정신이 이어졌다고 보고, 그런 점에서 대단히 높이 평가합니다.

내가 요즘 들어 교육문제라든지 환경문제, 농촌문제에 대해 격렬하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렇습니다. 30년 전 이곳저곳에 글들을 쓸 때는`‘이게 빨리 쓰레기통에 들어가야지’ 하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리고 실제로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 오면서 어느 정도 희망을 봤습니다. 한데 겉만 그랬을 뿐이지, 내부에서는 친일파 독재의 후손들이 사회 주류를 형성하고, 돈줄과 권력을 다 쥐고 있어서 군국주의 시대로 되돌리고 있었던 겁니다. 말하자면 미국식 교육제도 같은 것들이 신화화되어서 우리 교육 현실을 악화시키고 생태환경을 파괴했잖아요. 30년 전보다 지금 오히려 제가 쓴 글들을 귀담아 들을 사람이 많다는 것이 기가 막힐 뿐이에요. 30년 동안 교육현실이라든지 생태환경이라든지 공동체라든지 농촌공동체 붕괴라든지 등이 악화일로를 걸어와서 오히려 그런 이야기가 지금은 절실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거예요. 부끄러운 일이죠. 그림책은 『당산 할매와 나』가 나왔는데, 앞으로 『울보바보 이야기』 『아직도 모르는 게 더 많아요』 등이 휴머니스트에서 나올 겁니다.


글쓰기도 완전히 망가졌어요. 대학 교수들도 지금은 철밥통이 아니죠. 철밥통 직장일 때는 괜찮았는데, 신자유주의의 논리에 의해 언제든지 비정규직으로 전락될 수 있어서인지 할 말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해봐야 90% 이상이 비정규직인데다가`‘88만원 세대’로 전락해서 아무것도 못하는데, 몰락해버린 대학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초중고는 대학으로 가는 정거장으로 전락했습니다. 선생님 책에도 써있지만, 아이들을 족쇄 채워서 16시간 동안 의자에 강제로 앉혀놓고 환자로 만들고 있는데도 이런 현실에 대해서는 아무도 발언하지 않아요. 심각합니다. 이걸 푸는 방법이 뭘까요?

<학교도서관 저널>에서 지금 교육 혁명을 일으키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에 대해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지금 전쟁을 선포한 거거든요. 너무나 명분이 뚜렷하고, 이것만이 아이들을 살리는 길이라는 사람들이 많고, 앞으로도 점점 늘어날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이 전쟁은 질 수 없는 전쟁이라고 생각해요.


정부가 교육을 망치는 건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병들어가고 있잖아요. 그렇지 않더라도 일류대학을 나와 봤자 자기사유를 못 하고, 어떻게 할지 모르고 거의 무위도식하는 니트족으로 변해가는 현실인데, 지식인들이 아무 발언도 하지 않는다는 건 너무 두렵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학 사회가 완전히 몰락한 마당에 탈학교 담론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선생님은 변산공동체를 이끌어오셨는데 그런 농촌공동체가 오히려 대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차 얘기했듯이 아이들이 정말 배워야 할 것은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몸 놀리고 손발 놀리면서 제 앞가림을 하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경쟁이 아니라 도우며 사는 방법을 공동체적 삶 속에서 배워야 하는데, 가르쳐주는 데가 없어요. 눈을 씻고 봐도 없습니다. 대안학교라고 하는 곳들도 거기에 못 미칩니다. 대부분이 그냥 시골에다 제도교육기관을 옮겨놓은 것에 지나지 않아요. 변산공동체에서는 하루에 세 시간밖에 정보학습을 안 시키는데요. 물론, 영어 수학 국어 인문학 자연학 사회학 다 가르치고 역사도 가르치고 그래요. 그렇지만 모두 세 시간 이내에요. 나머지 시간에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만 가르칩니다. 아이들이 실제로 공부할 동기만 찾으면, 또 대학 가서 더 배워야겠다는 동기가 뚜렷해지면 1년만 재수해도 다 원하는 대학에 갑니다. 꽤 괜찮은 대학 사회학과에 간 아이도 있는데 1년 지나고 나서 방황하고 있어요. 군대 갔다 와서`‘내가 비싼 돈 바쳐서 대학 다녀야 해? 공동체 가서 농사짓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공부하겠다는 동기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강압적인 통제에 의해서 하는 거죠. 변산공동체로 가출한 놈 중에 한 놈은 “너 뭐하고 싶냐?”고 했더니 “공부만 빼면 다 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해요. 

