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영국 남동부 로버츠브릿지에 ‘다벨’이라는 공동체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는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삶으로 실천하려는 곳이지요. 다벨에는 아이들까지 모두 삼백 명이 한 식구처럼 살고 있습니다. 힘을 합쳐 일하고, 함께 아이들을 기릅니다. 저는 이곳에서 나무 장난감과 어린이들이 쓰는 가구를 만드는 일을 합니다. 나무 트럭도 만들고, 의자도 만들어요.
아이들은 우리 공동체 삶에 아주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공동체에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이들한테 좋은 것이 우리 모두한테도 좋다는 것을 많은 실수를 통해 배웠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 공동체는 아이들한테 가장 좋은 게 뭔지 먼저 생각하고, 아이들과 함께 시간 보내는 걸 우선으로 여깁니다. 어린아이들까지 모두 모이는 공동 식사나 모임에서는 재미있는 이야기나 토막 연극을 준비하고, 밖에서 간단한 놀이를 하거나 노래에 맞춰 춤을 춥니다. 부모님들은 아침저녁으로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하고 책을 읽어 주고, 틈나는 대로 함께 산책을 갑니다. 주말에는 숲으로 도보 여행을 가고, 여름에는 별을 보며 함께 잠을 자기도 합니다. 또 아이들이 낙엽 쓸기나 마구간 치우기 같은 일을 할 때도 부모님이 함께 도우면서 관계를 키워 갑니다. 함께 일을 하다 보면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 수 있고, 그만큼 더 가까워지잖아요. 그래서 특별한 걸 하지 않더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이렇게 적고 보니까 윤구병 선생님이 《실험학교 이야기》에 그린 꿈과 많이 비슷한 거 같네요. 책에 아이들 감각이 살아나고, 자연을 깊이 이해하게, 다시 말하면 ‘철이 들게’ 돕는 많은 자연 교육이 소개 되어 있잖아요. 그뿐만 아니라 서로 돕고, 함께 기쁨을 나눠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진정한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녹아 있지요.
우리가 아이들과 함께 즐기는 것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것들입니다. 유럽 여러 나라와 남미 파라과이, 미국, 호주에서 온 것이 많고, 이스라엘, 이라크, 멕시코에서 온 식구들이 소개한 것도 있습니다. 보름달이 뜬 가을 저녁에는 강강술래를 하고, 흥 돋을 일이 있을 때는 못하는 솜씨지만 장구와 꽹과리를 쳐 봅니다. 엉거주춤하기는 해도 모두 어깨 춤을 제법 춰요.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저희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아이들이 ‘아이 다움’을 오래 지킬 수 있도록 배려하는 거예요. 정보 기술이 발달해서 그런지 요즘 아이들은 예전보다 훨씬 일찍 어른이 된다고 하잖아요. 세상 이치를 깨치고 세계 상황에 눈을 뜨는 건 좋지만, 그런 걸 너무 빨리 익히고 남보다 빨리 대응하는 기술을 배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천천히, 느리게 됐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저희가 아이들과 즐기는 것들 가운데 하나는 가을, 초겨울에 많이 하는 등불 산책입니다. 겨울로 접어들면서 날이 금방 어두워지잖아요. 여긴 요즘 오후 다섯 시만 돼도 벌써 캄캄해요. 여름에는 저녁 여덟 시가 넘도록 환해서 놀기 좋았는데 금방 어두워지니까 밖에서 놀기도 그렇고, 어두운 데 있으면 아이들은 무서워하잖아요. 그럴 때면 우리는 등불을 켭니다. 등불 둘레에 둘러앉거나, 등불을 앞세워 산책을 가면 세상이 온통 밝아지는 것 같거든요. 용기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해요. 작은 불빛인데도요.
하루는 해질녘에 등불을 하나씩 들고 모였어요. 아이들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두요. 아기들은 유모차를 타고, 몸이 불편한 분은 휠체어를 타고 나왔고요. 캄캄한 곳에서 빨강, 초록, 노랑 불빛이 흔들리면서 빛나는 게 신비롭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우리는 등불을 들고 한 줄로 서서 어둠이 내린 들길로 산책을 갔지요. 걸으면서 노래를 불렀어요. 기다랗게 줄을 서서 걸었기 때문에 맨 앞에서 부르는 노래가 마치 뒤쪽으로 메아리를 치는 것 같았어요. 아들 동경이는 별과 나뭇잎 모양을 붙인 등불을 자기가 만들고도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어요. 불빛을 받은 아이 얼굴이 마치 다른 세상에 빠져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두리번두리번하며 등불들이 내는 빛을 봤고, 제 손을 잡고 걷다가 노래를 부를 때는 신나게 등을 흔들었어요.
이런 등불 산책은 개똥이네 아이들도 아주 좋아할 거 같아요. 지금은 좀 추울지 모르지만 날이 좀 풀리면 한번 해 보세요. 해가 지고 난 뒤 엄마, 아빠가 아이들과 함께 등불을 들고 골목이나 공원을 걸어 보면 어떨까요? 노래를 부르고,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등불을 흔들어 보이면 그 사람들이 힘을 얻을 지도 모르지요. 산책을 마친 다음에는 호떡이나 꿀차 같이 몸을 녹이는 따뜻한 간식을 먹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한번은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함께 이웃집 뒤뜰에 갔습니다. 등불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고 해서요. 그곳에는 가지가 옆으로 넓게 퍼진 큰 보리수 나무에 등불이 많이 걸려 있었어요. 마치 나무 열매들 같이 빨강, 노랑, 초록, 보라색 등불들이요. 나무 밑에서는 온 식구들이 둘러앉아 따뜻한 사과 주스를 마시고 있었고, 모닥불을 쬐며 이웃들과 얘기를 나누는 식구들도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등불을 한참 올려다 본 우리도 모닥불 가까이에 앉아 따뜻한 사과 주스를 후후 불면서 마셨지요. 아이들은 그날 밤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등불 열매를 따 먹는 꿈을 꾸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불빛은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고, 사람들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아 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여럿이 함께 밝힌 불빛은 조용하지만 분명하고 강렬하게 우리 마음을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도 마음에 용기가 필요할 때면 그 불빛을 기억할 수 있을 거예요.
원충연
개똥이네 집 74호_나 이렇게 살아요
아이들을 살리고자 하는 부모와 어른을 위한 잡지
<개똥이네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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