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출판사 블로그

오월을 기다립니다. '평화의 발자국'을 담아 바람 타고 날아갈 민들레 홀씨들을 기다립니다. 살고 싶다는 피맺힌 절규까지도 얼어붙은 한겨울에 웬 오월의 희망 노래냐고요?

<파란집>(이승현, 보리, 2010)이라는 그림책이 나왔습니다. 가슴 아픈 사연이 담겨 있지만, 어디에 내놓아도, 누구에게 보여도 자랑스러운 뛰어난 그림책입니다. 책 전체에 걸쳐 글은 한마디도 없이 그림으로만 채워진 그야말로 '그림'책입니다. (아, 한 바닥, 검은 연기가 가득 찬 바닥에 망치 소리, 쇠파이프 소리, 외마디 외침들이 그림처럼 떠오르는 데가 있기는 있군요. 그러나 그것도, 그 의성어들도 그냥 그림으로 보면 됩니다.) '희망을 안고 파란집에 끝까지 남았던 영혼들께' 바치는 이 그림책 마지막 쪽 보도블록에, 그린이는 또박또박 다음과 같은 글을 새깁니다.

아내가 열이 나 아팠습니다.
그 정도는 아픈 것도 아니라고 지나쳤는데, 오늘 제가 열이 펄펄 끓습니다.
제 몸이 아프니까 그제야 아내의 아픔이 이해가 됩니다.
왜 그 때 좀 더 관심을 갖고 잘 보살펴 주지 못했을까 후회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그처럼 내가 똑같은 아픔을 당하지 않으면
남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내일은 행복해질 거라고 가족에게 인사하고 파란집으로 올라갔던 사람들,
우리는 살고 싶다고 절규하던 그때 그 사람들의 아픔을
내가, 우리가, 조금이라도 이해를 했더라면 소중한 생명들은 불타 버리지 않았을 것을...

지금 마지막으로 지키던 파란집은 검은 연기와 함께 사라졌지만
떠나지 못한 영혼과 남겨진 자의 눈물이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 고통을 마음 깊이 헤아릴 수는 없지만
이 그림책을 만들며 느꼈던 제 마음을
이 책을 읽는 분들이 조금이라고 같이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실을 덮어 버린 완강한 보도블록을 뚫고 피어난 민들레꽃 다섯 송이, 거짓을 감추며 솟아오른 고층 건물 아래 시멘트 바닥을 쩍쩍 가르면서 피어난 이 고귀한 주검의 증언들이 머지않아 홀씨가 되어 여러분들 뜨거운 가슴 위에, 그리고 우리 아이들 여린 넋에 고이 내려앉아, 다시는 이 땅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각성의 예쁜 민들레꽃으로 다시 피어나기를, 그리하여 그 꽃에서 다시 홀씨가 바람 타고 날아올라 이 땅을 온통 평화의 발자국으로 가득하게 만들기를 빌고, 또 빕니다.

이 자리를 빌어, 살고자 했으나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파란집'의 영령들께 용서를 빕니다. 그리고 한겨울인데도 물대포에 맞아 얼어붙은 손발과 가슴을 녹이지 못하고 눈보라 속에서 잠을 청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이웃들께도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너무 늦게야 쭈뼛쭈뼛 이 자리에 섰음을...
윤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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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에서 펴내는 월간 부모님 책 <개똥이네 집> 2월호에 실린 '고무신 할배의 넋두리'



가슴 아픈 용산참사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파란집>
보리

보리 2010-01-25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자. 수익이 나면 다시 책과 교육에 되돌리자. 보리출판사의 출판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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