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이면 꾀꼬리 소리, 밤이면 소쩍새와 검은등뻐꾸기 소리가 골짜기를 울린다. 이제 논에 물 대면 개구리 소리까지 와글와글하겠지. 집집마다 못자리하고, 고추 모종 옮기고, 참깨 넣었다. 일 년 농사가 벌써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마을 하천에서 수해 복구 공사하던 굴삭기 기사는 다섯 시 반쯤 되면 칼같이 장비 세우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쪼그리고 앉아 들깨 모 솎는 동네 할머니들은 퇴근 시간도 없이 저물도록 들깨 밭에서 일하고 있다. 농사짓는 사람들한테 들녘과 산기슭은 곧 직장이다. 세 끼 밥 먹을 때 말고는 새벽녘부터 해 떨어질 때까지 머무는 일터다.
그런데 그 일터 위로 76만 5천 볼트 초고압 전기선을 늘어뜨리겠단다. 밀양시 다섯 개 면에 5백 미터 간격으로 아파트 40층 높이 되는 철탑 69개를 세우겠단다. 그러면서 전자파는 아무 문제없으니 걱정하지 말란다. 잠깐씩 쓰는 헤어드라이어보다 1년 365일 내내 노출되는 송전탑 전자파가 더 약하단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3~4밀리가우스(mG)만 되어도 암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하는데, 이 나라는 ‘833밀리가우스’라는 어마어마한 숫자를 기준으로 내세우며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시골 사람을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로 여기지 않고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디 이뿐인가? 가난한 농촌 노인들한테 땅은 퇴직금이자 보험금이다. 평생 일궈 온 6천7백 평 밤밭 위로 전기선 보내면서 보상금으로 157만 원 찾아가란다. 송전탑이 저 멀리 보이기만 해도 그 근처 땅은 팔리지도 않고, 담보 구실도 하지 못한다. 여기가 도시라면 이런 일이 가능이나 할까? 이건 보상이 아니라 강탈이다. 주민 재산을 강제로 빼앗는 강탈이 이 땅의 힘없는 농촌 지역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다.
그 생존 싸움이 밀양에서 7년째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국책 사업이라는 꼬리표만 내밀며 주민들을 외면했고, 밀양시는 주민들 땅을 강제로 한전에게 갖다 바치는 열람 공고를 허용했다. 언론이나 여론은 무관심하거나 아니면 지역이기주의로 몰아붙였다. 사업 주체인 한전은 늘 앵무새처럼 ‘우수한 품질의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니 이해하란다.
이 거대한 공기업이 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은 놀랍게도 합리성이나 타당성을 바탕으로 하는 설득이 아니라 끊임없는 거짓말과 협박, 주민들 사이 이간질이다. <녹색평론>에서 원자력산업이 원래 거짓말과 조직적 은폐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글을 읽는 순간, ‘아! 그래서 한전이 그렇게 거짓말만 늘어놓으며 주민들을 속였구나. 사실대로 밝히면 도저히 사업을 해 나갈 수 없으니 거짓말밖에 할 수 없었구나’ 알 수 있었다.
밀양 주민들이 이처럼 외롭고 힘든 싸움을 7년 동안 이어 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주민들 주장이 가진 ‘정당성’이다. 보상금을 더 달라는 억지를 7년 동안 부릴 수 있겠는가? 그런 요구에 7년을 머뭇거릴 한전인가?
밀양 주민들은 이 문제에 대해 누구든지 조금만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명백한 대안을 제시하며 이 사업을 다시 검토해 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50년 넘도록 그대로 이어 온 잘못된 장거리 송전 방식을 이 기회에 바르게 바꾸자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소를 한곳에 모아 놓고 온 국토를 철탑과 전선으로 칭칭 감으며 도시로 도시로 전기를 보내는, 이 말도 안되는 송전 방식을 이제라도 바꾸자는 것이다.
