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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는 단동 창고에 보관중이던 콩이 썩어 내다 버려야 했습니다.

북에 보내지 못한 의료 시약도 유효기간이 지나 폐기처분해야 했습니다.

세밑에는 북녘 지도자의 급서라는 뜻밖의 소식이 전해져

한반도의 겨울 추위가 얼마나 계속될지 가늠할 길이 없습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앞날이 불확실할수록

북녘 어린이들의 안부가 더 걱정스런 어제 오늘입니다."

 

'어린이어깨동무' 이사장 권근술 선생이 저에게 보낸 연하장의 앞부분에 실린 글입니다.

이 글을 읽는 순간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아시는 분은 잘 알겠지만,

'어린이어깨동무'는 그동안 북녘 어린이들 건강도 지켜 주어야 한다는 뜻에서

북녘에 아동병원도 세우고, 영양 결핍에 시달리는 아이들 걱정에 두유공장을 짓기도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남녘에서는 한번 쓰고 버리는 주사기도

북녘에서는 귀한 의료기구로 여겨 버리지 않고 소독을 해서 여러 차례 쓴다는 것을 알고,

기증받거나 사서 창고에 쌓아 두고 보낼 날이 오기만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벌써 두 해 전에 들었습니다. 시약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현 정부가 들어서고부터 굶주리고 있는 동포에게 식량을 보내는 것에서부터

아이들에게 갈아 먹일 콩, 아이들 병원에서 꼭 필요한 약과 주사기까지 보내지 못하게 막아서는 바람에

콩은 창고에서 썩어나, 버릴 수밖에 없었고,

의료용품은 이미 유효기간이 넘어서 고스란히 폐기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니,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이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깨동무가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정권 때

어느 대기업에서 거저 빌려 준 공간에서 더부살이하다가

정권이 바뀌자마자 당장 비우라는 바람에 '민족의학연구원' 건물로 옮아가

새로 둥지를 튼 사실을 아는 분은 거의 없으리라 여깁니다.

이렇게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우리 아이들은 통일된 나라에서 오순도순 도우면서 살아야 하고,

그 징검돌을 뜻 맑은 이들이 놓아야 한다는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어려운 살림을 꾸려 온 분들이 보낸 연하장에 담긴 사연이어서 더 가슴이 저렸습니다.

 

이 어둠이 언제나 가실까요?

남녘에 큰 흉년이 들었던 1980년 초에 북녘에서 식량을 보내 주어

온 나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심지어 군사정권 때조차 꼭 필요한 것들은

인도주의 정신에서 이렇게 주고받을 수 있었는데,

그때보다 더 뒷걸음질 친 남북 관계는 언제 어떻게 다시 복원될 수 있을까요?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두 동강 난 나라,

그래서 가까운 중국 여행조차도 '해외여행'이 될 수밖에 없는 나라를

후손에게도 물려주어야 한다는 매정한 부모 가운데 혹시 나도 끼어 있지 않은지

한 번쯤 되돌아보아야 할 때인 듯합니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는 한겨울입니다.

이 눈이 떡가루였으면 하고 퀭한 눈으로 바라볼

북녘 아이들의 여윈 모습이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윤구병, 2012년 2월호에서

편집 살림꾼 지리소

편집 살림꾼 지리소 2012-01-25

古傳을 만들면서 苦戰을 면치 못하다가, 책 만드는 일에도 사는 일에도 고전하고 있는 困而知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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