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출판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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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글씨가 예쁜 백창우 선생님

내가 '이오덕'이란 이름을 처음 안 것은 그이가 농촌 아이들 시를 엮어 낸 <일하는 아이들>(1978,청년사. 2002년 보리에서 다시 나옴)을 만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열몇 살 때부터 시쓰는 재미와 노래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있던 재게 이 책은 '새로운 세상'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소야,
여게 풀 많다.
 여기서 먹어라.
소는 그래도 안 온다.
소는 지 마음대로 한다.
소는 부엉이 소리가 나도
겁도 안 나는게다.
사람 있는데 안 온다.
안동 대곡분교 3년 <소 먹이기>

새벽에
어머니하고
밥하러 나가니
꾸정물 속에별이
반짝반짝 한다.
엄마, 저거 봐, 하니
별이 자꾸 반짝거린다.
상주 공검 2년 <별>

사람이나 새나 죽으면 불쌍하다.
우리가 새를 죽여도 불쌍하다.
새가 우리를 죽여도 불쌍핟.
안동 대곡분교 2년 <죽음>

오줌이 누고 싶어서
변소에 갔더니
해바라기가
내 자지를 볼라고 한다.
나는 안 비에 줬다
안동 대곡분교 3년 <내 자지>

나는 공부를 못 해서 걱정이다.
집에 가마 맞기마 한다.
내 속에는 죽는 생각만 난다.
상주 청리 3년 <공부를 못해서>

지금까지도 나는 이 책을 제일로 칩니다. 이 시집보다 좋은 시집을 아직 못보았습니다. 그래서, 종이가 누렇게 바래고 겉장이 뜯겨나간 이 책을 서른 세 해째 보물처럼 품고 삽니다.

이 책에 있는 시에 곡을 붙인 첫노래는 딱 열 마디짜리 짤막한 노래 <콩밭 개구리>입니다. 나는 이 노래가 너무 마음에 들어 내 독집 음반에도 넣고, 공연 때도 참 많이 불렀습니다.

<딱지 따먹기> (2002,보리)에 담은 노래 가운데 <아기 업기>, <연필>, <사람이나 새나>, <복숭아>, <내 자지>, <걱정이다>, <해바라기가 참 착하다>, <제비꽃>이나, 이번에 새로 낸 '이오덕 노래상자 <노래처럼 살고 싶어>'에 실은 <이총매미>, <소야>, <새벽별>, <자두>, <참매미>, <달구베실꽃>, <코스모스>, <눈아, 오지 마라>, <오얏>, <바람이 살랑>, <호루루뱃쫑>, <비 오다 개인 날>이 모두 <일하는 아이들>에 있는 시골 아이들 시에 붙인 노래들입니다. 노래를 만들어 놓고 아직 세상에 내놓지 않은 노래도 여러 곡이지요.

<일하는 아이들>을 만난 뒤 나는 농촌 아이들 산물을 모은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1979,청년사) ,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1977,청년사), <시정신과 유희정신>(1977, 한길사), <삶과 믿음의 교실>(1978,한길사), 그리고 시집 <개구리 울던 마을> (1981,창비)를 이어서 읽었고, <일하는 아이들>을 보며 짐작한대로 이오덕이란 사람이 정말 '참다운 세상', '참다운 사람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에 실린 첫 글 '노래를 잃은 아이들'에 나오는 "요즘 아이들은 노래가 없이 자라나고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동요를 부르지 않는 것은 부를 노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래가 없이 자라나는 아이들, 유행가로 어른이 되고 있는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과연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를 읽으며, 내가 어떤 노래를 만들어야 할 지, 노래를 잃어가는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어떤 노래를 어떻게 나누어야 할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노래를, 음악을 참 좋아했습니다.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지내던 시절 작곡가 윤이상에게 피아노는 배우기도 하고, 시골 교사로 있을 때 십릿길이 넘은 학교실을 걸어다니며 이런저런 동요나 스스로 만든 노래들을 늘 흥얼거리곤 했답니다.

그이의 시를 보면 '노래'란 말이 참 많이 나옵니다.

네 마음 속에는 눈부신 노래
오늘도 네 키만큼 아무도 몰래 자라는 노래
<용이, 너의 소매에서>

노래나 불러 볼까, 내 멋대로의 노래
<벌 청소>

아침 저녁 나의 길을 가르쳐 주는
너를 볼 때마다 노래가 나온다
<가로수 포플러>

너희들의 노래로
허물어진 흙담 앞에 서 있는
해바라기의 씨앗 속에
별빛 희망이 여물고
너희들의 노래로
달개비꽃의 가난한
행복이 피어나고
<벌레소리>

노래를 부르며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살았습니다.
<바다 - 언젠가 한 번은>

십리 길 읍내 장에 나물을 팔고
자갈돌을 밟으며 돌아오시는 어머니
빈 광주리에는 네 노래가 담겼다.
온몸에 네 노래를 감고 오신다.
<개구리 소리.2>

바보라도 좋아
바보라도 좋아
죽을 때까지 하늘 위에서
노래처럼 나는 살고 싶어
<포플러.3>

옛말에 이야기는 '거짓'이고 노래는 '참'이라고 했습니다. '노래처럼 살고 싶다'고 하신 선생님, 그건 바로 참답게 살고 싶다는 뜻을 품고 있는 것이겠지요. 참담게 사는 길을 보여 주신 선생님, 내 노래가 가야할 길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 이 망가진 세상에서 어떤 꿈을 꾸며 살아야할 지 일러주신 선생님. 나는 <이오덕 노래 상자>를 내며 그 안에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 하나를 숨겨 두었습니다. 뭐, 눈밝은 사람은 벌써 찾았을테지요.

백창우
작곡가이자 시인, 가수, 음악 프로듀서.
어린이 음반사 '삽살개' 대표로 어린이 노래 모임 '굴렁쇠 아이들'을 이끌고 있다.
'시노래 모임 나팔꽃' 동인이다.
백창우 노래 작업실 개밥그릇 : www.100dog.co.kr


보리출판사에서 펴내는
부모와 어른을 위한 책 <개똥이네 집> 2010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보리

보리 2010-08-04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자. 수익이 나면 다시 책과 교육에 되돌리자. 보리출판사의 출판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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