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에서 일하게 된 뒤에
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활동하시는 선생님들이 교실에서 아이들과 겪은 이야기를 써내려가신 교단일기를 보게 되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꾸준히 쓰기 힘든데, '일'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일기로 꾸준히 써내려간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잖아요. 아이들을 마음으로 사랑하고, 교사라는 직업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일거에요.
선생님들이 쓰신 교단일기를 보고 '나도 일기를 써야지' 하는 생각을 태어나서 처음 진심으로 하게 되었어요.
그동안은 그냥 스쳐지나가는 기분 정도만 끄적끄적 몇 번 써본 것이 다였는데, 이젠 살면서 일하면서 겪는 생활과 그 가운데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써내려가고 싶어졌어요. 하지만 역시나 일기 쓰는 일은 쉽지가 않아요.
지난 주에 임길택 선생님이 쓰신 <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를 다시 보았어요. 낯선 곳에 가면 일부러 허름한 식당을 찾아, 제 돈 내고 밥 사 먹으면서도 마음 속으로 '이렇게 나그네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 차려 내주셔서 참 고맙습니다.'하고 꾸벅 절을 하는 여리고 마음 착한 임길택 선생님이 쓰신 교단일기에요. 가난한 탄광마을과 산골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폐암으로 마흔여섯에 세상을 떠나셨어요. 임길택 선생님 글을 본 이라면 한 번도 선생님을 뵌 적이 없다 하더라도 선생님을 그리워하지 않는 이가 없을 거에요. 선생님 글을 보고 있으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 됩니다.
선생님 글은 참 솔직해서 조금도 꾸밈이 없어요. 좋은 선생님, 훌륭한 선생님으로 보이기 위해 꾸며 쓴 흔적이 조금도 없어요. 이렇게 마음 여리고 착한 선생님도 아이들을 때리기도 하고 혼내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셨는데, 그것을 너무나 미안해 하고 부끄러워 하신 것이 교단일기에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임길택 선생님 교단일기를 보면서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어요.
'그래! 이렇게 꾸밈 없는 글, 일하면서 느끼는 것들을 솔직하게 쓰자!'
보리 블로그를 열고 나서 보리 살림꾼들에게 블로그에 글을 좀 써달라! 소통이 중요하다! 일하면서 느끼는 점들을 동무에게 말하듯 써달라! 구걸도 해보고, 계속 이런식이면 회사 그만 두겠다! 협박도 해보았지만 글을 올려주는 분들이 거의 안계셨어요. 너무 당연한 일이죠. 아무리 출판사 사람들이라고 해도 글을 쓰는 일, 그것도 인터넷에 쓰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글은 쓰고 싶어서 써야지 억지로 쓰게 한다고 써지는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부터가 솔직한 글을 쓰질 못했어요. 보리출판사도 알려야 하고, 보리에서 펴내는 책도 알려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질 못했거든요. 출판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출판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통찰력과 넓은 안목으로 바라보고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고요. 제가 쓸 수 없는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글쓰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어요. 그래서 이젠 제가 쓸 수 있는 글을 솔직하게 써내려가려고요. 제 자리에서 일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 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이야기들을요.
출판사 블로그에 왔는데 깊이 있는 책이야기는 없고 뭔 쓸데없는 소리만 써놨냐!!! 라고 여기실 분들도 계실까봐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솔직한 글은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것을 선생님들이 쓰신 교단 일기와 아이들이 쓴 글모음에서 보았기 때문에 크게 걱정은 하지 않으려고요. 그리고 제가 먼저 솔직한 글을 쓰다보면 다른 보리 살림꾼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지 않을까요? ^^
보리 2010-09-13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자. 수익이 나면 다시 책과 교육에 되돌리자. 보리출판사의 출판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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