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식구 가운데 한 사람이 제 등을 떠밉니다.
제주도에 어서 가라고요. 구럼비 바닷가에 가 보라고요.
몸도 마음도 쉬고 세계 관광 유적으로 알려진 아름다운 섬 구경하다가 오라고 그런 걸까요?
아닙니다.
그 아름답던 강정마을 구럼비 바닷가는 지금 지옥입니다.
해군기지 짓겠다고 포클레인 기중기 꾸역꾸역 몰려들고,
삼발이들이 산더미처럼 쌓이더니,
아이들이 숨바꼭질하고 멱 감던 그 아름다운 바위와 물을
깡그리 부수고 더럽힐 폭약까지 실어 나르고 있습니다.
이 해군기지를 뭣 땜에 누굴 위해 짓느냐고요?
제주도를 지키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우리 나라를 위한 것도 아닙니다.
중국 본토를 노리는 미국의 군사 기지입니다.
제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전쟁 산업이 돈벌이가 가장 잘 되는 사업이라는 것은 옛날부터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을 움켜쥐고 있는 0.1퍼센트도 안 되는 사업체들, 철강 산업, 석유 재벌, 금융업.....
카네기, 록펠러, 제이피모건.......
모두 전쟁으로 떼돈을 벌었고, 지금도 벌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이른바 '방위산업체'도 거의 모두 재벌들 손안에 있습니다.
이번에 구럼비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폭약을 실어나르는 기업도
삼성, 대림 같은 곳입니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그래서 핵미사일이 까마귀떼처럼 오간다면,
미국 군사기지가 될 제주도는 맨 먼저 송두리째 물 밑에 가라앉을 겁니다.
그 아름다운 섬이 통째로 사라질 겁니다.
구럼비 바다를 지키려는 강정마을 사람들 싸움이
조그마한 한 동네의 지역 이기심 때문에 생겨난 게 아니기에,
지금 온 세계 사람들이 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나이 일흔을 넘긴 문정현 신부님이 돌아가실 자리를 여기로 정한 것도
평화를 지키려는 뜻에서입니다.
제주도 평화를 넘어서, 우리 나라가 전쟁의 잿더미로 바뀌지 않게 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세계 평화를 위해서 발가벗고 추위 견디면서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다 4.3 항쟁 때 그랬듯이 '육짓것'들이 떼로 몰려와
다시 이 고운 섬, 고운 사람들 짓밟고 있는 틈에 끼어 덩달아 짓밟히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벌거벗은 몸으로 전투경찰과 맞서고 있는 이 노인네를 보는 순간,
내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문정현 신부는 어린애 같은 할아버지입니다.
새만금, 방사성 폐기물 공장 설치 반대 운동이 한창일 때
저는 전라북도 부안 변산반도 끝자락에 있는 조그마한 섬마을에서
이분이 노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주머니 나이에 벌써 할머니가 되어 버린 까만 손, 까만 얼굴 사이에서
동생 문규현 신부가 뒤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동안
이 수염 허연 할배가 어린애처럼 기타를 어루만지면서
섬마을 아이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흥엉거리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같이 늙어가는 나는 이 '육지'에서 '몸 성히, 성히, 성히' 잘 있습니다.
-윤구병, <개똥이네 집> 2012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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