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출판사 블로그

"보리 마주 이야기" 갈래 글122 건

닫기/열기


산골 아이 1

임길택

어머니와 산밭으로 가 콩밭을 매는데
윗골 한 두둑을 무엇이 다
뜯어 먹었다.
토끼가 한 짓이라 했다.

그 토끼를 잡아야겠다며
어머니가 웃으며 나를 보았다.

니가 걸음마를 배워
마당에서 놀 때
익지 않은 토마토도 따고
배추밭에 들어가
어린 싹을 부러뜨려도
할머니는 널 보고
"토끼 같은 우리 새끼." 하며
귀여워하셨단다.

그 토끼가 배가 고파
좀 뜯어 먹은 걸
잡으면 어떡하니.

어머니는 딴 사람처럼 되어
이야기를 해 주셨다.

(1997년 11월 29일)


임길택 선생님이 어린이들에게 남기고 간 시, <산골 아이>의 첫번째 시입니다. 아이들이 쓴 시에 가슴 뭉클한 적은 있지만 어른들이 쓴 동시는 그냥 그랬는데, 임길택 선생님 시는 달랐습니다. 농사꾼을 닮아 어수룩한 사람, 부지런한 사람, 무지 착하고 순한 사람이라고 추억하는 분들처럼 선생님을 뵌 적도 알고 지낸 적도 없지만
'임길택' 선생님의 성함만 들어도 사진만 보아도 글을 보아도
제 마음이 이상해지고 눈물이 나올 것만 같습니다.

임길택-선생님.gif
임길택 선생님


가난한 탄광 마을과 산골 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아이들과 함께 착하게 살다 하늘 나라로 가신 임길택 선생님의 첫번째 산골아이 시를 몇번이고 몇번이고 읽어 봅니다.

제가 어릴 때 농촌 마을에서 자랄 때 이웃집 딸기밭에 들어가 익지 않은 새파란 딸기를 한소쿠리씩 따오고
말린다고 널어 놓은 깨를 들고 돌아다니며 다 털어 버리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마을분들은 '허허' 웃으시기만 했다고 합니다.
전 '멧돼지같은 우리 새끼'였습니다.

