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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마주 이야기" 갈래 글122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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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그리운 이들은 사북, 정선, 여량의 학교를 돌며 만났던,
얼굴이 한결같이 가무잡잡하던 탄광촌 아이들이 아닐까


가만 있자, 선생님 떠나신 게, 1997년이니 열두 해가 훌쩍 지났네. 내가 어린이문학 동네를 기웃거리기도 전이었지. 살아 계실 적 못 뵌게 그리 안타깝고, 동시대를 함께 살지 못해 무던히도 서운했던 생각이 나네.

더 빨리 시작할 걸 하는, 때늦은 후회도 그이 때문이었지. 몇 해 지나 시비 세우던 날, 눈물도 말라 그저 꺽꺽거리기만 하던 동무들 울음소리, 산등성일 타고 오르던 거센 바람 소리, 누군가의 끊어질 듯, 이어지던 춤사위 소리까지 아직도 귓전에 이명처럼 울리는데 그로부터도 거진 10년이 흘렀네. 차마 세월이 빠르기도 하지. 돌아가신 이 생각할 때 세월이 가장 오롯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우리가 채우며 살았던 시간보다 언제나 가고 난 이의 빈틈이 벌어질수록 더욱 또렷이 새겨지네.

그래도 그이는 그리 쓸쓸하지만은 않을 듯. 돌아가시고 난 다음 사북이며 거창에 조촐한 시비도 서고, 남긴 유고들 모아 알뜰히 여러 책으로 다시 빚었으니. 그래도 여전히 뒤척이실지도. 가족들 쉽게 잊히지 않을 테고, 가족만큼 살갑던 좋은 동무들 또 어찌 그립지 않으랴.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 밤 지금도 많겠지. 많을 거야. 닮고 싶은 그 어떤 삶을 생각하며 연필로 또박또박 시를 쓰던 생전의 잠 못 이루던 밤들처럼.

그래도 그 중 가장 그리운 이들은 사북, 정선, 여량의 학교를 돌며 만났던, 얼굴이 한결같이 가무잡잡하던 탄광촌 아이들이 아닐까. 보선이, 수경이, 영미, 동일이 들 아닐까? 하긴 가르치기는커녕 얼굴조차 본 적 없는 나도 그 아이들 보고 싶은데, 선생님인들 안 보고 싶으랴. 많이 보고 싶으실 게야.

그래도 참 다행이지. 시가, 동시가 있어 이렇게나마 그이를 만날 수 있으니. 언제라도 그이 마음 한 자락에 몰래 가 닿을 수 있으니. 물론 시가 없더라도, 예순 가까운 나이를 감당하지 못해 수줍어하는 그이 곁에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지. 그랬을 거야.


임길택 선생님의 시가 무섭다니.
그이도 한없이 순정하고, 시도 그이만큼이나 단정한데 왜 무서울까.
그건 아마 알게 되는 순간 직관으로 진심일음 알게 되기 때문 아닐까


간혹 생각하게 되네. 교과서를 만들거나 동시선집을 펴낼 때마다, 맨 먼저 선생님 시집을 뒤적이잖아. 왜 그럴까. 왜 나는 그이 동시들을 좋아할까. 지난해 중학교 교과서를 만들 때 생각이 나네.

'길러지는 것은 신비하지 않아요.' 라고 시작하는 <나 혼자 자라겠어요>를 들고 갔었지. 같이 교과서 만드는 사람들이 펄펄 뛰며 난리를 피웠지 . '아무도 나를 /기르지 못하게 하겠어요/ 나는 나 혼자 자라겠어요.' 라는 구절을 도대체 부모된 입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게야. 무서웠던 거지. 제 아이가, 교과서를 배우게 될 중학교 1학년 아이들 모두가, 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할까 두려웠던 거지. 그냥 익숙한 낱말 몇몇으로 소박하고 단순하게 쓴 그저 시일 뿐인데. 왜 시를 무서워하냐고, 그냥 시로만 읽으라고, 그냥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지 않냐고, 그저 어떤 날은 밥 먹기 싫을 때도 있고, 어떤 날은 우산 쓰고 싶지 않을 때도 있지 않냐고. 하지만 다투고 싶지 않았지.

