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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에는 없는 것이 많다.
경찰, 검사, 판사, 변호사, 국정원 직원이 없다.
총든 사람도 없다.
신문기자, 방송기자도 없다.
그런데도 이런 사람들이 있어야 나라가 잘 되고, 나라가 있어야 모두가 잘 살 수 있다니,
그러려니 여길 뿐이다.
그래도 우리 마을 사람들은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탈도 허물도 없어서 태어나서 늙어 죽을 때까지 제 몸 놀려 먹을 것, 입을 것, 잠자리 스스로 마련하고,
남는 것을 이웃과 나누기도 하고 '대처'(도시)에 사는 아들딸에게 바리바리 싸 보내기도 하는 우리가
왜 그 사람들까지 먹여 살릴 짐을 져야 하지?

힘센 나라 '중국'에서 들여온 낱말 가운데 듣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죄'를 지은 적도 없고,
'벌'을 받은 일도 없는데, 왜 '죄' 주고, '벌' 주는 사람들까지 우리가 거두어 먹여야 하지?
'나라님'들이 시키는 일이고, 그 말 안 들으면 혼내 주는 게 그이들이 줄곧 해온 일이니,
어쩔 수 없이 힘없는 '죄'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우리 마을 사람들 속맘이라고 본다.

자기네들 멋대로 쌀 한 톨 안 나는 도시로 우리 아이들 끌어들여,
머리만 굴려도, 손발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허튼소리로 꼬여,
몸에 안 좋은 온갖 먹을 것, 죄 없는 여러 사람 목숨 한꺼번에 앗아갈 '첨단 무기'를 만들라고 우기고,
말 안 들으면 '죄' 뒤집어씌우고, '벌'로 앙갚음하는 사람들이 꾸리는 나라가 잘 되는 나라이고,
그 말 고분고분 듣는 게 잘 사는 길일까?

'우리 모두 일손 놓을 거야. 우리 먹을 것, 우리 입을 것, 우리 잠자리만 챙기고, 그만큼 게으르게 살 테니,
너희들도 먹고 입고 자려면 우리처럼 살아' 하고 '나라님'과 기기에 빌붙은 어중이떠중이들을 나 몰라라 하면,
이 '힘 있는' 사람들 무슨 짓을 저지르려 들까?
그 웃음 짓는 얼굴들 어떻게 바뀔까?

속이 타고 애가 터지면 짐짓 불끈 솟는 이 불덩이를 삼키고,
나쁜 마음 먹지 말자, 해님 본받고, 물님과 바람님 뜻 따라 그저 '땅심'(땅이 주는 힘)만 믿고,
좋게 좋게 지내자고 견뎌 온 착한 우리 마을 사람들.
이 사람들 마음을 여지껏 저이들은 한 번이나 헤아려 본 적이 있을까?

거슬러 거슬러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 봐도, 우리 마을이 처음 생기고 난 뒤에 오늘까지,
아래위로 안팎으로 뒤집어 살펴봐도 다스리는 사람들 가운데 우리 마을 걱정하는 사람이 없다.

이런 꼴로 우리 마을 내팽개치다가는 나라도 없고, 다스릴 길도 막힐 거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거야?' 하는 외침이 목젖까지 치밀어오르지만, 아직은 참고 있다.
견디다 견디다 못하면 터져나올 테지.
그때가 되면 하늘에서도 불벼락이 내리고, 울고 울고 또 우는 하느님의 눈물이 온 땅을 가득 채울 테지.
바람도 우리 마을 사람들 쪽에 서서 저네들 다 휩쓸어 버릴 테지.

'저 해는 언제 떨어지려나. 너도 죽고 나도 죽자'는 마음 먹기 전에 저이들 마음자리가 하루 빨리 바뀌기를 기다린다.

-윤구병, <개똥이네집> 2013년 3월호에서

편집 살림꾼 지리소

편집 살림꾼 지리소 2013-03-25

古傳을 만들면서 苦戰을 면치 못하다가, 책 만드는 일에도 사는 일에도 고전하고 있는 困而知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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