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연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만이 희망이고, 사람끼리만 어울려 살아도 잘 살 수있다는 환상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우리가 흙에서 나는 것들에 기대 살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겠지요? 그러나 바람은 어떤가요?
우리 코에 바람이 5분만 드나들지 않아도 우리는 죽은 목숨입니다.
흔히 '생명'이라고 부르는 한자말을 우리 말로 바꾸면 '목숨'입니다.
옛분들은 목으로 드나드는 들숨 날숨을 합해 목숨이라고 일렀습니다.
이 목숨은 바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바람을 마시고 삽니다.
바람 속에 섞여 있는 산소를 들이켜 몸 놀리고 손발 놀립니다.
그런데 이 바람 속에 섞인 산소는 풀과 나무가 내쉬는 날숨입니다.
나무와 풀은 우리가 내쉬는 숨 속에 섞여 있는 이산화탄소를 마시고 자랍니다.
이렇게 나무와 사람은 목숨을 주고받는 사이고 목숨을 나누는 한 식구입니다.
보리출판사가 책 한 권을 만들 때마다 이 책이 나무 한 그루를 베어 낼 가치가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은
사람을 위해 목숨 바치는 나무한테 사람은 무엇으로 어떻게 갚아야 하는가를 되돌아보자는 뜻에서입니다.
바람이 하는 일은 사람 살리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바람이 없으면 밀, 보리, 쌀, 콩, 옥수수 들도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즐기는 과일들은 벌이나 나비 같은 곤충들이 꽃가루받이를 해서 열매 맺지만,
우리 밥상에 날마다 오르는 낟알로 이루어진 먹을거리는 모두
바람이 사이에 들어 꽃가루받이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 목숨을 이루고 지켜 주는 것들이 없으면 사람도 자연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흙에 대해서, 바람에 대해서 무얼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물과 불, 바람과 흙의 소중함을 머리만 굴려서는 알 수 없습니다.
직접 산과 바다, 들판에서 몸으로 겪어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몸 놀리고 손발 놀리지 않으면 평생 동안 알 수 없는 것이 자연이 하는 일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사람의 아이이기에 앞서 자연의 아이입니다.
제가 두고두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데도 아직도 귀담아듣는 어른들이 드뭅니다.
제발 우리 아이들의 숨통을 틀어막지 마세요.
흙을 디디고 살아야 할 발이 시멘트 바닥만 딛고 살게 내버려 두지 마세요.
바람 속에서 바람과 함께 춤추고 노래할 나이에 손발을 꽁꽁 묶어 놓지 마세요.
아이들이 싫다고 하더라도, 온 세상 어른들이 한데 힘을 모아,
우리 아이들을 산과 들로, 햇살과 바람과 물과 흙이 기다리는 곳으로 몰아냅시다.
그래야 아이들 살길이 열리니까요.
아이들을 살리는 게 교육의 궁극 목표라면
온 생명이 거기에 기대 살고 있는 해님에게, 흙님에게, 바람님과 물님에게
우리 아이들을 맡기는 게 너무나 자연스럽지 않나요?
-<개똥이네 집> 2012년 7월호.
옥수수
2012-07-02 18:52
댓글을 남겨주세요
※ 로그인 후 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