요새 멧돼지와 고라니때문에 농촌마을은 걱정이 많습니다.
도시에서 사는 저는 그냥 막연히 '동물을 멋대로 죽이면 안돼'라고만 생각했는데,
지난 여름 변산에서 땡볕 아래 밭을 매면서 그렇게 힘들게 지은 농사를 멧돼지와 고라니때문에 망쳐버린
농부들의 심정을 아주 아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겨우 며칠 일하고 알게 되었다고 얘기하는 것이 참 부끄럽습니다.)
머리로만 살아온 것이 참 부끄러워졌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멋대로 동물을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변산에서 멧돼지때문에 속상한 일을 겪고 계신 김희정 선생님도 그리 생각 안하시는데 어찌 제가 감히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안녕하세요.
  농부가 콩 세알을 심는 까닭이 새가 한 알, 벌레가 한 알, 농부가 한 알 갖기 위해서라고 했던가요? 허나 멧돼지 앞에 고구마는 이런 법칙이 통하지 않나 봅니다. 올해 산비탈에 200평 남짓 심어서 애써 가꾼 고구마를 멧돼지 가족이 몰려와 한 알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먹어버렸으니 말입니다. 봄부터 고구마 모종 기르느라 애쓴거 하며, 고구마 밭 풀 매주며 들인 정성을 생각하면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습니다.
  면사무소에 멧돼지 피해 신고를 했더니 면직원이 멧돼지 잡는 포수를 소개시켜 주더군요. 포수가 와서 하는 말이 멧돼지가 이곳 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에도 자주 나타나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랍니다. 아니나 다를까 공동체에 매일 같이 오시는 형님도 집 앞에 심어 놓은 고구마를 하나도 안 남기고 모두 파먹었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도 멧돼지가 산에서 내려와 고구마를 먹어 치우기는 했지만 올해처럼 한 알도 안 남기고 다 먹어치우지는 않았는데 올해는 멧돼지 숫자가 엄청 늘었는지 여기저기 멧돼지가 다녀간 흔적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논둑까지 다 파헤쳐 놓았으니까요. 산 가까운 밭에 고구마 심기는 이제 힘들어졌습니다. 콩도 마찬가지입니다. 콩이 한창 익을 때가 되면 고라니가 내려와 잎사귀를 전부 따먹어 버려서 이래저래 걱정입니다.
  멧돼지와 고라니에게 입은 피해를 생각하면 화가 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것도 인간이 그동안 저지른 죄의 댓가를 받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제 산에는 멧돼지와 고라니의 천적이 살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놈들은 해가 거듭될 수록 식구들이 늘어나는 것이지요. 또한 산 이곳저곳이 마구 파헤쳐져 멧돼지가 산에서 먹이를 구하기 힘드니까 사람이 사는 곳까지 먹이를 찾아 내려온다고 합니다. 자연의 먹이사슬 구조가 깨지면서 그 피해가 고스란히 사람들에게 돌아오고 있는 셈이지요. 애시당초 잘못은 사람들에게 있으니 멧돼지, 고라니만을 탓할 수는 없겠지요.
  가끔씩 끔찍한 상상을 해봅니다. 사람들이 자기들만 편하게 살겠다고 산이고, 강이고 마구마구 파헤치니까 그곳에 기대어 살아가던 동물, 식물들이 우리도 더 이상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는 못살겠다며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는 겁니다. 농작물을 마구 파헤치고 사람 사는 마을을 떼지어 공격하고, 동물들의 습격에 사람들은 손 쓸 새도 없이 당하기만 하는 상상.
  날이 갈 수록 심각해져가는 환경 오염과 지구 온난화를 보면 언제까지 사람들이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우리가 아무런 생각 없이 누리는 편리함 속에서 우리들 스스로는 알게 모르게 빠져나올 수 없는 절망의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요. 오늘 내 몸이 힘들더라도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삶을 선택할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모두들 건강하십시오.
2009. 11.1 김희정

변산공동체학교 소식지] 스물일곱번째 이야기

농촌 마을이 어려워진 것은 모두 도시 사람들 때문일 겁니다. 멧돼지의 천적을 마구잡이로 죽여 생태계를 파괴한 것도 돌아가기 귀찮다고 산허리를 뚝 끊어 길을 내 동물들의 삶의 터전을 망쳐 놓은 것도, 강이 굽이 굽이 돌아 흐르는 것이 보기 좋지 않다고 일직선으로 바꾸고 동식물이 침범하지 못하게 콘크리트 발라버린 것도 모두 도시 사람들이니까요.

땀흘려 농사 지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멧돼지때문에 농가 피해가 많다고 하니 멧돼지를 잡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토끼 같은 우리 새끼"라 말하며 사람이 자연의 일부인 것을 받아들이는 농부들 앞에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자연은 점점 더 파괴되어 가고, 그 대가로 애꿎은 동물들만 자꾸 죽어갈 것입니다.
심각하게 어긋나 버린 이 길에서 우린 방법을 찾아야만 하는데, 그 방법도 자꾸 자연을 파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도시 사람들의 눈으로만 방법을 찾아서이기 때문일 겁니다.
농부의 마음으로 농촌 공동체의 마음으로 임길택 선생님의 마음으로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길을 우리가 찾아낼 수 있을까요?

한 번도 뵌 적 없는 분이지만 선생님이 참 그립습니다.



<임길택 선생님이 쓰고 엮은 책>



보리

보리 2010-01-12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자. 수익이 나면 다시 책과 교육에 되돌리자. 보리출판사의 출판 정신입니다.

댓글을 남겨주세요

※ 로그인 후 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