농촌 주민들 전 재산을 강제로 빼앗아 가는 잘못된 보상 체계와, 보통 사람들이 순간이라도 거의 경험할 수 없는 살인적 수치인 833밀리가우스를 기준으로 삼은 거대한 철탑 아래에 짓눌린 듯한 조망권 피해 따위를 제발 살펴보자고 외치는 것이다. 이게 과연 밀양만을 위한 일인가. “그 동네는 전기 안 쓰고 살 수 있나 보네.” 하며 냉소할 일인가?
이렇듯 어이없는 사업 방식이 ‘국책 사업’이라는 가면을 쓰고 지금까지 이어 올 수 있었던 것은 국가권력과 거대 자본이 가진 폭력성뿐 아니라 전기가 만들어 주는 안락함, 세련됨, 풍요로움에 대한 인간의 무한 욕망이 마음 깊은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이웃 일본에서는 마침내 원전 54기가 모두 멈춰 섰다고 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은 일본 국민 74퍼센트가 원전 없는 전력난을 참고 견디겠다고 한다. 바로 옆집에서 생존을 위협받는 사고가 터진 걸 뻔히 보면서도 우리 집은 안전하다, 안전하다 하며 그대로 살아가려고 한다. 이걸 어리석다고 해야 하나, 미쳤다고 해야 하나, 잘 모르겠다.
주민들이 제시하는 대안은 이런 것이다. 그동안 한전은 신고리원전 1호기, 2호기에서 만든 전기를 빨리 보내야 한다며 765킬로볼트(kv) 송전탑 건설을 재촉했다. 제때 보내지 못하면 하루에 28억이 손해난다고 주민들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신고리 1, 2호기 완공 뒤 손해는커녕, 거기서 만든 전기를 증용량 전선으로 보내고 있었다. 증용량 전선이란 송전탑을 새로 세우지 않고 이미 세워져 있는 송전탑에 전선을 교체해 보내는 방식이다. 그런 방법으로 전기를 보내고 있는 걸 주민들이 알아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신고리원전 3호기가 곧 완공되기 때문에 송전탑을 빨리 세워야 한다며 또 밀어붙인다. 하지만 2013년에 완공되는 신고리원전 3호기뿐 아니라 2014년에 완공되는 신고리원전 4호기에서 생산한 전기도 증용량 전선으로 보내면 되는 일이다.
한전은 또 말한다. 신고리원전 5, 6호기 때문에 765킬로볼트 송전탑을 꼭 세워야 한다고. 5, 6호기는 아직 승인도 나지 않은 상태고, 설사 승인이 나서 세운다 하더라도 2019년쯤에나 완공된다고 하니 그때는 초전도 케이블로 보내면 되는 일이다. 초전도 케이블은 환경 파괴나 전자파 피해가 전혀 없고, 많은 전력을 멀리 보내도 전력손실이 없어서 ‘꿈의 케이블’이라 부른다.
초전도 케이블이 널리 쓰이면 비용이 절반 이상 떨어지니 비용도 훨씬 줄일 수 있다. 한전은 초전도 케이블에 대해 ‘시기상조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따위 똑같은 대답만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2011년 3월에 이미 한전과 엘에스(LS)전선은 원자력발전소 1기에 맞먹는 전력을 보낼 수 있는 154킬로볼트-1기가볼트암페어(GVA)급 초전도 케이블 개발을 끝냈고, 2016년이면 미국으로 수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전세계가 핵발전소를 줄여 가고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핵발전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지 하나 둘 밝혀지고 있는 이런 시대 상황에서 신고리원전 5, 6호기 건설 계획은 취소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더구나 그것이 과잉설비라면 더더욱 추진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한전은 처음에는 765킬로볼트 송전탑을 만드는 까닭이 수도권까지 전기를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가 주민들이 부당함을 파고들자 곧 말을 바꿔 영남 지역에만 공급한다고 했다. 하지만 영남 지역 전기 자립도는 190퍼센트를 넘고 있어 이것은 명백한 과잉설비로,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2010년에 열린 갈등조정위원회에서 주민들이 사업 목적의 허구를 파고들자 한전은 구멍 땜질하듯 이리저리 숫자를 바꿔 가며 거짓말만 할 뿐이었다.
