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우 선생님의 그림을 보고 또 봅니다. 눈길을 뗄 수 없습니다.
우리 겨레의 정서를 이렇듯 자연스럽고 능청맞을 만큼 오롯이 그림으로 드러낼 수 있는 분이 이 땅에 몇 분이나 될까요?
제 둘레에서는 찾기 힘듭니다. 옛 분들 가운데서는 더러 떠오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칠칠(七七)이라고 불렸던 최북, 술꾼 오원 장승업,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그러나 요즘 분들 가운데서는 좀체 찾을 길이 없다면, 제가 지나치게 눈이 좁기 때문일까요? 더 놀라운 건 이 분이 우리 곁에서 오래 사신 분이 아니라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 조선인'이고 그곳에서 줄곧 살아오신 분이라는 점입니다.
가난에 찌든 부모님이 살길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가 밑바닥에서 헤매시는 바람에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셨으니, 제대로 그림 그릴 붓이나 종이도 얻기 힘든 형편이었다 합니다. 그래서 비 오는 날만 기다리셨대요. 손바닥만 한 마당이 젖으면 그 마당 귀퉁이에 나무 꼬챙이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니까요.
설움받는 '조센진'의 자식으로 태어나, 어느 겨를에 '조선말'을 익힐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스무 살이 넘어서도 한참 동안 우리말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었답니다. 나중에야 울분 속에서 자란 민족정신이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고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붇돋웠다고 합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으니, 그때쯤 당연히 '우리 그림'을 눈여겨보셨겠지요. 홍영우 선생님은 화집으로 나온 우리 옛 그림을 모사하면서, 우리 표정, 우리 몸짓, 우리네 살림살이, 우리네 풍속들을 하나하나 몸과 넋으로 익히셨답니다.
그 결과는 보시는 대로입니다. 여기에 전시된 그림들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여 그리신 것들입니다. 몇 해 전에 홍 선생님을 뵙고, 그분이 빚어낸 인형에 눈길을 뺏겼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상투를 튼 농사꾼이 베잠방이 바람에 지게를 진 모습이었는데, 우리 할아버지의 그 할아버지들 모습을 하도 쏙 빼닮아서 어떻게 이런 인형을 빚을 생각을 내셨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입체적인 모습이 있어야 그것을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옆에서도, 앞에서도, 뒤에서도 보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그림에 담아낼 수 있으니까,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그림을 그려 주고 싶은 욕심에서 여러 날 걸려서 정성껏 빚어낸 것이라고 하십니다. 홍영우 선생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이 그림책 원화전에 나오는 모든 그림들이, 얼굴 표정에서부터 손끝 발끝 동작까지 모두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운 것은 홍영우 선생님의 겨레 사랑에서 우러나는 이 각고의 노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으로 믿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꼼꼼히 관람하시기 바랍니다.
보리 2010-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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