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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나흘 앞둔 지난 9월 5일에 팽목항 호젓한 곳에 가서 머리를 깎았습니다.
일흔 넘은 늙은이들이 나라를 이 꼴로 만들어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을 수장시켰다는 말을 듣고
'그게 바로 나로구나!' 하는 뒤늦은 일깨움에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직 시신을 건지지 못해 진도 실내 체육관에 머물고 계시는 황지현 양 어머님 곁자리에서 하룻밤을 새우고,
일요일에는 시청 앞, 광화문 광장, 유족들이 대통령 면담을 기다리며 동사무소 앞 마당에서 노숙하고 있는
청운동 동사무소 들을 두루 들러 제 잘못을 빌었습니다.

그날 저녁으로 제주도에 가서 추석날 아침에 4.3희생자들이 묻힌 곳들을 찾았습니다.
현기영 선생이 쓴 소설 <순이 삼촌> 무대인 북촌리에 들렀습니다.
돌무더기를 조그맣게 쌓아올린 애기 무덤 한 귀퉁이에 놓인 노란 귤을 보니 속절없이 가슴이 저려 왔습니다.
서북청년단으로 이루어진 '빨갱이 사냥꾼' 둘이 이 마을 언저리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빌미로
애 어른,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온 마을 사람들 436명이 하루 만에 떼죽음 당한 곳입니다.
미군정과 이승만 단독정부 정권 때 저질러진 짓입니다.
대를 이어 땅을 일구고 물질을 하고 그물 던져 고기를 잡고 살던 평화로운 이 바닷가 마을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뒤늦게 살해 현장으로 돌아온, 살아남았던 사람들이
주검으로 널브러져 있는 아이들만 따로 모아 시신들을 묻은 이 돌무덤들에
아직도 뻘 속에 묻혀 있을 세월호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서 떠올랐습니다.
<순이 삼촌>에 나오는 피의 기록이 겹쳐 쌓인 마을 사람들 주검처럼
바로 서지도 못하고 널브러져 있는 비석 한 귀퉁이에 털썩 주저앉아 애꿎은 담배만 빨아 댔습니다.

우리가 무슨 짓을 저질렀지?
또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거지?
눈앞이 아뜩해 왔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6.25에서 9.28까지 채 석 달이 되지 않는 사이에
셋은 인민군으로, 나머지 셋은 국방군으로 끌려 나가 죽은 아들들을 가슴에 묻고 사셨습니다.
말 없고 눈물 한번 비추지 않던 그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는 것을 저는 어렸을 때 본 기억이 있습니다.
하얀 베갯잇에 점점이 흩어져 있던 복사꽃보다 옅은 분홍빛 얼룩이
눈에서 실핏줄이 터져 눈물과 함께 흘러내린 자국이라는 것을 뒤늦게야 알아챘습니다. 


저는 세월호 원혼들에게 적어도 삼년상은 치러 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이렇게 아픈 곳을 찾는 발걸음을 내디뎠지만
생때같은 자식들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 아버지들은
숨을 거두는 날까지 그 아픔에 피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이 눈물을 닦아 주지는 못할망정 그 아픔을 함께 나누려고 밥을 굶고 있는 이들 옆에서
이른바 '폭식투쟁'을 일삼는 저 철없는 사람들을 어찌해야 하나요?"
추석날 밤 한라산 중턱에 떠오른 달에게 물었습니다.
아무 대답도 듣지 못했습니다.

 

윤구병 <개똥이네 집> 2014년 10월호

 

 

편집 살림꾼 지리소

편집 살림꾼 지리소 2014-09-25

古傳을 만들면서 苦戰을 면치 못하다가, 책 만드는 일에도 사는 일에도 고전하고 있는 困而知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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