공사 현장에서 단식투쟁, 정부 청사 담벼락 아래 노숙 투쟁, 갈등조정위원회 6개월, 그리고 지금까지 진행 중인 제도개선위원회. 그동안 주민들은 스스로 생존을 지킬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해 왔다. 그러다 지난해 겨울, 한전은 기어이 송전탑 건설공사를 밀어붙였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마지막 남은 방법, 오로지 맨몸으로 벌목과 공사를 막으며 석 달을 버텨 오던 중에, 한 할아버지가 분신 자결하셨다.
그날, 자신과 두 동생이 평생을 일해 오던 논 한가운데에, 송전탑을 세우겠다며 젊은 용역들이 들이닥쳐 욕설과 거친 몸싸움으로 노인을 막았다. 시가 6억 7천만 원 하는 삼 형제 논 2천7백 평에 한전이 내민 보상금은 8천7백만 원. 농사밖에 모르던 일흔 넷 노인한테 그 억울함과 절망은 대체 얼마만큼이었겠는가? “오늘 내가 죽어야 이 일이 해결되겠다!” 이 한마디 말을 남기고 이치우 할아버지는 온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였다.
할아버지 죽음은 송전탑 반대 운동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반대 운동을 이끌어 오던 주민대책위원회가 분신대책위원회로 확대되면서 송전탑이 지나가는 지역 주민들뿐 아니라 많은 밀양 시민들이 몸으로 함께하게 되었다. 또, 전국에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765킬로볼트 송전탑 결사반대’를 함께 외치며 연대해 주었다. 3월과 4월에는 전국에서 두 차례, 희망버스가 밀양을 찾아오기도 했다.
특히 1차 희망버스 때는 부북면 평밭에 철탑을 세우기 위해 벌목한 그 자리에 생명의 나무를 심고 할아버지 할머니들 증언을 들으며 그동안 자신들이 편리하게 쓰고 있던 전기가 어떤 곳을, 어떻게 지나오는지를 다들 생각해 보았다.
시골 주민들의 목숨과 아름다운 산천을 초토화시키는 초고압 전깃줄 한쪽 끝은 바로 자신의 집으로 이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되어 미안하다며 끝까지 이 싸움에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관심과 연대 덕분에 지금 밀양에서는 주마다 영남루 앞에서, 이치우 할아버지를 추모하고 송전탑을 백지화하고자 마음을 모으는 촛불 집회와 가톨릭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촛불 미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한전은 이치우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진정이 담긴 사과나 조문 없이 장례만 서둘렀고, 장례를 치른 지금 청도면에서 공사를 시작하고 있다. 청도면은 밀양 다섯 개 면 가운데 이미 합의를 본 곳이다. 합의하지 않은 네 개 면에서도 공사를 시작하기 위한 물밑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돌아가신 이치우 할아버지 동생 이상우 할아버지는 언론 인터뷰에서 혼잣말하듯 나즈막히 말씀하셨다.
“서울 같은 데, 밤에 보면 꽃밭이거든. 그렇게 전기를 쓰면서 와 전기가 모자란다 카노? 그런 전기 좀 끄면 얼마든지 되는데. 거기에 전기가 필요하다면 전기 공장을 거기다 지으면 안 되나? 왜 사람 죽여 가며 이리로 끌고 가노? 그게 이해가 안 되는 거라. 그기 분한 기라.”
초등학교 문 앞에도 못 가 보고 평생 흙만 까리비며 살아왔다는 이상우 할아버지의 이 말보다 더한 진실을 나는 알지 못한다. 지금 765킬로볼트 송전탑 사업의 근본 문제에 대해 어떻게 이보다 더 쉽고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전기 박사든, 한전 사장이든, 누구든 이 할아버지를 설득시킨다면 나는 우리 집 앞산 옥교봉에 송전탑이 들어와도 좋다.
이승희 밀양 상동초등학교 교사로, 상동면 여수마을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
<개똥이네 집> 79호(2012년 6월호)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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