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출판사

오늘 다음커뮤니케이션(Daum)에서 연 유엑스라운드(UXround) 행사에 다녀왔어요.

아직은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유엑스(UX) 컨퍼런스에 출판사에 있는 사람이 왜 가냐? 그게 뭔데 가냐? 하는 궁금증을 가지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제가 참석하는 대부분의 외부 행사들에선 출판사 사람은 저 혼자뿐이에요. 창작자 컨퍼런스, 다음재단 비영리미디어 컨퍼런스  , 테덱스서울(TEDx Seoul), 마인드맵 강좌, 함께하는 시민 학교, IT 수다, 이런 모임들이죠. 출판업계에서 행사들도 많은데 왜 그런덴 안가고 처음 들어본 행사만 다니냐? 잘난척 하는 거냐? 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냥 이 행사들이 재미있을 뿐이에요.

오늘 행사는 한마디로 좋았어요.
회사 밖으로 나오면 참 좋아요. 보리출판사를 참 좋아하고,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지만 회사 밖으로 나와 일상이 아닌 일을 경험하는 것만으로 생각이 열리고 새로운 것들을 떠올리고 그리게 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내가 속해 있는 업계 행사보다 다른 업계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출판업계에서 일한지 한 해밖에 되지 않아 출판쪽을 좀 배워야 하긴 하지만요.

유엑스(UX)는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유저 익스피어런스)이라는 아직은 낯선 말의 줄임말이에요. 워낙 광범위한 개념인데다 제가 전문가가 아니여서 한마디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사용자가 어떻게 행동하고 움직이는지,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을 연구해서 더 좋은 경험을 갖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사용자 경험을 열심히 연구하면 더 편하고 쉽고 합리성이 있으면서도 감동이 있는 경험을 갖게 할 수 있고, 이렇게 좋은 경험을 갖게 해준 회사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게 되고, 그 회사를 믿게 되고, 그 회사에서 무엇을 하는지 관심을 갖게 되는 등 기업은 놀라운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탓이겠지만 어려운 말이죠. 하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유엑스(UX)를 고민하면서 일하고 있어요.

보리출판사를 살펴볼까요? 책 읽는 사람을 독자라고 하니 '사용자 경험'이 아닌 '독자 경험'이라고 하면 좋겠죠? ^^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책이 어떤 책인지 찾고 어떻게 만들지 기획합니다. (독자에게 필요한 책)
작가는 독자들이 재미있어 하고 새로운 것을 알게 하고 감동을 주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죠.
편집자들은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고 읽기 쉽게 글을 다듬고 결을 맞춥니다.
제작부에선 독자들이 넘기기 쉽고 비싸지 않고 가볍고 인쇄가 잘되는 책을 만듭니다.
디자이너는 독자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레이아웃을 조정하고, 눈에 띌 수 있고 기억될 수 있고 책 내용을 한눈에 말해줄 수 있는 표지를 만듭니다.
영업자들은 책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사고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고요.
전 트위터에서 블로그에서 누리집에서 독자들과 이야기 합니다.
어느 과정도 독자 경험과 관계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없죠?

출판사뿐 아니라 회사에서 하고 있는 모든 일이 사용자 경험과 관련있지만, 이 사용자 경험이 기업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특별히 연구하는 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오늘 행사는 이런 일을 하는 분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자리였어요.

보리출판사에 유엑스(UX) 부서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을 딱히 UX라고 할 수도 없고요.
하지만 무척 공감되는 이야기가 많은 행사였어요. 특히 조관희님 발표가 참 좋았습니다.

