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출판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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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님은 평생을 어린이의 참삶을 위해 바치신 분으로, 생전에 수많은 글을 써 남겼습니다. 동시, 동화, 수필, 평론은 말할 것도 없고 교육과 문학에 대한 생각을 드러낸 여러 가지 모양의 글도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습니다.

선생님 글에 나타난 생각을 몇 마디 말로 나타내기는 어렵지만, 그 속을 꿰뚫는 한결같은 흐름은 누구든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몹시 성글고 거친 뜻매김이 될지 모르나, 선생님이 문학에 대해 생각한 것을 몇 가지로 간추려 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삶을 가꾸는 문학입니다.

문학이 사람의 삶에 뿌리내려 그 삶을 정직하게 비추고, 나아가 더 나은 삶을 위해 이바지해야 한다는 것은 이오덕 선생님의 한결같은 믿음이었습니다.

일찍이 선생님은 '글은 곧 사람'이라는 말로 삶과 문학의 관계를 강조했습니다. 삶에 뿌리내리지 않은 글은 그것이 아무리 그럴듯하게 씌워졌다고 해도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글쓰기와 글쓰기 교육, 또는 문학과 문학 교육을 다른 자리에 있는 것으로 보지 않고 한 줄기로 엮어서 보았습니다.사람이 자신의 삶 속에서 느끼는 온갖 것들을 토해내듯이 글로 쓰는 일, 이것이 글쓰기와 문학의 출발점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선생님은 어린이들 글쓰기가 어려운 '공부'로 되는 것을 걱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글은 쓰고 싶어서 씁니다. 쓰고 싶어서 써야 됩니다. 그래야만 좋은 글이 됩니다. 그것은 마치 말을 할 때, 하고 싶은 말이라야 저절로 술술 얘기가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쓰기 싫은 글, 상 타고 점수 따기 위한 글은 쓰지 말고 쓰고 싶은 얘기들은 진정에서 나온 말로 쓰십시오."
<글쓰기 이 좋은 공부>에서

둘째, 약한 이를 위한 문학입니다.

어린이는 장애인이나 여성과 같이 우리 현실에서 힘이 약한 이들입니다. 약한 이들 중에서도 가장 약한 이들이 바로 어린이들입니다. 약한 이들 중에서도 가장 약한 이들이 바로 어린이들입니다. 따라서 어린이문학은 장애인문학이나 여성문학과 같이 약한 이를 위한 문학입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글에서 약한 이를 보듬는 이오덕 선생님의 생각을 분명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 사회의 현실을 보면 악한 것이 언제나 착한 것을 이기는 것 같다. 그러나 긴 역사를 통해서 보면 마지막에는 결국 착한 것이 이긴다. 무기를 만들어 내고, 사람을 해쳐서 제 욕심만 채우려고 온갖 궁리를 하는 인간들은 결국 제 꾀에 제가 넘어가고 만다."
<산 넘고 물 건너>에서

또 선생님은 그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어린이문학 작가가 실제로 글을 쓸 때는 힘들게 살아가는 어린이들 편에 서서 진정한 동무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억눌리고 짓밟히는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억압에 맞서 저항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하여 세련되고 영리하고 약빠른 아이보다 촌스럽고 어리석은 아이들에 대해 더 많은 이해를 보여 주는 것이 작가가 할 일이라고도 했습니다. 오늘날 글 쓰는 어른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입니다.

셋째, 겨레의 문학입니다.

오늘날 많은 어린이들은 자신의 본모습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눈만 뜨면 보이는 것이라고는 온통 외국말로 된 외국문화요, 배우고 익히는 것 또한 그러하니까요. 어린이들의 눈과 귀는 단 하루도 이 같은 외래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어린이들이 자신의 본모습을 잃ㅇ어버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우리 어린이문학이 제 모습을 찾는다는 말은 우리끼리만 잘 살자는 말과는 다릅니다. 참된 겨레의 문학이란 '자신을 위해 남을 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고 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오덕 선생님도 그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영국의 어린이들이 영국의 아동문학으로 자라나듯이, 일본의 어린이들이 일본의 아동문학으로 자라나듯이, 우리 어린이들도 우리 민족의 역사와 사회에 뿌리박은, 우리들 자신의 삶과 정서를 담은 문학으로 자라나야 하는 것이다. "
<삶과 믿음의 교실>에서


넷째, 어린이를 믿고 섬기는 문학입니다.

어린이문학이 어린이를 따돌린다면, 마치 장애인 문학이 장애인을 따돌리고 여성문학이 여성을 따돌리는 것처럼 '말이 안 되는'일입니다. 하지만 지난 세월에는 어린이를 외면하거나 업신여기는 자세로 글을 쓴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몇몇 문인들의 이러한 버릇을 매섭게 나무랐는데, 그 때문에 힘든 일도 많이 겪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이오덕 선생님은 어린이를 섬기는 마음과 믿는 마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얼마나 어린이를 믿고 존중했는지, 다음과 같은 글을 읽어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란 그렇게 보잘것없는 존재가 아니다. 내가 알기로는 어른들이 써놓은 이른바 문학작품이란 것보다 훨씬 감동 있는 글을 어린이들 자신이 얼마든지 쓰고 있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문학작품을 감상 비평하는 능력도 차라리 우리 어른들보다 더 정직하고 순수하고 정확한 면이 있는 것이다."
<삶과 믿음의 교실>에서

이같이 튼튼한 믿음의 바탕 위에서, 이오덕 선생님이 걸어간 길 끝에는 어떤 어린이가 있었을까요? 선생님이 진정으로 바란 어린이는 과연 어떤 어린이였을까요? 다시 선생님 말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비 개인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그 아름다움에 놀랄 줄 아는 사람, 발에 밟힌 한 마리의 곤충을 마음 아파하고, 절름발이 거지 아이를 보고 비웃고 놀리고 돌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불행한 사람이 있는 까닭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 괴로운 일을 하면서도 그냥 괴로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부모형제와 남들과의 관게에서 그 무엇을 생각하는 사람, 그리하여 생활을 창조해 가는 사람, 이런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아동시론>에서


이오덕 선생님이 세상을 떠난 지 몇 해가 흘렀지만, 선생님이 남겨 놓은 크고 우뚝한 정신은 날이 갈수록 새로워집니다. 요즈음 어린이들을 둘러싼 환경이 점점 나빠지는 것을 지켜보는 어른들 중에는, 힘들어하는 어린이들에게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함을 크게 부끄러워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이 살아 계신다면 이 모습을 보며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일을 할까요? 선생님은 비록 이 세상에 없지만 그 뜻만은 생생하게 살아 있어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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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보리 2010-06-01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자. 수익이 나면 다시 책과 교육에 되돌리자. 보리출판사의 출판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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