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출판사 블로그

아이들한테 우리 나라 근현대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우리 나라는 조선왕조 때 '비무장 국가'였습니다.
단순하게 말해서 나라를 지킬 군대와 무기가 거의 없었던 나라였고,
돌려서 말하면 500년 가까이 평화롭게 살던 나라였습니다.
19세기와 20세기에 들어서서 힘센 나라들이
이 '은자의 왕국'이자 '동방의 불빛'을 노리기 시작했습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모두 이 나라를 만만하게 보고 집어삼키려고 했지요.
마지막에는 중국과 러시아, 일본과 미국이 남았습니다.
중국은 옛날부터 우리 나라를 '속국'으로 여겼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이 우리 나라를 어떻게 집어삼켰는지는 온 국민이 다 알고 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강점'은 미국이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면서 끝났습니다.
우리 힘이 약한 틈을 타서 미국과 소련은 이 나라를 두 동강 내고,
북녘에는 공산 정권, 남녘에는 자본 정권을 내세웠습니다.
갑자기 이념 논쟁이 벌어지고 이어서 한 민족이 두 적대 진영으로 갈라서서
형제들한테 총칼을 들이대는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1945년부터 1950년 사이에 이 나라에 살던 사람들 가운데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십만 명 가운데 한 명 꼴도 안 되었습니다.
힘센 나라들이 군대를 앞세워 힘으로 밀고 들어와 북녘에서는 '자본주의'가 나쁜 것,
남녘에서는 '공산주의'가 나쁜 것이라고 가르치고,
무기를 쥐어 주면서 서로 싸우라고 부추기는 바람에
전쟁터에서 총알받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게 이 나라 젊은이들 운명이었습니다.
이 전쟁통에 부모님은 서울로 이사 온지 일년 만에 자식 여섯을 잃었습니다.
그때 제 여섯째 형은 겨우 열다섯 살이었습니다.
그 뒤로 제 부모님은 나머지 자식이라도 살리겠다고 다시 농촌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 민족한테 이런 큰 비극을 안긴 사람들이 이제 남북을 화해시켜 평화공존을 시키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속셈을 감춘 채 미국은 미국 대로, 일본은 일본 대로, 러시아는 러시아 대로, 중국은 중국 대로
얼굴에 웃음을 담고 남과 북을 어르고 으르고 등치고 간 빼는 짓을 일삼고 있는데도
힘없는 이 나라 백성들은 제대로 입 벌려 '이 도둑놈들아!' 하고 한마디도 외치지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강도들로부터 벗어나 우리끼리 다시 하나가 되어 평화롭게 살 길은
6자 회담 틀 안에서 남북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아닙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한반도 안에서 어떤 대량 살상 무기도 쓰이지 않도록
핵무기를 비롯한 무기들을 없애고, 남북이 힘을 모아 '영세중립국가'를 선포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중국과 일본, 미국과 러시아를 참된 '우방'으로 맞을 수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들었던 노래가 다시 제 귀에 울려옵니다.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 속지 마라. 일본놈이 일어나니, 조선 사람 조심하세."

-윤구병, <개똥이네집> 2013년 8월호.


편집 살림꾼 지리소

편집 살림꾼 지리소 2013-07-31

古傳을 만들면서 苦戰을 면치 못하다가, 책 만드는 일에도 사는 일에도 고전하고 있는 困而知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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