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출판사 블로그

2001년 1월, 《보리 국어사전》 엮는 일을 함께할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토박이 사전 편찬실’이라 이름 붙인 이 모임은 지금 보리출판사 대표 살림꾼을 맡고 있는 윤구병 선생님이 이끌었습니다. 윤 선생님은 “머릿속부터 싹 비워라.”라는 말로 운을 떼며 “어떤 사전도 흉내 내지 말고 ‘보리다운’ 사전을 만들자.”고 했지요.

(사전이 끝나는 날까지 이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몇 가지 큰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째, ‘즐겁게’ 보는 사전을 만든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라는 말이 있듯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그림만큼 좋은 설명은 없다. 사물 그림뿐만 아니라 우리 자연, 우리 문화를 담은 그림을 많이 실어서 아이들이 즐겁게 보면서 우리 것을 배우도록 한다.

 

둘째, ‘느리게’ 보는 사전을 만든다.

낱말 뜻만 ‘후딱 찾는’ 사전이 아니라, 늘 곁에 두고 한 쪽 한 쪽 천천히 넘겨 가며 보고 싶은 사전으로 만들자. 책갈피마다 볼거리와 함께 재미있고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가득 담아 아이들이 ‘느리게’ 보는 사전을 만든다. 

 

셋째, 북녘 말을 많이 싣는다. 

오랫동안 나뉘어 살아오는 동안 달라진 남녘과 북녘의 말 차이 때문에 점점 의사소통이 어려워지고 있다. 통일이 된 날 대화를 나누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북녘 말을 많이 보여 준다.

 

넷째, 뜻풀이는 쉽고 짧게 한다.

뜻풀이는 초등학교 저학년도 알 수 있을 만큼 쉽고 짧게 한다. 되도록 한자말이나 외래어는 쓰지 않는다. 

 

그래서 먼저 아이들 마음이 되어, 아이들을 스승 삼아 사전을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초등학교 교과서, 참고서, 교사용 지도서에서 학습에 필요한 낱말뿐만 아니라 수백 권이 넘는 창작 동화와 우리 나라 옛이야기, 학급 문집, 아이들이 쓴 일기, 마주이야기 들을 모아 꼼꼼히 살펴서 아이들이 둘레에서 자주 만나는 자연이나 사물, 입말들을 뽑아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사느라 누구보다도 아이들 마음을 잘 아는 초등학생 학부모와 초등학교 선생님들도 만나 아이들 생활이나 아이들 생각을 많이 들었어요. 우리가 한 뜻풀이를 아이들에게 읽어 주고 아이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도 살펴보았지요. 이런 노력으로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사전을 엮을 수 있었습니다. 

 

2008년 5월에 나온 《보리 국어사전》은 겉모습부터 이제껏 나왔던 다른 사전과 많이 달랐습니다. 비닐 커버가 아닌 양장 제본에, 깔끔하고 세련된 본문 디자인, 단정하면서도 정감 있는 표지까지. 어디에도 딱딱한 학습용 사전이라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니, 이게 사전이라고요? 사전이 어쩜 이렇게 예뻐요?” 라며 놀라기도 하고, 고급스럽고 세련된(?) 생김새를 보고 종종 아이들 사전인지 어른 사전인지 헷갈려 하기도 했습니다.  손녀한테 《보리 국어사전》을 선물했다는 어떤 분에게 “손녀가 사전을 좋아하던가요?” 하고 넌지시 물었더니 “원, 애 보라고 사다 줬더니 애 아범이 거실에 두고 더 열심히 보던데요.” 하더군요.

 

이처럼 사전을 한번 펼쳐 보고 나면 아이들뿐 아니라 부모님들도 참 좋아하면서 ‘우리 어릴 때 이런 사전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 나라도 이런 사전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라는 말씀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이름난 곳에서 주는 큰 상도 여러 번 받으면서 《보리 국어사전》은 널리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시간이 지나 2009년에 제7차 교육 과정이 개정되면서 2011년까지 3년에 걸쳐 초등 교과서가 모두 새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국립국어원에서 어문 규정 개정안이 나왔지요. 표기법이 바뀌거나 표준어로 새로 인정된 낱말도 더러 생겼기 때문에 이참에 개정판을 만들어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새 교과서에 나온 낱말을 뽑아 보니 올림말로 추가할 낱말이 2,000개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또 욕심이 났습니다. 이렇게 2,000개쯤 보태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개정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이들이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만나는 낱말과 새로 생긴 낱말까지 더 뽑아 올림말에 보태자! 그래서 정보 통신 분야나 국제 사회 문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추가로 등재된 우리 문화재에 이르기까지 샅샅이 살펴서 낱말들을 가려 뽑아 올림말에 보태었습니다. 초판에 실었던 낱말도 다시 살펴 뜻풀이와 보기 글을 다듬고 거의 쓰지 않게 된 올림말은 걸러 내었습니다. 

 

그림도 초판이 나온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보리출판사에서 나온 도감 가운데서 필요한 그림을 뽑고, 도감에 없는 것은 300점 가까이를 새로 그려서 보탰습니다. 개정판에는 세밀화만 2,776점, 사물이나 도형 그림이 303점, 문화재 사진 70점, 국기 그림 193점까지 해서 모두 3,300점이 넘는 시각 자료를 실었습니다. 이만큼 아름다운 시각 자료를 많이 담은 사전은 지금껏 온 세상 어디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이런 사전은 만들기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인쇄기를 돌리기 직전까지도 새로운 정보가 생기면 더해서 개정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가장 따끈따끈한 정보를 담은 사전을 만들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꼬박 2년이 걸렸습니다.

 

가슴 조마조마해 하며 첫 판을 펴내던 때와는 달리, 지금은 가슴을 활짝 펴고 《보리 국어사전》 개정판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우리 아이들에게 든든한 글동무가 될 좋은 사전을 자신 있게 건네줄 수 있어 행복합니다.

 

《보리 국어사전》은 우리 말과 우리 문화를 함께 배울 수 있는 사전입니다.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에게도, 우리 말을 배우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우리 말과 우리 문화를 함께 배우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토박이 

토박이는 우리 말과 문화, 그리고 이 땅의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좋은 책을 만들고자 애쓰는 사람들의 작은 모임입니다. 그동안 《보리 국어사전》과 <겨레 전통 도감>을 만들었고, 《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새 도감》 《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버섯 도감》을 펴냈습니다. 모두 20권으로 엮일 <온 겨레가 함께 보는 옛이야기> 그림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글쓴 이 | 토박이 기획실

 

 

※ 개똥이네 집 100호 (2014년 3월) '마음으로 만든 책'에 실린 글을 옮깁니다. 

 

 

 

편집 살림꾼 누리짱

편집 살림꾼 누리짱 2014-03-04

보리출판사가 만든 그림책 브랜드 개똥이에서 세상의 모든 그림책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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