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허영철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는 소리를 들었어요.
오늘 낮에 돌아가셨다고요.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없어요.
그냥 눈물만 왈칵 쏟아졌어요.
허영철 선생님을 뵌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다만 회사에서 펴낸 선생님의 책으로 선생님이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에요.
선생님은 올해 아흔이셨어요. 저희 외할머니와 같으셨죠.
선생님 이야기를 읽고 나서 외할머니는 그 시절을 어떻게 살아오셨나 여쭤봤어요. 할머니도 일제 시대를 겪고 육이오 전쟁을 겪으셨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번도 그 때 어떻게 사셨는지 여쭤본적은 없었는데 역사는 허영철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저희 외할머니도 비껴 간적이 없었어요.
"할머니, 해방됐을 때 사람들이 '대한독립만세!'라고 외쳤어요? '조선독립만세'라고 외쳤어요?"
"몰러, 다들 나와서 해방됐다고 꽹과리 치고 북치고 춤추고 그랬지."
할머니에겐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명이 대한민국인지 조선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다만 그 땐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죽었다는 것과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다는 것, 굶어죽은 사람이 많다는 것, 우리 나라가 반토막으로 나뉘었다는 것, 북쪽 사람들이 굶는다니 불쌍하다는 것이 가슴 아프신 거에요.
"할머니, 십원짜리는 왜 이렇게 모으세요?"
"이게 금이랑 색이 같아서 저승사자가 금을 많이 가져온 줄 알고 좋아하거든. 저승 가면 굶어 죽은 사람들한테 밥 한그릇씩 사줘야지. 그땐 굶어 죽은 사람들이 많어."
선생님이 살아오신 이야기 속에 그냥 오며 가며 만나고 지나가는 같은 시대를 살아내신 분들 가운데 한 분이 외할머니라고 생각하니 선생님이 남같지 않았어요. 선생님 이야기도 그냥 책 속의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았어요.
저희 외할아버지는 엄마가 어릴 적에 병을 얻어 돌아가셨지만 할머니에게 늘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자라서 할머니의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고 자라서 한 번도 뵌 적 없는 외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칠 때가 많아요. 그리고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외할머니도 곧 제 곁을 떠나시게 될 것을 생각하면 무서워지고 너무 마음이 아파요.
허영철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외할머니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떠올랐어요.
사무실에서 나오면서도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났어요.
그리고 한 번도 뵌 적 없는 허영철 선생님을 불러봤어요.
"할아버지, 지금 가고 계신 곳은 어떤 곳이에요?
정말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고 계신가요? 그토록 소중히 기억하고 계시던 동지들을 만나고 계신가요?
우리 할아버지도 거기 계신가요?
할아버지 가시는 곳은 어떤 곳인가요?
권정생 선생님이 그토록 그리워하셨던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 같은가요?
거기에선 사람들이 모두 착하고 서로 미워하지도 않고 그런가요?
할아버지... "
교과서에선 가르쳐 주지 않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아오신 이야기,
이젠 '역사'라고 부르는 그 때 이야기를 우린 다 듣지도 못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이렇게 우리곁을 떠나시네요.
할아버지, 지금 가시고 있는 곳은 어떤 곳인가요?
웃으며 편하게 가고 계신가요? 그 길도 외롭고 힘겹게 가고 계신 건 아니시죠?
부디 그 곳에선 행복하세요.
보리 2010-06-16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자. 수익이 나면 다시 책과 교육에 되돌리자. 보리출판사의 출판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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