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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 선생님" 갈래 글75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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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있는 사람끼리만 주고받는 힘센 나라 말들이 신문, 방송, 광고뿐만 아니라 온 나라 이곳저곳 간판까지 도배를 하다시피 널려 있습니다.
이른바 '과학 용어'는 우리 말이 발도 붙이지 못할 만큼 어지러워졌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보통 사람은 알기 힘든 이 어려운 낱말들은 거의 '식민지 유산'입니다.
힘센 나라에 빌붙어서 제 나라 사람들을 구박하는 데만 마으이 가 있던 '지배계급'이 저지른
보이지 않는 '언론 탄압'이 대물림해 왔다고 보아도 틀린 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교과서 이름이 처음에 '셈본'이었다가 '산수'로, '수학'으로 바뀐 것은 '애교'로 보아넘길 수 있습니다.
'수학'이나 '물리학'에 체머리를 흔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파동'이나 '입자'라는 말이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 제대로 아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요?
가끔 나는 우리가 우리 말로 우리 삶에 쓸모 있는 '과학'을 했다면
거기에 쓰일 수 있는 낱말들이 크게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를테면 '파동'은 '결'이라는 말로 쓰이지 않았을까요?
'바람결', '물결', '숨결', '살결', '마음결'......
이렇게 우리 말로 '파동'이라는 말을 옮겼다면 이미 오래 앞서 우리는 '파동'이 '물리현상'만을 나타내는 말이 아님을 깨우쳤을 것입니다.
'입자'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한자'를 빌려서 써 버릇한 이 '입자'라는 말을 고지식하게 뜻풀이하면 '쌀알갱이(粒子)'입니다.
'소립자'는 '싸라기'가 되겠지요.
이런 말을 써서 하는 '과학'은 참된 과학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이 말을 '톨'이라고 썼더라면 훨씬 더 나을 뻔했습니다.
밤 한 톨도 '톨'이고, 쌀 한 톨도 '톨'입니다.
살눈으로 보거나 기계 눈으로 보거나 눈에 들어오는, 따로 떨어진 것은 모두 '톨'이라는 말로 이 잡듯이 한 톨 한 톨 잡아낼 수 있으니 얼마나 '과학적'인 말입니까?

우리 말을 되찾고 살리지 않으면 우리는 다만 새 시대에 걸맞은 과학다운 과학을 할 수 없는 데에 지나지 않고,
'신화'에서부터 '역사', '지리', '인문'....... 그 어느 것도 올곧게 풀이할 수 없습니다.

'고리'(구리)가 똥인 줄도 모르면 왜 발에서 나는 냄새를 '고린내'라고 하는지,
왜 방귀를 뀌면 '구린내'가 나는지도 제대로 알 길이 없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가득 채우고 '양껏 먹었다'고 하면서도 그 '양'이라는 말이 '위장'에 밀려난 우리 말이라는 것도 모르고,
'과외'를 시키지 않으면 우리 아이가 뒤떨어질까 '애'를 태우고,
'애'가 끓는 엄마들이 그 '애'가 '내장'이나 '창자'에 짓밟힌 우리 말 '애'에서 나왔다는 것을 까맣게 모릅니다.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다시 한번 되풀이하지요.
여섯 살짜리도 알아듣고, 까막눈인 시골 어르신들도 알아듣는 말로 이야기를 풀어가야 민주 세상이 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모든 곳에서 쉬운 우리 말을 되살려 써야 합니다.

-윤구병, <개똥이네 집> 2013년 10월호


편집 살림꾼 지리소

편집 살림꾼 지리소 2013-11-20

古傳을 만들면서 苦戰을 면치 못하다가, 책 만드는 일에도 사는 일에도 고전하고 있는 困而知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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