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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년이 지났어요. 세월 참 빠르죠?

용산 참사가 일어났던 2년 전, 그때 저는 시민사회단체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용산 참사 현장을 자주 드나들었어요. 그러다 보리출판사에 들어오게 됐는데, 저에게 처음 맡겨진 책이 <내가 살던 용산>이었습니다.

 

그 책 편집하면서 참 많이 울었어요. 지하철에서 원고를 보다가 울고, 사무실에서 교정교열 보다가도 울음을 참지 못하고 회사 옥상으로 올라가 펑펑 울었어요. 용산 참사 현장을 드나들면서, 그리고 대학 다닐 때 찾아다녔던 상도동, 김포 신곡리, 의왕 내손동 같은 철거촌에서 많은 철거민들을 만나면서 그이들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나 또한 철거민들을 '철거민'으로만 대했다는 걸 깨닫고 미안한 마음이 울컥 올라왔거든요.

편집자가 원고에 어느 정도는 거리를 두고 객관화해서 원고를 바라봐야 하는데, 참 못나게도 그때는 감정이 차오르는 걸 어찌할 도리가 없었어요.

 

세상에 어떤 사람들에서 사람들로 널리 읽히지 않아도 되겠냐만은, <내가 살던 용산>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길 바랐어요. 책을 보지 않더라도 용산 참사의 진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오랫동안 사람들이 용산 참사를 기억하길 바랐어요.

 

용산 참사가 일어나고 1년 동안 시인, 소설가, 음악가, 화가, 성직자, 시민단체 활동가들, 그리고 저같은 회사원들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용산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희생된 분들 장례라도 치르게 해드리기 위해 애를 많이 썼어요. 작년 1월 9일 장례식을 치르고 난 뒤, 두 번째 1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용산 참사를 가슴 한 켠에 묻어 두거나 아예 잊어가기 시작했죠.

 

그동안에도 망루에서 구속된 철거민들은 재판에서  용산 참사의 책임을 뒤집어 쓰고 실형 4~5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중형을 선고받았고, 철거민들을 도왔던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지금까지도 재판을 받고 있어요. 수원 살던 한대성 님이 멀리 용산까지 와서 목숨을 잃어가며 지키고 싶어했던 신동은 강제철거가 진행되고 있고, 홍대 앞 두리반에서는 유난히 추운 이번겨울을 전기마저 끊긴 채 강제철거에 맞서 저항하고 있어요.

 

앞으로 추운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용산 참사가 떠오를 거 같아요. 차디찬 겨울날, 뜨거운 불길에 휩쌓인 망루에서 돌아가신 분들, 돌아가시고 난 1년 동안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병원 영안실 냉동고에서 시신마저 꽁꽁 얼었을 그분들이 떠오를 거 같아요. 고통스러운 기억이지만, 잊어서는 안 될 기억이라고 생각해요. 더 이상 용산 참사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수 있고 꼭 해야만 하는 일은 2009년 1월에 용산에서 일어난 비극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떠들어 대는 일이겠지요.

 

용산 참사 2주기를 맞이해서 사람들이 용산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한겨레 신문에 조그만 광고를 하나 냈어요.

 

"강제철거도 없고, 집없는 사람도 없는 세상.

돈벌이에 눈이 먼 악덕 건설회사도 없고, 무지막지한 용역깡패도 없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오순도순 살아갈 따뜻한 방 한 칸은 가지고 있는 세상.

2년 전 용산에서 망루에 올랐던 철거민들이 바라던 세상입니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세상입니다."

 

편집 살림꾼 스테고

편집 살림꾼 스테고 2011-01-20

어쩌다보니 출판사에 들어와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책 만드는 일보다는 책 보는 일이 더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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