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덕분에 세계가 지켜보고 있어서 온나라가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야하는 이 마당에
G20 의장국의 국격에 맞지 않는 판결이 있었어요.
작년 1월, 용산에서 철거민 다섯 분과 경찰특공대 한 분이 불타는 망루안에서 목숨을 잃었죠.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분노하고, 도심 한복판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데도 무관심했던 스스로를 부끄러워했었죠.
그래서인지 용산참사가 일어난 뒤 용산 참사 현장에는 많은 문화예술인들의 발길이 끊기질 않았어요.
시인들은 용산 참사 현장 바로앞 버스정류장에서 1인 시위를 하면서 거리에서 시를 쓰고
미술가들은 용산 참사 현장에서 무너진 벽들에 벽화를 그리고 주인 잃은 레아호프에 전시를 하고
음악인들은 손이 꽁꽁 어는 한겨울 용산 참사 현장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했어요.
이런 아름다룬 연대의 풍경이 책으로 엮어 나오기도 했는데, 그 가운데 한 권이 보리출판사에서 펴낸 만화책 <내가 살던 용산>입니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다시 재판 이야기로 돌아와야겠어요.
당시 망루에서 농성하던 철거민들은 죽거나 크게 다쳐 병원으로 실려가거나(아직까지 수술을 거듭하며 입원해있는 분도 계셔요. '철거민'편에 등장하는 지석준 씨 입니다.) 불법농성을 하고 화염병으로 물을 내 여섯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 재판을 받아왔습니다. 감옥에 갇힌 철거민 가운데는 돌아가신 이상림 할아버지의 둘째 아들 이충연 씨도 있어요. 그때 철거민들은 망루를 겹겹으로 둘러싼 경찰에 막혀 오도가도 못하고 있었는데, 검찰의 말대로 철거민들이 화염병으로 망루에 불을 질렀다면, 그건 자기 몸에 불을 질렀다는 이야기자나요. 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면서 수사기록을 감추는 등 정상적인 재판을 방해하는 검찰이지만 그동안 법원은 항상 검찰 편만 들었습니다.
바로 어제 최종 3심인 대법원에서 판결이 나왔는데, 여전히 철거민들에게만 죄를 물어 실형 4,5년이라는 엄청난 중형을 선고했어요. 근거도 제대로 제시하지 않은 검찰 쪽 주장은 거의 모두 채택됐지만, 철거민들의 주장은 거의 묵살되었습니다. 법이 언제 약한 사람들 편이었겠냐만, 이건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뭐 가난한 게 가장 큰 죄겠죠. 철거민들도 농성을 간 것보다, 화염병을 던진 것 보다, 가난한 게 가장 큰 죄인 셈이죠. 만약에 이건희나 김승현 같은 재벌 총수가 같은 혐의를 받고 있다면 재판 결과가 어떨지 생각해보세요.
사실 재판에 큰 기대는 안했었는데, 그래도 안좋은 결과를 접하니 기분이 씁쓸하네요. <내가 살던 용산>이 4쇄를 찍게 돼 그 준비를 하던 중이라 더 그런가 봅니다. <내가 살던 용산>는 올해 나온 보리책 가운데에선 가장 잘 팔리고 있는 책인데, 그래서 신나게 표지에 이번에 받은 상 표딱지 이미지도 넣고, 작가들 소개도 업데이트하고 그러고 있었는데, 재판 소식을 들으니,
책 많이 팔아서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이 책은 물론 많이 팔면 작가들 살림에도 출판사 살림에도 보탬이 되지만,
책을 처음 만들어갈 때, 이 책이 용산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고 용산 철거민들에게 힘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컸었거든요. 그래서 작가들과 출판사가 뜻을 모아 책 판매 수익의 일부를 계속해서 용산참사 범대위에 보내기로 했었구요. 그런데 책은 나름 잘나가고 있지만, 철거민들에게 인정할 수 없는 중형이 끝내 선고되는 걸 보니 이 책이 역할을 제대로 했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아무리 책 많이 팔아봤자 돌아가신 분들이 살아날 수는 없는 것이고, 그렇담 살아남은 철거민들에게 힘이 되어야 하는 거자나요. 그런데 용산 참사 철거민들은 중형을 선고 받고, 홍대 두리반에서는 농성을 못하게 하려고 전기까지 끊으면서 강제철거가 진행되고 그러다보니 조금 무력감이 드네요. 뭐 책 한권으로 세상이 바뀔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을 하진 않지만, 이 꿈쩍도 안하는 못된 세상이 얼마나 더 많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막다른 곳으로 몰아갈지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집니다.
이제 곧 용산 참사 2주기가 다가오는데, 망루에서 돌아가신 철거민들은 하늘나라로 제대로 올라가셨을까요?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로 몰려 감옥에서 몇 년을 갇혀있어야하는 것을 이상림 할아버지는 알고 있을까요?
보리 2010-11-12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자. 수익이 나면 다시 책과 교육에 되돌리자. 보리출판사의 출판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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