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출판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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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지난해 뭍에서 뱃길로 한 시간 반이 넘게 떨어져 있는 외딴 섬에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하루에 한 번 뭍으로 나가는 배가 있기는 있는데, 풍랑이 일면 뱃길이 끊겨 뭍에 꼭 나가야 할 일이 있는데도 속절없이 갇혀 지내야 할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올해는 변산공동체 일, 재단법인 민족의학연구원 일, 그 밖의 이런저런 일들이 저를 뭍으로 끌어내 별수 없이 뱃길이 더 수월한 섬으로 자리를 옮겼지요. 새로 옮긴 섬마을은 제 한 몸 웅크리기에 제격입니다. 집이 여남은 채에 지나지 않는 작은 마을인데, 앞에는 돌이 많은 갯벌이 있고, 가파른 산자락을 타고 내려가는 곳에 비탈진 밭을 옹색하게 일구어 농사를 짓는 아주 가난한 마을입니다. 밭은 물매가 너무 져서 경운기는커녕, 소를 부려 쟁기질하기조차 힘들어 보이니다. 그래서인지 이 마을에는 소도 없고, 개 짓는 소리, 닭 우는 소리도 들을 수 없습니다. 돼지 꿀꿀대는 모습도 볼 수 없고요. 처음에는 '왜 집짐승이 하나도 없지?' 하고 의아하게 여겼는데, 여러 달 지나고 나서야 그 까닭을 알았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낟알을 먹어야 하는 짐승을 칠 수 없는 겁니다.

  마을 들머리에 제법 큰 너럭바위가 있는데, 그 바위 둘레에 잔돌을 빙 두르고 그 안에 흙을 채워 쪽파를 기르는 게 처음에는 신기해 보였으나, 나중에는 그것마저 안쓰럽게 여겨졌습니다. 바깥 어르신들은 괭이로 밭을 일구고, 땅 한 뼘 놀리지 않고 알뜰하게 가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 어른신들은 추울 때나 더울 때나, 눈비를 맞으면서 갯벌에 나가 바지락을 캡니다. 그 가운데 이녁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주 적고, 나머지는 '돈 사려고' 뭍으로 죄다 내보냅니다.

  이 죄 없는 마을에, 지닌 것이라고는 돈밖에 없는 제가 밀고 들어간 셈이지요. 농사 경험이 조금 있는지라 일손을 거들려고 해도 땅뙈기가 손바닥만 하니, 거들 데도 없습니다. 가난하지만 마음이 따뜻한 이 어른들 곁에서 며칠을 응석 부리듯이 지내다가 도시에 나오면, 눈 둘 곳도 몸 둘 곳도 없는 허둥거림이 가슴을 옥죕니다. 똥오줌도 자연에 되돌리지 못하고 오물로 남길 수밖에 없는 도시 속의 삶이 저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 가난한 섬마을 사람들이 도시 사람들한테서 받는 것이라고는 고작 이녁들의 삶과는 너무나 동떨어져서 아무 상관 없는 텔레비전 연속극 정도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날마다 이 가난한 사람들이 꼬부라진 허리를 두드리면서 밥상에 올리는 밥과 반찬을 반의반도 먹지 않고 음식 쓰레기로 버리고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는 괴물들 사이에 저도 끼어 있음을 알고 흠칫 몸을 떠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 죄 많은 사람들, 돈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일삼는 것이 힘과 총칼을 앞세워 가난한 나라들을 등치는 일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없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죄 없는 젊은이들을 쏘라고, 영문 모르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총을 들려 다시 내보내면서 '세계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고 우기는 우리 '지도층' 인사들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 부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식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죄 많은 사람들을 지도자로 섬기는 어리석은 중생들입니다.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윤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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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 선생님의 고무신>



보리에서 펴내는 월간 부모님 책 <개똥이네 집> 12월호에 실린 '고무신 할배의 넋두리'

보리

보리 2009-12-01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자. 수익이 나면 다시 책과 교육에 되돌리자. 보리출판사의 출판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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