변산공동체 도서관에는 취학 전부터 대학 이상 나온 식구들까지 볼 수 있는 책들이 많이 갖춰져 있습니다. 가장 양질의 도서관 중에 하나일 겁니다. 아이들이 거기 가서 보고 싶은 책을 원 없이 본단 말이죠. 누구는 그렇게 해서 사법연수원에 가고, 1년 공부해서 전북지역에서 검정고시를 보는데 일등을 한 겁니다. 그러니까 욕심들이 생겨서 “공부 시간을 한 시간쯤 더 늘리자. 우리가 교사하겠다” 그랬어요. 공부시간을 4시간으로 늘려 놓으니까 애들이 질려서 공부를 안 하고 책머리를 흔들어요. 1년 하다가 다시 3시간으로 돌렸어요. 학부모들은 분개하지요. 능력을 갖추고 있고, 잘 할 수 있는데도 게으름 피우고 있다고 해요. 당신이 우리만큼 농사를 짓겠냐고 해요. “우리는 농사 베테랑이다. 당신은 당신 전문인 교육을 맡는 게 훨씬 나은데 왜 아이들 교육 안 시키려 하고 비오는 날 콩이나 줍고 있냐.” 이렇게 이야기한단 말이지. 그래서 당신들이 원하는 데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교육해도 좋으니까 우리는 원래대로 돌아간다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같이 해온 아이가 스무 명 됩니다. 더 이상은 못 받아요. 올해 기숙사를 마련해서 한 반에 세 명 정도씩 들어갔습니다. 

교육현실이 부쩍 나빠지면서 진정한 대안이 어디 있나를 이제 아이들이 고민해요. ‘내가 교실에서 벗어날 수만 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면 범죄자가 될 거라는 지레짐작 때문에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가둬놓고 죄수 취급을 한 거잖아요. 한데 변산공동체는 아이들이 탈춤도 추고, 풍물도 하고, 밴드도 하면서 실제로 씨도 뿌리고, 김도 메고 거두기도 하면서 살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려주니 이제는 부모들이 변산공동체라는 대안학교가 돈 싸서 내던지는 대안학교하고는 다르다는 생각을 해서 우리 아이 들어갈 수 없느냐고 문의합니다. “우리는 가난한 아이들 먼저 받으니 아이를 가출시켜라. 변산공동체로 제 발로 걸어오도록 해라. 부모 빽 쓰고 뭐 하고 하지마라. 기숙사비도 안 받고 밥값도 안 받는다. 대신 벽돌 찍어서 기숙사로 이용할 집을 짓게 되면 벽돌 찍는 데 용돈 얼마씩 준다. 필요한 것은 공동체에서 용돈을 받아가지고 자기가 벌어서 사도록 한다.” 이게 변산공동체 지침인데 지금은 조금씩 알려지고 있지만 나중에는 더 알려지겠죠. 이런 곳들이 모델이 되어서 여기저기 자꾸 세워져야 해요.

4대강사업 해서 실업자를 구제할 수 있을까요. 농촌에 그 돈 10분의 1만 줘보세요. 다른 생명체와 공동생활을 하면서 씨 뿌리고 김매고 거두고, 손발을 자유롭게 놀리고, 실제로 필요한 정보라든지 지식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도서관에서 알 수 있게 길만 열어주면, 공장을 짓고 토목공사를 벌이는 것보다 훨씬 빨리 실업자 문제가 해결될 겁니다. 그러니까 유기농으로 농사짓는 시골에 학교를 짓도록 재원을 마련해주고 그 학교 아이들이 제 앞가림을 하는, 몸 놀려서 하는 일들을 부지런히 하도록 하고, 거기에 좋은 도서관을 지어주면 제일 빨리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봅니다. 4대강사업은 수천 년 동안 물려받은 청정한 땅, 청정한 공기, 청정한 물을 한 세대에 다 망가뜨려 버리는 거 아니에요.


삶의 현장에서 나온 글이 소중하다


사실 <학교도서관 저널>도 공동체 때문에 시작한 겁니다. 학교가 변해야 하는데, 변화하라고 외치고 뭔가 깃발이라도 들고 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도서관 하나밖에 없습니다. 사실 정부도 정부지만, 무엇보다 현장 교사들 스스로가 변해야 합니다.

교사와 학부모가 다 변해야 돼요. 교사들이 제일 책 안 읽습니다. 그게 큰 문젭니다.