잠깐 다른 얘길 하면 전 보리출판사에서 외로운 사람이에요. 편집자도 아니고, 영업자도 아니고, 경영 지원도 아니고, 홍보부도 아니고 '콘텐츠 사업부'라는 부서에 혼자 속해 있어요. 출판계 행사가 아닌 다른 업계 행사를 다니고 맥북과 아이폰을 쓰고 구글을 좋아하고, 구글 캘린더, 구글 독스가 없으면 일을 못하고, 스타크래프트2가 나왔을 때 열광하고, 대부분의 문서를 PPT로 만들고, 종이 문서들은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몰라 한군데 쌓아놓고 찾지 못하는, 보리가 가진 느낌과는 좀 다른 사람이에요. 보리에 들어오자 마자 트위터와 블로그를 열고 트위터 해야 한다, 블로그에 글을 써야 한다고 쌩뚱맞은 소리를 해대고, 인쇄소 갈 때도 데려가달라 서점 갈 때도 데려가 달라, 편집 회의 할 때도 끼워 달라, 영업 회의 할 때도, 홍보 회의 할 때도 끼워 달라고 하지만 잘 끼지 못하고 있어요. 보리에 나같은 사람이 과연 필요할까를 고민하면서 일하고 있어요. ^^

조관희님 발표에서 같은 고민을 볼 수 있었어요. 유엑스(UX) 가 중요하다고는 해도 아직은 기업에서 유엑스(UX)팀은 저처럼 외롭고 자리잡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프로젝트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잘난척 하는 집단으로 손가락질(?) 받고 따돌림당하기도 하고 프로젝트 성과가 나온 후에도 기여한 공을 인정받지 못하는 일도 많고요. 심지어 '악의 축'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인 의식을 갖고 열정을 갖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실험을 하고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협업의 대상이 되기 위한 노력과 사연들을 들으면서 느끼는 것이 많았어요.

"익숙한 것은 지켜주자"

유엑스(UX)에서 놓치기 쉬운 '진리(제가 생각하기엔 진리인것 같아요)'인데, 제가 요즘 가장 크게 반성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보리는 참 행복한 일터에요. 왜 그런가 하면 하루에도 수없이 쌓이는 이메일 없이도, PPT 보고서를 만들지 않아도, 치밀한 판매 계획서와 손익분기점 분석, 마케팅 보고서를 쓰지 않아도, 열심히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일터거든요. 손전화가 터지지 않고 인터넷도 되지 않는 곳으로 여행 갔을 때 처음엔 조금 답답해도 곧 홀가분함과 자유를 느끼게 되잖아요. 그 홀가분함과 자유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터인데 굳이 복잡하고 어려운 방식으로 바꿔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보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참 많아요. 제가 찾아나설수록 더 많아지겠죠.
오늘 유엑스(UX) 컨퍼런스에 다녀왔으니 유엑스(UX) 관점에서 말한다면 보리 내부의 유엑스(UX)와 독자 유엑스(UX) 를 연결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보리에서 저에게 이런 일을 기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 말이 너무 복잡하죠? 이 일을 실행하는 방법과 역할은 또다시 작게 나누어지겠지만 그 가운데는 이런 일도 있겠죠.

누리집 유지관리비로 달마다 80만원을 요구받고, 인트라넷 서버 관리비로 달마다 40만원을 요구받고, 서버 구입비로 수백만원을 요구받고, 누리집 구축 비용으로 수천만원을 요구받고, 누리집 방문자수 늘려준다거나 트위터 팔로워수 늘려준다거나 하는 황당한 제안도 받게 되는 일터인데, 더 쉽고 편하고 비용도 아끼고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안해도 되는 방식을 경험하게 할 수 있겠죠.

물론 턱없이 모자르고 배워가야 할 것이 많아서 지금 당장 많은 일들을 모두 해낼 수는 없겠지만, 좋은 경험들을 제 스스로도 하나 하나 쌓고 보리 식구들과도 독자들과도 쌓아가고 싶어요. 팔릴 책이 아니라 꼭 있어야 하는 책을 진심을 다해 만드는 보리 식구들과 좋은 이웃들이 더 쉽게 만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건 참 멋진 일이잖아요!!

저처럼 일터에서 섬처럼 혼자 일하는 직군은 이렇게 밖에 나가서 공감을 얻고 동기와 의지와 자신감을 채우는 일이 참 중요해요.
그래서 오늘은 제게 참 기쁘고 경험치가 쌓인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