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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버시'라는 말이 있습니다. 거의 안 쓰는 우리 말이지요. 부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중국 말이 들어오기 전에 '여자'를 우리 말로 어떻게 불렀을까요?
옛 기록을 살피면 '가시'로 불렀습니다.
('화랑花郞'을 '가시내'라고 불렀다는 기록도 있고,
'서방각시' 할 때 '각시', 또 '아가씨' 같은 말에도 그 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요즈음 여자를 '꽃'으로 표현하면 언짢아하는 '여성'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여자를 노리개로 대상화한다고 여기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여자를 꽃으로 보는 것은 '대상화' '사물화'와는 거리가 멉니다.
'여자'를 가리키던 '가시'는 15세기에는 '곶'으로, 그리고 18세기 이후로는 '꽃'으로 바뀌지요.
그러니까 꽃은 풀과 나무가 피워 올린 아름다움을 도드라지게 '여성화'한 것이지요.
다시 말해 사물을 '의인화'한 좋은 본보기입니다.

한글은 세종 때 지은 우리 글이지만 우리 말은 아이들 입에서 싹텄습니다.
아이들은 입 밖에 내기 가장 쉬운 소리에 가장 소중한 뜻을 담습니다.

'마'(엄마, 맘마), '바'(아빠, 파파)는 다물었던 입술이 열릴 때 맨 먼저 튀어나오는 소리입니다.
물, 불, 비, 바람, 밀보리, 벼, 밭, 벌(들판), 뫼(산), 메(들), 매(흐르는 물), 빛, 볕.......
모두 입술소리입니다.
이 말 속에는 우리 삶에 가장 필요한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소리 내기 힘든 말일수록, 그리고 힘센 사람들이 힘센 나라에서 마구잡이로 들여온 말일수록 우리가 살아가는 데 쓸모없는 말이기 십상입니다.
그런 말 버리고 깨끗한 우리 말, 쉬운 우리 말을 되찾자고 하는 까닭도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꼭 필요한 말만 하자는 뜻입니다.

아이들은 쓸데없는 말은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 '입 다물고 내 말 잘 들어' 하고 윽박지르지 말고,
아이들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아이들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일은 우리 말을 되살리는 첫걸음입니다.

쓸 만한 우리 말들이 '방언', '사투리'로 한 곁에 제껴지고 교과서에도 사전에도 '교양 있는 지식인'들이나 알아들을 수 있는 어려운 말들이 가득합니다.
이 버릇 그대로 놓아두면 힘센 사람들만 입을 여는 이 고약한 세상을 바꾸어 낼 길이 없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이 쓰신 <한티재 하늘>을 읽어 보셨나요?
이문구 선생님이 쓰신 <관촌수필>도 읽어 보셨나요?
이 소설들에는 안동 사투리, 서산 사투리가 바글바글 합니다.
그래도 우리 현대 소설 가운데 으뜸가는 작품으로 칩니다.
내 고향 표준말이 우스갯거리가 되고, 서울 사투리 흉내가 대접을 받는 문화 시민 의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말의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말의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삶의 민주화도 자리가 잡힙니다.

'여자'보다 '꽃'이 더 아름답습니다. '남자'보다 '벗(버시)'이 더 믿음직합니다.

'가시'와 '버시'가 손잡고 가는 길은 '가시밭길'이 아니라 '가시밧길('꽃'과 '벗'이 함께 가는 길)'입니다.

-개똥이네집, 2012년 8월호.

편집 살림꾼 지리소

편집 살림꾼 지리소 2012-08-24

古傳을 만들면서 苦戰을 면치 못하다가, 책 만드는 일에도 사는 일에도 고전하고 있는 困而知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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