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출판사 블로그

선거가 끝났군요.

얼치기 농사꾼이기는 하지만 농사일을 보람 있게 여기는 저는 이번 선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군소정당ㅇ에서 비례대표로 내세운 농사꾼 한둘이 눈에 띄었지만

그 많은 후보자들 가운데 농사짓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남북으로 갈라져 피 흘리는 나라가 이번에는 동서로 갈라섰습니다.

조선시대 말기의 당파 싸움을 보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러다 이 나라 망가지면 우리 아이들 어디에 발붙이고 살지요?

 

선거판 돌아가는 꼴을 보니 여당도 야당도 제정신이 아니더군요.

모두 이성을 잃었어요.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죄다 독기에 가득 차 있어요.

머리 맞대고 살림 제대로 꾸려서 나라도 살리고, 농촌도 살리고,

젊은이와 어린이도 살리자는 뜻으로 의회 활동을 할 사람이 가뭄에 콩 나기이고,

패거리 의식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떼거리로 모였다고 하면 지나치게 가혹한 평가일까요?

이번 국회는 99퍼센트를 살리자는 국회가 아니에요.

제눈에는 그렇게 보여요.

이렇게 해서는 너도나도 살길이 없어요.

 

의회를 이성적인 공론의 장으로 만들자고 당적도 버리고 나선 사람마저

발붙일 길 없게 되어 버렸어요.

제가 이름을 댈까요?

가장 의회 활동을 열심히 했다는 평가를 받은 김성식 같은 사람을 외면한 것이 이성적 판단이었을까요?

유일한 농사꾼 대표였던 강기갑 같은 사람마저 지켜주지 못한 것은요?

김용민 같은 사람이 떨어진 것은 본인을 위해서도 잘된 일이라고 여겨요.

그러나 그 한 사람한테 똥물을 뒤집어씌워

정작 더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한테 면죄부를 준 후환은 어떻게 감당하지요?

 

늙은 저야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지만 언론의 자유를 위해서

'불법파업'을 할 수밖에 없던 한국방송, 문화방송, 연합방송(KBS, MBC, YTN) 노동자들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먼지 없는 방'에서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은 어디에 호소할까요?

'사람 냄새'는 안 나고 돈밖에 모르는 재벌 기업이 이 사람들 목숨을 살릴 수 있을까요?

 

'추적망상증'에 대해서 들어 본 적 있나요?

제 나이 또래에 바른말을 하던 사람 가운데 열에 아홉은 아직도 이 악몽에 시달리고 있어요.

박정희 시대 때 '중앙정보부' '보안사령부'가 불법사찰을 하고 가두거나 죽이거나 밥줄 끊기를 밥 먹듯이 저질러 생긴 정신병이에요. 그런데 그 악몽이 도지고 있어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지요? '벽에도 귀가 있다'는 말도 있어요.

이런 하찮은 글을 쓰면서까지 저는 떨고 있어요. 사찰당할까 봐서요.

이대로 가다가는 온 나라에 '침묵의 문화'가 되살아날 거예요.

이 죽음의 문화를 우리 아이들한테까지 물려주어서는 안 돼요.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날마다 어린이날이 되어야 해요.

모두 정신 차리고 해냅시다.

우리 아이들을 지킵시다.

 

-개똥이네 집, 2012년 5월호

편집 살림꾼 지리소

편집 살림꾼 지리소 2012-06-27

古傳을 만들면서 苦戰을 면치 못하다가, 책 만드는 일에도 사는 일에도 고전하고 있는 困而知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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