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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 코미디언입니다거기에 또 하나의 이름농부 김미화입니다코미디와 방송 진행을 삼십년 동안 해 오면서 마음속에 자연을 항상 그리워했습니다그러다 십 년 전 서울에서 한 시간 반 떨어진 용인거기서도 가장 자연이 많이 남아 있는 원삼면 두창리 골안마을 산 끝자락에 집을 지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부터 꿈꿔 오던 내가 살고 싶은 집은 물망초가 활짝 피고 개울물이 흐르는 곳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아담한 집이었고 십 년 전 그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비포장도로라 좀 울퉁불퉁하긴 하지만 저는 우리 집 들어오는 시골길이 참 좋습니다흙길 가에 잡초라 불리는 온갖 꽃과 풀들이 가득한 모습은 마치 가슴에 아지랑이가 간질거리듯 아련하게 감동을 줍니다. 6월 초부터 한동안 우리 집 마당에는 밤마다 반딧불이가 황홀하게 반짝거리며 날아다녔습니다.

남편과 저는 일부러 반딧불이와 만나려고 저녁부터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밤 깊은 시각에 어둠을 뚫고 집으로 들어갑니다손에 잡힐 듯 잡힐 듯 어둠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반딧불이 궁둥이를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 신나게 뛰어 다닙니다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가까이 사는 분들이 모두 농사짓는 농부님들이라서 농부님들이 형님이요 동생입니다시골이라고 농부님들 모습을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해 뜨고 집을 나서면 빈 들판에 곡식과 채소만 싱싱하게 푸르를 뿐 농부님들 모습은 코빼기도 볼 수 없었습니다마치 그림자처럼 어둠을 뚫고 새벽 일찍 나와서 밭고랑 풀을 매고 논을 살피니 여간 부지런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을 들판에서 농부님들 모습을 보려고 기다려도 그림자도 보지 못할 겁니다.

이른 봄어느 날에는 동네 분들이 온갖 산나물들을 뜯어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 우리 집 대문 옆에 걸어 두기도 하고열무를 솎을 때에는 어리고 여리여리한 열무를 솎아 마당에 두고 가기도 합니다외출했다 돌아와서 이런 보물들을 발견할 때면 행복하고 고마운 마음은 무척 큽니다.

그런 농부님들 마음이 정말 고맙고 아름다워 저희 부부는 이런 착한 농부님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고민의 결실로 우리 동네 논밭 한가운데 농부님들과 도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쉼터를 만들었습니다.

이름하여 까페호미’. ‘호미’ 하면 정직하게 일구는 대로 거두는 농기구요남편 이름에서 한 글자내 이름에서 한 글자를 합치면 호미’ 라는 이름이 되니 부를 때마다 참 잘 지은 이름이다 싶습니다.

까페호미는 말 그대로 커피를 파는 카페이면서 동시에 우리 동네 농부님들이 농사지은 농산물을 파는 장터입니다좀 거창하게 말하자면대자본마켓(SSM, Super SuperMarket)에 맞서 농부님들이 꾸리는 작은 농산물 시장(FFM, Farmer’s Flea Market) 이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에게 익숙한 소비자값’ 이라는 가격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농부 곁으로 와서 농부들의 땀과 노력을 함께 체험해 보고 농부들의 수고로움을 생각하며 농부값으로 농산물들을 사 가게 하는 겁니다농산물이 팔리면 그 수익은 모두 동네 농부님들한테 돌려드리고 있고요.

저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까페호미에 들렀다가 우리 동네 농산물들을 사 갈 수 있도록 여러 꿍꿍이를 벌이고 있습니다그날 거둔 신선한 농산물을 예쁘고 먹음직스럽게 진열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농산물 판매를 위한 문화예술 공연을 열기도 하지요.

이런 행사가 있는 날이면 입장료를 받고 우리 동네 농산물로 만든 제철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으면서 공연을 봅니다우리 동네 사람들과 도시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노는 자리이기도 하지요한편으로는 친환경이나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으려는 농부님들과 함께 모임도 가집니다.

