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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가운데 등장하는 '공동체 식구 중에 집도 절도 없는 노인 한 분'은 누구일까요?

2010년 3월17일 여섯 명의 건장한 청년과 여려 보이는 아가씨 한 명이 산을 오른다. 맨몸으로 산을 오르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지게에 가마솥, 쌀, 곡괭이, 삽, 텐트, 침낭 등 여러 가지 살림도구와 작업공구를 짊어지고 헉헉거리며 고개를 넘는다. 산으로 가는 중간 중간 마을  어른들을 만나면 한마디씩 물어보신다. 어디 가는 거여? 예, 지름박골 갑니다. 그런디 지게에다 뭘 지고 가는 거여. 답하기 참 곤란하다. 예, 뭐 그냥. 얼버무리고 만다. 마을 어른들은 속으로 분명 ‘쟤네 또 뻘짓거리 하러 가는구먼’ 그러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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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년 동안 공동체 식구들이 이 마을에 살면서 워낙에 이상한 짓을 많이 해서 그런지 이제는 웬만한 일엔 별로 놀라지도 않는다. 그저 속으로 별난 사람들이 별난 짓만 골라 한다고 혀만 끌끌 찰 뿐.

올해는 3월에 유난히도 비가 많이 오고 추웠다. 이 청년들이 애초에는 3월 초에 산속으로 들어가기로 했는데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바람에 중순이 넘어서야 비로소 올라가게 된 것이다.

지름박골, 차를 비롯한 기계는 전혀 들어가지 못하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오로지 갈 수 있는 방법은 사람이 걸어가야 하는 곳. 그래서 사람의 때가 묻지 않아 계곡물이 맑은 곳. 여기에 공동체 땅이 있다. 그리고 공동체 식구 중에 집도 절도 없는 노인 한 분이 계신다. 재작년인가? “나는 자유인이다. 이제는 모든 짐을 내려놓고 바람 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떠돌면서 자유롭게 살 거다. 모두 잘 지내라 안뇽.” 거창하게 선언을 하고 진짜 연락도 없이 떠돌더니만 작년 겨울에 갑자기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아마 혼자 떠돌기에 지쳤을 것이다. 아니면 이것저것 간섭하고 싶어서 못 견뎠던지. 주로 서울에서 지내지만 이따금 공동체에 내려온다.

이럴 수가? 우리는 이미 얼씨구나 잘되었다 하고 그 노인네가 쓰던 방을 다른 식구들이 차지하고 말았는데. 이제 이 노인네 천덕꾸러기 신세라. 어디에서 잠을 자야 하나. 이 노인네 내려올 때마다 식구들 눈치 보면서 은근슬쩍 압박을 해댄다. 나 오늘 어디서 자야 하냐? 빨리 내 잠자리 만들어 내란 얘기다. 그래서 결심했다. 그래 집을 지어주자. 되도록 공동체에서 먼 곳에. 그리하여 이 청년들이 요즘 보기 힘든 거지행상을 하고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집 지으러. 오로지 몸뚱어리 하나와 곡괭이, 삽 등 손과 발로 쓸 수 있는 도구들만 챙겨 들고, 그리고 산속에 텐트 치고 거기에서 잠을 자고 가마솥에 밥을 해 먹으며 집을 짓는다.   

이 청년들은 우리 학교 고등부 아이들이다. 열일곱, 열여덟 살 먹은 남자아이 여섯 명, 여학생 한 명, 그리고 나. 주어진 시간은 농사일이 바빠지기 시작하는 유월이 오기 전 5월 말까지 두 달, 두 달 만에 열 평이 조금 못 되는 방 한 칸, 부엌 한 칸짜리 흙집을 지어야 한다.

집 짓는 일을 해본 사람은 나 말고는 없다. 그나마 남자아이 두 명은 작년부터 공동체에서 일을 해봤지만 나머지 다섯 명은 올해 공동체에 들어온 도시내기 초짜들. 우리는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집 없이 떠도는 노인네는 과연 편안한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까?

김희정 변산공동체 대표

한겨레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변산공동체 이야기입니다.




보리

보리 2010-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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