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살다보면 잊고 지나가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죠. 저희 편집부 안에 좋은 일을 만난 사람과 나쁜 일을 만난 사람이 생기면서 다른 사람들이 더욱 분주해졌어요. 덕분에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뒷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생각이 떠오르는 거예요.
'허영철 선생님 돌아가신 날이 푹푹찌는 초여름이었는데...'
허겁지겁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바로 어제 6월 16일이 허영철 선생님 기일이었어요. 벌써 1년이 지난 거죠. 작년 5월 수술을 받고 원광대 병원에 누워계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산전수전 다 겪고 죽을 고비 수차례 넘기고, 그 끔찍한 고문도 이겨낸 불굴의 의지를 가진 혁명가가 병마와 세월을 못이기고 좁디 좁은 병원 입원실에서 거동도 못하고 누워있는 모습이 자못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도 여전한 웃는 얼굴이 너무 좋았어요. 젊은 사람도 참기 힘든 고통일텐데, 작가와 편집자를 알아보시고, 책 나왔다고 좋아하시는 모습은 평소 선생님께 느낄 수 있던 티없이 맑은 어린아이 모습이었어요. 저는 허영철 선생님을 두세번 밖에 못 만났지만, '공산주의자', '혁명가'와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와 어울리지 않게 환하고 따뜻한 웃음을 가진 분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허영철 선생님을 오래 알아온 분들은 패션에도 관심이 많은 멋쟁이셨다고 해요.
저는 <나는 공산주의자다>를 편집하면서 허영철 선생님을 직접 만나기보다는 만화책의 원작인 <역사는 나를 한 번도 비껴가지 않았다>를 통해 선생님을 알게되었는데요, 여러 정치적인 입장이나 생각은 동의 할 수 없는 면도 있었어요. 하지만 허영철 선생님이 살아온 인생을 살펴보면, 그이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건 그렇게 크게 다가오지 않아요. 오히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살아온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에 숙연해질 따름이죠. 그래서인지 <나는 공산주의자다> 추천글에 한홍구 선생님이 써준 글이 참 공감이 많이 되요.
이 책의 내용들은 틀림없이 한국사회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다. 그러나 허영철이 다담하게 풀어나가는 이야기 속에는 누구도 거부하거나 부인할 수 없는 힘이 실려 있다. 허영철이, 그리고 그가 차마 잊을 수 없는 수많은 동지들이 이 책에 깔려있는 입장을 위해 삶과 죽음을 모두 걸었기 때문이다. 나는 독자들이 이 책이 주는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권한다. 불편한 진실과 마주설 수 있는 자만이 오늘 우리의 모순된 현실을 고쳐나갈 수 있다.
허영철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1년, 이번 주말엔 <나는 공산주의자다>를 꺼내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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