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출판사 블로그

구자행 엮음, 348쪽, 13,000원

구자행 엮음 | 348쪽 | 13,000원 

 

 

 

간 <꽁당보리밥>과 <찔레꽃>을 소개합니다.

<꽁당보리밥>은 경남여고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학생 64명이 쓴 산문을 모았고,

<찔레꽃>은 94명이 쓴 시를 모았습니다.

 

방송통신고는 형편상 제때 배움을 다하지 못한 분들을 위한 학교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이 책의 글쓴이는 대부분 40~60대 어머니들이죠.

가난한 시절에, 거기다 여자로 태어나 학교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늦깎이 여고생이 되어서 설렘과 걱정 속에 3년을 보냈습니다.

한 달에 두 번 학교에 나갔고, 보통 학생들처럼 여러 과목을 공부했습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도 치르고, 소풍도 갔지요.

 

국어 교사인 구자행 선생님은 이분들한테 소용없는 국어 문제집을 풀게 하는 대신,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 놓는 글쓰기를 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시 쓰기도 하고, 살아온 이야기, 직장 다녔던 이야기, 식구와 이웃 이야기도 썼습니다.

우리 어머니들이 난생처음 자기 이름을 걸고,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쓴 것,

그게 바로 이 두 권의 책이지요.

 

 

구자행 엮음, 204쪽, 10,000원

구자행 엮음 | 204쪽 | 10,000원 

 

 

 

이 책들을 편집하는 동안, 저는 내내 '우리 엄마' 생각을 했습니다.

엄마는 올해 쉰하나가 되셨어요.

비슷한 연배 어머니들이 쓰신 글 곳곳에 엄마가 보였지요.

엄마는 평소에 당신의 옛날 얘기를 거의 해주지 않으셨지만,

몇 가지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들이 있거든요.

바닷가 땅끝마을에서 태어나셨다는 것.

엄마 표현을 빌리면 '공순이' 시절이 있었다는 것.

이십 대 초반 꽃 같은 나이에, 우체부였던 아빠와 연애 결혼하셨다는 것…….

이런 우리 엄마가 책 속에 자꾸자꾸, 많이도 보였어요.

엄마한테 미처 다 듣지 못했던 엄마의 삶을 고스란히 엿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릴 적에, 가정환경 조사서를 써 가느라고 엄마 아빠 학력을 물었을 때,

엄마는 유난히 모른 척하고 얼버무리셨던 것 같아요.

그때 생각엔, '고졸이면 고졸, 중졸이면 중졸 시원하게 말을 하면 되지,

왜 이랬다 저랬다 한담' 싶었으니 참 철이 없었죠.

그게 엄마한테 아픈 구석일 수도 있다는 걸 전혀 몰랐습니다.

 

엄마가 길게 쓴 글을, 살면서 두 번쯤 읽은 적이 있어요.

한 번은 중학교 때인가? 안방 서랍에서 엄마 일기장을 꺼내 훔쳐 읽은 일.

또 한 번은 엄마가 가장 많이 힘들었던 시절 아빠한테 쓴 편지를 읽은 일.

두 번 다 정말 많이 울었어요. 글 속에서 엄마는

아무것도 없는 드넓은 벌판에 혼자 선 것처럼 외롭다고 했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막연하게 엄마의 글이 읽고 싶다고 생각만 해왔는데

이 책들을 만들면서 그게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에게 이 책들을 선물하고 조금만 용기를 북돋아드리면

충분히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내실 수 있겠다 싶어요.

길에서 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사진을 찍어 보내는 엄마.

문학을 전공하고 출판사에서 일하는 딸보다 훨씬 책을 즐겨 읽는 엄마.

다른 사람들 일에 함께 마음 아파하고 더불어 사는 법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알고 있는 엄마.

이런 우리 엄마의 어린날, 젊은날, 그리고 어느 때보다 소녀 같은 지금의 이야기.

 

이 책들이 널리 읽혀서,

특히 이삼십 대 젊은 독자의 어머니들이 많이 읽으셔서

다들 용기를 얻고 저마다의 응어리를 풀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분들의 사연 하나하나가 귀한 역사라고 믿어요.

그래서 더더욱 함께 나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윤미정 (방통고 1학년 42세)

한때 우리 집은 신발 가게를 하였다. 그날도 새 물건들이 진열장에 진열이 되었다. 그 중에서 내 눈에 들어온 빨간 구두가 있었다. 아버지 귀에 대고, 나 저 신발 한 번만 신어 보면 안 될까? 옆에 계시던 엄마가 팔아야지 하며 소리쳤다. 그 소리에 눈물이 나서 우는 나에게 아버지께서는 빨간 구두를 내 발에 신겨 주시며 하시는 말씀이, 우리 딸이 신어서 예쁘면 다른 사람도 사겠지 하셨다.

 

_<찔레꽃> 본문 112쪽

 

  • 대외협력 조아저씨

    2012-05-09 10:15

    나도 책을 읽으면서 몇 번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우리 엄마가 생각나더군요. 우리 엄마는 책을 읽지 못할 정도로 많이 늙으셨지만 이 땅 많은 엄마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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