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출판사에서 펴내는
부모와 어른을 위한 책 <개똥이네 집> 2009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핀란드는 교육의 나라다. 핀란드의 교육은 530만 남짓의 적은 인구를 가진 북유럽의 작은 나라를 21세기 정보사회, 지식사회를 선도하는 세계적인 선진국으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OECD에 가입되어 있는 나라의 만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2000년의 PISA 연구 (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결과가 발표된 뒤부터 핀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교육 제도를 가진 나라로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핀란드 교육 모델로부터 새로운 교육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실, 2006년 PISA 연구 결과 우리나라 학생들의 읽기 능력 수준이 1위였던 것처럼,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전체적으로 핀란드에 이어 세계 2위 정도의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세계 1~2위를 다투는 핀란드의 교육과 우리나라의 교육을 비교해 보면, 참으로 극단적인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학업 성취 수준은 매우 비슷하지만 그런 결과를 낳은 국가적인 교육 제도와, 학교 교육을 관통하는 철학과 방법과 교육 원리에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대학을 졸업하는 데까지 천문학적인 비용을 내야만 하는 나라라면, 핀란드는 유치원부터 대학원 박사 과정을 마칠 때까지 학비 (tuition fee)를 낼 필요가 없는 완전한 무상교육의 나라다. 우리 아이들의 학업 성취가 무한한 점수 경쟁과 줄 세우기 교육을 한 결과라면 핀란드 학생들의 학업 성취는 경쟁이 아닌 협력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지는 줄 세우지 않는 교육의 결과다. 우리는 수준별 교육을 강조하지만, 핀란드에서는 수준을 나누어 교육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 놓았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세계 최고의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나라인 데 견주어 핀란드는 학원이나 과외는 생각할 필요가 없는 나라다. 우리나라가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라면 핀란드는 학교에서 머무는 시간이 가장 짧은 나랃. 그 가운데서도 가장 본질적이면서 주용한 차이는, 우리나라가 시험과 점수와 입시에 대한 부담을 지워서 공부하게 하는 타율적인 학습의 나라라면 핀란드는 학생들이 자신의 흥미와 관심사에 따라 저마다 자기에게 알맞은 속도로 배울 수 있게 하는 자율적인 학습의 나라라는 것이다.
핀란드 학생들의 학습은 학교와 교실 아네엇 끝난다고 할 만큼 핀란드이 교육은 정산 업무 시간에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으로 완성된다. 핀란드의 학교에서는 가정 형편이나 부모의 학력이나 직업으로 인해 학업 성취도에 차이가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정규 교육 과정 외에 별도의 학습을 할 필요가 없게 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핀란드의 교육 정책은 모든 국민에게 차별 없이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핀란드의 교육은 가정 환경이나 성별, 지역들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보편적인 복지를 제공하려 하는 북유럽형 복지국가의 이념에 근거하여, 만 6세 입학 전 교육에서부터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어떤 학비도 받지 않는 무상 교육을 가장 큰 특징으로 삼는다.
핀란드에서 교육은 교육이 필요한 사람이 자기 부담으로 구매해야 할 상품이 아니라, 핀란드 국민이라면 누구나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제공받고 보장받아야 할 권리다. 교육은 건전한 핀란드 시민을 육성하는 일이자, 핀란드 경제를 발전시킬 노동력을 기르는 길이며, 핀란드의 사회와 문화,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관점이 바탕이 되어 있다.
의무교육 단계인 7세부터 16세에 이르는 종합학교에서 학생들은 학습에 필요한 자료, 학교 급식, 보건과 진료, 상담, 심리 서비스 같은 모든 것을 거저 누리고, 집 가까이에 학교가 없어 5km 넘는 거리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은 교통비도 받는다.
고등학생과 대학생, 대학원생은 국가에서 학업지원금을 받으며, 부모한테 독립해서 생활할 경우에는 장기 저리 생활비와 학자금 융자를 받을 수도 있다. 2008, 2009년에는 18세가 안 된 혼자 생활하는 고등학생은 100유로(17만원 정도), 18세가 넘는 혼자 생활하는 대학생은 298유로(50만 6천원 정도)의 학업지원금(장학금)을 받고 있다.
핀란드 교육 정책의 중요한 방향은, 모든 국민이 언제든지 자기가 원하는 때에 필요한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기초학교나 고등학교의 정규 교육 과정에서 충분히 배우지 못한 것은 지자체가 제공하는 성인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언제든지 다시 배우고 보충할 수 있다. 직업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다가 자기가 필요하다고 생가하는 때에 대학에 입학해 공부할 수도 있다. 핀란드에서 학교 교육은 전생애에 걸친 평생학습의 한 부분일 뿐이다.
핀란드에서는 학습 속도가 느린 학생은 물론 특수 교육이 요구되는 장애를 가진 학생까지도 같은 학습 집단 안에 통합시킨 상태에서 교육을 해야 한다는 매우 확고한 교육 철학과 교육 원칙을 가지고 있다. 학습이 더딘 학생을 위해서는 특수 교육 관점에서 일시적으로 특별한 학습 기회를 주거나 보충 지도를 하는 일은 있지만, 학습 속도에 따라 수준을 나누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오늘날 핀란드 교육 성공의 핵심 요인은 유능하고 열정적인 교사에 있다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교사를 핀란드 사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 가운데 하나다. 교사들의 양식과 전문성을 신뢰하고, 교육자로서 자존감과 전문적 자율성을 존중해 주며, 창의적인 교육 활동을 하도록 격려하고, 더 좋은 교육을 위해 피룡한 교육 여건을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핀란드 교원 정책의 핵심이다.
핀란드의 교사들은 5~6년에 걸친 교사 양성 교육을 통해 석사 이상의 학위를 얻은 사람들이다. 핀란드의 교사들은 법률가나 의사에 못지않은 사회적 대우를 받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교슈와 비슷한 수준의 사회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교사들은 교육 활동을 하는 데에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보장받고 있다. 어떤 참고 자료를 활용해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는 모두 교사들의 권한이므로 더 좋은 교육을 하기 위해서 다양한 창조적인 시도를 할 수 있다.
핀란드 교육은 개개인들의 인간적인 발달과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서 학교 교육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국가는 어떤 교육 철학과 관점에서 공교육으로서 보편적인 교육을 제공해야 하는지, 학교와 교사들은 어떤 교육 철학과 원칙으로 교육에 임해야 하는지, 교육 정책이 어떤 점에 중점을 두어 입안되고 시행되어야 하는지를 일깨워 준다. 아울러, 교육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 여야 정당을 떠난 범정파적인 합의와 적극적인 지원이 필수라는 점을 깨우쳐 준다.
핀란드 교육은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게 교육의 근본에 대해 새롭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특히, 경쟁과 차별 교육의 천국인 한국의 교육자들과 교육 정채 담당자들은 우리나라 교육의 근본에 대한 뼈저린 성찰을 바탕으로 근본적으로 새로운 교육 개혁을 위한 대장정에 나서야 한다.
글 | 안승문
1983년부터 교단에 섰다가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 월간 <우리교육>을 창간했으며 서울시교육위원으로도
일했다. 2007년부터 스웨덴에 머물면서 북유럽 복지사회의 공교육을 공부했다. 지금은 '교육희망네트워크'와 '새로운학교네트워크'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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