다만 놀라기는 했지. 임길택 선생님의 시가 무섭다니. 그이도 한없이 순정하고, 시도 그이만큼이나 단정한데 왜 무서울까. 그건 아마 알게 되는 순간 직관으로 진심일음 알게 되기 때문 아닐까.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 앎이 힘들다는 것도 알고. 저버릴 수도 없음을 깨닫기 때문 아닐까. 그 누가 '까만 물 흐르는 길을 /하느님도 걸어오실까요', '한밤중, / 라면 두 개 싸들고 / 막장까지 가야 하는 아버지 길에 / 하느님은 정말로 함께하실까요' 라는 질문에 그럴 게라고, 그걸 믿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괜스레 마음이 무거워지네. 하긴 그래서 그이의 시를 본 어쭙잖은 평론가들은 이게 무슨 시냐고 되물기도 했을 거야. 그치들에게 시는 언어를 이리저리 갈고 닦아, 반짝반짝 윤기를 내고, 그에다 그럴싸하고 모호한 주제를 담는 것이어야 하는데, 어디 그이의 시가 그렇기나 하나 뭐. 그저 삶의 한 자락 딱 잡아, 율격도, 이미지도, 비유도, 상징도 지워버린 채, 그저 담담한 읊조림으로 시종했으니. 시처럼 보이지도 않았겠지. 그이가 시와 동시에 경계에서, 시이기도 동시이기도 한 시편들을 쓴 것은 그이 마음에 딱 맞는 몸을 찾아낸 셈이었지. 아무렴. 시는 그래야지. 언어 이전에 삶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 소중하고. 그이에게는 그 새로움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진실을 꾸밈없이 펼쳐 보이는 것이었던 게야. 그러니 그이의 시가 무서운 것도 이해는 되네. 진실은 언제나 무서운 법이지.

그런데 사실 그 이 동시를 좋아하는 까닭은 따로 있지 않을까. 그 이 시들을 펼쳐보면 무엇보다 이 세상 모든 '우는 것들'이 천천히 떠올라. 슬프지 않은 생이 어디 있으랴만, '빈 까치집', '막장까지 가야하는 아버지', '도랑가 여뀌', '엉겅퀴', '초저녁별', '영미의 손'을 비롯해 그 모든 '우는 것들'이 시집을 가득 채우고 있어. '우는 것들'만이 있는 건 아니지 물론. 그럼 그저 멜로드라마와 다를 바가 없었을 게야. 문제는 그 우는 것들이 삶을 오롯이 끌어안고 기꺼이 생의 빛을 뿜어내며, 세상을 밀어가고 있다는 거지. 더러 안쓰럽기도 하지만, 삶이란 어떠해야 하며, 애초 무엇이었는지를 깨닫게 해 주지. 예술과 혁명이 삶을 원래의 모습대로 되돌리려는 안간힘이라고 한다면, 임길택의 '우는 것들'이야말로, '우는 것들'이 빚어내는 삶이야말로 그 안간힘 또렷하게 보여주는 것 아닐까. 하여 그 안간힘은 그저 슬프지만은 않고 '눈을 떠었다 감았다'한다는 갈치 장수의 너스레도 '까마귀란 놈이 /우리 자리를 보려 하면 / 눈 흘기며 /돌아서'기도하는 사내아이의 단단함도 소 먹이러 함께 오지 않은 '수경이 고년'에게 계속 고시랑거리는 여식아이의 서운함도 모두 품어 안을 수 있는 것임에야.

또 콩 심은 데 콩 난다 했던가. 그 말들 그른 말이 아니지. 그러니 임길택 선생님이 돌본 아이들의 동시는 또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그저 떠오르는 생각을 술술 풀어내는 것만으로 시가 되는 게지. 삶의 한 자락을 보여줄 뿐, 그 삶 이렇다저렇다 섣부르게 평가하려고 하지 않았던 게지. 그저 그 삶 맞닥뜨린 마음의 결 보여줄 뿐이었지.

그러니 '옷 장수', '아버지가 오실 때', '나에게는 옷이 없다', '딱지따먹기' 같은 좋은 시들 쉼없이 아이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겠지.

이렇게 고시랑고시랑 생각을 이어가니 또 그이가 그리워지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그이와 아이들의 동시가 벽창호, 아니 백창우의 노래로 새 옷을 입는다니. 이제 선생님 동시와 내 안에 웅크린 동시를 닮고자 하는 마음 한 자락뿐 아니라 백창우의 노래도 함께 만날 수 있게 되었네.

김상욱
춘천교대 교수
창비어린이 자문위원

<백창우 아저씨네 노래창고 임길택 노래상자 '나무 꼭대기 까치네집' 8~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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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보리 201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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