까페호미는 저희 부부가 생각하는 농촌문화운동의 시작이기도 합니다아이들이 감자를 캐고고구마를 캐고토마토도 따 보고저녁에는 작은 음악회를 열어 농사짓는 사람들과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어울립니다농사짓는 이장님박씨 할머니까지 반짝이 옷으로 갈아입고 나들이 오시는 곳누구든 편견 없이 함께할 수 있는 그런 곳농사를 모르는 제가농부님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농사만 짓던 농부들이 도심에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누는 곳이니까요.

어느 날에는 밀짚모자를 쓰고 목에는 수건을 두르고 고무장화를 신은 농부님들이 더위를 피해 냉커피를 마시러 들어오셨는데도시에서 온 어느 가족의 말끔한 옷차림과 사뭇 대비되는 진풍경이 펼쳐졌습니다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모습이 저희 부부가 바라던 모습입니다진짜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다음 주 부터는 감자를 캐기 시작합니다올해는 지난해보다 감자를 더 많이 심어 열세 고랑이나 심었습니다감자 심던 날 가랑비가 내렸더랬습니다그래서 감자 심기 체험을 하려고 온 도시 사람들이 비를 맞으며 고생스럽게 감자를 심었지요어느덧 시간은 가고 최고로 맛있는 하지 감자가 나 좀 어서 캐 주세요!’ 하고 땅 밖으로 나올 때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까페호미가 감자를 캐러 온 엄마아빠들아이들로 북적일 겁니다아이들이 감자를 캘 때 행복해하는 표정들(사실은 어른들이 흙장난에 더 행복해합니다.) 행복해하는 웃음에 보람을 느낍니다흙 속에서 캐내는 기쁨이 이렇게 큰 것인 줄을농부님들과 함께하지 못했다면 어찌 알았을까요.

올해는 도지로 빌린 논 열두 마지기에 흙색 찹쌀벼를 심었습니다모내기 하는 날 농부님과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일하고 논둑에 아무렇게나 앉아 막걸리를 마셨습니다꿀맛보다 더 맛났습니다.

오늘 아침 일찍 논에 물이 제대로 흐르고 있는지 물꼬를 보러 갔습니다옆집 논은 연한 녹색의 흰쌀 벼이고 우리 논엔 흙색 쌀 벼 아니랄까 봐 벼 잎이 검초록으로 푸르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우렁이 농법을 하려고 몇 주 전 논에 우렁이들을 넣어 줬더니 우렁이들이 풀싹들을 찾아 이리저리 더듬이를 크게 하고 미끄러지듯 논바닥 풀싹 청소를 합니다황새가 논 한가운데서 꼼짝도 하지 않고 먹잇감을 곁눈질하며 포위망에 들어오길 기다립니다혹시 땅강아지가 논둑에 물구멍을 만들었을까 꼼꼼하게 논둑을 살펴봅니다.

논물이 다 빠져나가면 황새 밥상 차려 주는거유물 안 빠져나가게 잘 돌아봐유!”

농부님 말씀을 다시 떠올리며 넓고 푸른 들판을 바라보는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김미화

국가대표급 코미디언이자 방송인이다농촌에 내려가 살다가 5년 전부터는 손수 농사지으면서 지내고 있다.동네 농부님들과 만나면서 농촌 구석구석 사정들을 알게 되었고지난해 농부님들이 농산물을 직접 내다 팔 수 있는 장터이자 마을 사랑방 역할을 하는 까페호미를 열었다지금은 농촌에서 자연인으로도시에서 방송인으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산다.

 

 

※ 개똥이네 집 105호 (2014년 8월) '나 이렇게 살아요'에 실린 글을 옮깁니다. 

 

※ 다달이 펴내는 어린이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 .

   아이들을 살리고자 하는 부모와 어른을 위한 잡지 <개똥이네 집> 안내

   (https://gaeddong.boribook.com/)

 

편집 살림꾼 누리짱

편집 살림꾼 누리짱 2014-08-05

보리출판사가 만든 그림책 브랜드 개똥이에서 세상의 모든 그림책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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