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다 갈 무렵 날이 좀 풀렸다. 집 짓는 일이 한결 쉬워졌다. 아이들은 하루종일 진흙을 만들고, 나르고, 손으로 두드린다. 노래를 부르고, 장난치고, 수다를 떤다. “야, 이 강아지들아! 주둥아리 닫고 일 좀 해라.” 큰 소리를 지르면 잠시 조용하다 눈치 보며 또다시 떠들어댄다.
아이들은 노래도 쉬지 않고 불러댄다.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우리 민족의 후손들답다. 그런데 노래가 완전히 다르다.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는 타령조의 노동요라면, 이 아이들의 노동요는 주로 랩이다. 나는 입이 딱 벌어진다. 와! 세상에 일하면서도 그 빠른 랩이 가능하구나. 노래하는 거 보고 있으면 신기할 따름이다. 젊은 기운이, 살아 있는 기운이 일터에 넘쳐난다. 요즘 보기 드물게 마음씨 착하고, 힘이 넘치는 아이들. 정말이지 사랑스럽다.
명기-부모님의 교육관이 독특하다. ‘고등학생이 되면 독립해서 살아라. 이제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아니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도반의 관계다.’ 스스로 선택해서 작년 3월에 왔다. 노래 잘하고, 춤 잘 추고, 일도 잘한다.
한솔-이놈은 작년 여름에 왔다. 중학교도 졸업 안 했다. 왜? 컴퓨터게임 때문에. 아버지가 어찌어찌 공동체학교를 알게 돼서 강제로 떠맡기다시피 했다. 처음 왔을 때는 일이 조금 힘들면 현기증 난다며 누워서 잠자고, 저게 사람 될까 싶었는데 지금은 궂은일을 제일 많이 하는 야무진 일꾼이다.
정호-작년부터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자기 길을 찾는다며 떠돌아다니다가 공동체에 오게 되었다. 이놈은 스스로 어정쩡이라고 하는데 아이들은 어정정호라고 부른다. 무엇을 하더라도 우리가 왜 그 일을 하는지 꽤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무엇을 물어보면 엉뚱한 대답을 잘한다. 하지만 마음이 한없이 따뜻해서 주위 사람들을 잘 챙긴다.
성호-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공동체 여름학교에 꼬박꼬박 와서 식구나 다름없는 아이다. 작년에는 고등학생이라 공부한다고 못 왔는데 올해 3월에 학교를 그만두고 공동체로 왔다. 새장 속의 새처럼 답답해서 싫었단다. 늘 웃는 얼굴이고, 무슨 일이든지 싫다는 말 안 하고 참 잘한다.
승기-고등학교를 안 가고 오토바이 타고 놀면서 사고치다가 어머니 고향이 변산인지라 변산에 계시는 친척분 소개로 올해 2월에 왔다. 처음 인상은 껄렁껄렁해서 저놈이 잘 버틸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마음도 무척 여리고 어떻게든 1년을 버티고 부모님을 찾아뵙겠다는 의지도 강한 아이다.
우혁-프로게이머가 꿈인 아이, 어느 부모가 좋다고 박수치겠나. 그래서 가출했다. 공동체 여름학교에 몇 번 온 인연으로 올 3월에 왔는데, 3일 만에 산으로 올라왔다. 요리학원 한 달 다닌 경력을 내세워 주방장 한다고 나섰다가 거듭된 밥 짓기 실패에 결국 잘렸다. 그래도 요즘은 밥 짓기를 제일 잘한다.
이렇게 다들 살아온 길이 다른 여섯 명의 아이들이 두 달 동안 산속에서 지냈다. 동네 형님 말처럼 산적 떼가 되어서 야생으로 살았다. 그리고 5월22일 마침내 우리는 작지만 너무나 예쁘고 세상에 하나뿐인 가장 큰 집을 지었다. 이제 남은 것은 집주인이 크게 한턱내는 일. 얘들아 노인네 실컷 우려먹고 여름농사 열심히 짓고 한가해지면 한 채 더 지어야지, 할 수 있지?
김희정 변산공동체 대표
한겨레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변산공동체 이야기입니다.
불개미
2016-01-1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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