요즘 지식인들이 거의 침묵하고 있잖아요. 백낙청 선생 같은 분은 앞장 서 우리를 각성시켜주고 있지만 그런 분을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이번에 『내가 살던 용산』에 나오는 윤용헌 씨 부인 증언을 갖고 <녹색평론>에 글을 하나 쓴 게 있어요. 도저히 침묵할 수가 없다고 생각해서 하나 썼는데요. 앞으로도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 벌어진다면 글을 쓸 겁니다. 아까 이야기하셨는데, 백 선생께서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고 계세요. 그런데 사실 일반 사람들,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나 초등학교 학생은 그렇다 치더라도 중고등학교 학생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자꾸자꾸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요. 지식인들이 그 작업에 큰 힘을 기울이고 있지 않다는 것이 걱정스럽습니다.

사회변혁이 일어날 때는 늘 문체혁명이 먼저 일어나잖아요.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빅토르 위고라는 소설가이자 탁월한 산문가가 있었어요. 원래 2,3급 취급을 받았죠. 영국이 자랑하는 밀튼이라든지, 독일이 자랑하는 괴테라든지,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단테는 민중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어요. 혁명 전 의식 변화에 영향을 거의 안 미쳤어요. 근데 위고는 실제로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나도록 만드는 도화선이 됐잖아요. 중국에서도 루쉰이 문체혁명을 일으켜서 중국 혁명의 도화선이 되잖아요. 러시아에서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막심 고리키 등이 있고요. 특히 톨스토이는 농노를 해방시킨 뒤 자기가 쓴 소설을 농노아이들한테 보여주었는데, 아무도 못 알아보니까 러시아 민담들도 모으고, 여러 나라 말들을 새로 익힙니다. 그리고 러시아 민담뿐 아니라 여러 나라 옛이야기들을 번역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써요. 야스나야 폴리아나의 학교에는 이런 전통들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영감을 받은 아이들이 혁명가로 자라난단 말이죠. 우리나라에서 사회변혁이 이루어지려면 지식인들의 문체 혁명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식인 문체혁명이 아니라….

문체 반정을 하지요. 그냥 이야기라고 하면 될 거를`‘담론’이라고 합니다. 프랑스 말을 일본에서 번역한 건데, 그럴듯해 보이니까`‘담론’이라고 그런 거죠. 시골에 있는 노인네들이 들으면 “담 안에 있는 논이란 말이냐”라고 할 텐데요. 자기들끼리만 소통하는 완결된 구조를 가지고 소통 울타리를 넓히지 않으려고 하는데, 지식인들한테 부메랑으로 돌아올 겁니다. 사회변혁이 일어나면 한꺼번에 쓸려나갈 겁니다. 내가 농사짓느라고 글을 거의 못 봐서 그러는데요. 진중권, 박노자, 김규항이라든지 홍세화라든지 이런 분들도 꿋꿋하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한데 사실 더 주목을 해야 할 사람들은 교육 현장 경험을 쓴 분들의 글쓰기 회보 글, 그리고 작은 책에 글 쓰는 일반인들의 글입니다. <개똥이네 집>이 지금 월간지로 진행되는데요. 거기에 글을 쓰는 분들 중에 이름 있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 글을 보면 어떤 때는 뼈가 저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정말 핵심을 짚어서 글을 쓴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삶의 현장에서 겪은 어려운 체험들에 관한 글이 가장 빛납니다. 어렵게 사는 부모들을 지켜보면서 아이들이 쓴 글은 정말 감동을 줍니다. 이런 글들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고요. 지금 머릿속에서 꾸며내는 글들, 지식인들이 이 책 저 책 짜깁기해서 써내는 글들은 오히려 에너지 낭비라고 봅니다. 그것을 꼭 읽어야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해놔서, 사람들의 창조력과 자율성도 죽여버리죠. 여러 가지로 죄를 짓는 겁니다. 나도 그 죄를 많이 지은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출판에 희망이라면 뭐라고 보십니까.

어쨌든 <학교도서관저널> 부지런히 열심히 만드세요. 많은 사람들이 집단 지혜를 모으면 희망의 원천이 된다고 봐요. 지금 도서관 운동, 그리고 아이들을 살리는 운동에 동참하는 분들은 한 분 한 분 소중한 분들이고, 이 분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하고, 더 많은 글도 써야 한다고 봅니다.


윤 선생과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지면 관계상 줄일 수밖에 없었다. 선생은 꿈 많은 소년 같았다. 나는 지쳐서 모두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을 곧잘 하는데 윤 선생은 여전히 에너지가 넘쳐났다. 우리는 과연 그런 에너지를 칠십까지 끌고 갈 수 있을까. 그 나이에도 가방 가득 책과 일거리를 짊어지고 변산으로 파주로, 서교동으로, 전국에 강연하러 다니며 정력을 쏟아낼 수 있을까.

보리

보리 2010-06-21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자. 수익이 나면 다시 책과 교육에 되돌리자. 보리출판사의 출판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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