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출판사 블로그

"편집 살림꾼 지리소" 살림꾼의 다른 글 49 건

닫기/열기

말이 어지러워지고 사나워지고 있습니다.
어쩌다 '트위터'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 이것이 내 나라 말인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서양 말의 뿌리를 캐다 보면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드러나는 일이 많습니다.
지중해를 휩쓴 '아테네 제국',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유럽의 넓은 땅을 짓밟은 '로마제국'의 숨결이 느껴지지요. 중국 말도 마찬가지고 영어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 모두가 '제국주의 언어'입니다.
어린애들도, 못 배운 사람들도 그 뜻을 알기 힘든 말들입니다.
돈 많고 지체 높은 사람들만 익힐 수 있었고,
저희끼리 주고받으면서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짓밟던 말들입니다.

있는 사람들은 어렵고 낯선 이 말들을 줄줄이 입 밖으로 쏟아내 없는 사람들 기를 죽입니다.
그리고 자랑스러워합니다. 못된 버릇입니다.
이 버릇 고치지 않으면 민주 세상 오기 어렵습니다.
앞서 언젠가 제가 이 자리에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세 살배기도 알아듣고 까막눈인 시골 어르신들도 알아듣는 말로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참된 민주 세상을 앞당길 수 있다고요.

그런데 '인문학' 바람을 타고 힘 있는 사람들이 힘센 나라에서 들여온 이 어려운 말들이
날이 갈수록, 해가 갈수록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걱정스럽습니다.
'사람 사는 땅'이라고 해도 될 말을 굳이 '인간의 대지'라고 합니다.
'좋고 나쁨 사이'로 써도 될 글을 '선악의 경계'라고 쓰면서 으스댑니다.
'상생한다'는 말을 '같이 산다'로 바꾸고, '동일성'을 '같음'으로,
'차별성'을 '다름'으로, '자타의 구별 없이'를 '내남없이'로 쓰면 어디 덧나나요?


어느 틈에 알아듣기 쉽고 좋은 우리 말이 어려운 '외래어'로 이루어진 '표준말'에 밀려
'사투리'로 깔보이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쓰이지 않다 보니,
이 '사투리'를 아껴서 쓴 뛰어난 문학작품 <관촌수필>이나 <한티재 하늘>은
따로 뒤에 말 풀이를 해 놓아야 읽을 수 있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 '언어 식민 상태'에서 하루빨리 빠져나와야 합니다.

한마디 한마디 내뱉을 때마다 남이 귀담아들을 수 있는 말인지,
누구나 쉽게 뜻을 깨우칠 수 있는 말인지 곰삭히고 되새겨야 합니다.
깨끗하지 않은 낯선 나라 말들을 씻고 또 씻어서 깨끗한 우리 말의 결을 되살려야 합니다.

'청산유수 같은 언어 구사 능력'보다 '물 흐르는 듯한 말솜씨'가 더 짧고 알아듣기 쉽지 않습니까?
꼭 우리 말이 더 듣기 좋을 때만 있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더러 말이 귀에 설고 뻑뻑한 느낌을 주더라도 '틀에 박힌'(상투적) '말본새'(언어표현)보다
내 나라 말로 제 뜻을 나타내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터놓고 말하자면 저도 '먹물' 가운데 '먹물'이었던지라
쉬운 말버릇을 새로 익히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윤구병, <개똥이네 집> 2014년 7월호


편집 살림꾼 지리소

편집 살림꾼 지리소 2014-09-24

古傳을 만들면서 苦戰을 면치 못하다가, 책 만드는 일에도 사는 일에도 고전하고 있는 困而知者!

댓글을 남겨주세요

※ 로그인 후 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