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한 30년 전, 내가 이오덕 선생님을 처음 만나고 얼마 안 되어서입니다. 한번은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이오덕 선생님이 “글은 곧 삶”이라는 말을 힘주어 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직 철이 덜 들었던 나는, 그것을 ‘자신이 몸으로 겪은 일만 글로 써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딴죽을 걸었습니다.
“선생님, 꼭 자기 삶만을 글로 써야 합니까? 이를테면 책을 읽고 영감을 얻어 글을 쓴다든지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선생님은 나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 선생은 책 좀 덜 읽으세요.”
하지만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열 몇 해 뒤, 선생님이 과천에서 무너미로 거처를 옮기고 나서입니다. 하루는 글쓰기회 모임을 마치고 댁에 들렀더니 선생님이 며칠 전에 만난 한 젊은 문학가 얘기를 했습니다. 그 젊은이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어려운 말을 늘어놓는 통에 애를 먹었다는 얘기 끝에 선생님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래도 책을 너무 많이 읽은 것 같습디다.”
나는 그 말뜻을 대강 짐작했지만,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좀 어리둥절해하는 눈치였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건 좋은 일 아닌가? ‘너무’ 많이 읽었다는 건 지나치다는 뜻 같은데, 책 읽는데도 지나침이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 때문이었겠지요. 그런 공기를 알아차렸는지 선생님은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문학한다는 사람이 책상머리에 앉아 책만 읽으니 마음이 병들어 이상한 말만 하게 되지요. 몸을 움직여 일하는 사람들은 절대 그런 말장난 하지 않아요.”
그 말을 들은 몇몇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몇몇 사람은 아직도 어리둥절한 얼굴로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몇 해 뒤, 내가 도회지에서 시골로 학교를 옮기고 나서 선생님을 찾아갔을 때입니다. 선생님은 ‘남들 다 가고 싶어 하는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간 용기’를 두고 덕담 한 마디를 하고 나서, 시골에 살아 보니 어떻더냐고 내게 물었습니다. 나는 누구에게나 하는 말로 대답했습니다.
“공기 좋고 물 좋고, 무엇보다도 조용하게 책도 읽고 생각도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 선생! 방에 들어앉아 책만 읽고 생각만 하지 말고, 바깥에 나가 농사일도 좀 하고 그러세요.”
그때 나는 그만 얼굴이 화끈거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선생님은 돌아가시기 몇 해 전부터 틈만 나면 가까운 사람들에게 간곡하게 타일렀습니다.
“책을 읽지 마세요. 몸을 움직여 일을 하세요.”
여러분은 이 말을 듣고 아마 놀랄지도 모릅니다. 이오덕 선생님이 책을 읽지 말라고 했다고? 그게 정말이야? 도대체 무슨 뜻으로 그러신 거지? 이렇게 말입니다.
이오덕 선생님보다 조금 더 일찍 세상을 떠난 성철 스님도 제자들에게 그런 비슷한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책을 읽지 마라, 땀 흘려 일을 하라고요. 왜 그랬을까요? 내가 감히 그 뜻을 헤아리기는 힘들지만, 나름대로 짐작이야 해 볼 수는 있습니다.
우선 책을 읽지 말라는 가르침을 남긴 이오덕 선생님이나 성철 스님이, 정작 자신은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봅니다. 이오덕 선생님이 생전에 읽은 책은 지금 큰 도서관을 이루었고, 성철 스님은 무려 일곱 나라 말로 된 수많은 책을 읽었다 하니 그게 어디 예삿일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혹시 이렇게 생각하나요? 아니, 자신은 책을 그렇게 많이 읽었으면서 우리더러는 읽지 말라니 그게 말이 돼?
그게 말이 될 뿐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을 얘기해 보지요. 그분들이 생전에 그 많은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책이 사람에게 얼마나 이로운지 해로운지 알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책을 읽은 덕분에 책의 장점뿐 아니라 흠결까지도 알아낸 것이 아닐까요? 그럼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합니다. 도대체 책의 어떤 점이 흠결이란 말인가?
이 또한 내가 말하기는 주제넘은 일이지만, 나름대로 생각해 본 것을 그냥 얘기하겠습니다. 요새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많은 책들을 보십시오. 줄잡아 절반은 말장난이요, 그 중 절반은 속임수입니다. 별것도 아닌 걸 그럴 듯하게 분칠하고 부풀려서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양 떠드는 책, 뭔가 그럴듯하긴 한데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리송해서 갈피를 못 잡게 하는 책, 무슨 어마어마한 이론이라고 들고 나오지만 대체 이런 얘기를 왜 하는지 모르겠는 책……. 이런 책들에 파묻혀, 그런 뜬구름 잡는 얘기만 읽다 보면 마음이 병드는 건 당연하겠지요. 좀 거칠게 견주자면, 바로 옆에서 사람이 죽어 가는데도 먼 산을 바라보며 단풍과 구름을 두고 말씨름을 하는 것입니다. 바로 옆에서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는데도 한눈을 팔면서, 문학의 본성은 한눈 팔기니 어쩌니 말만 그럴 듯하게 늘어놓는 것입니다.
애당초 그런 책을 읽지 않았으면, 또는 좋은 책만 읽었으면 그런 일도 없을 테지요. 이오덕 선생님은 바로 그것을 경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오덕 선생님이 읽지 말라고 한 책은 삶을 떠난 말장난과 속임수로 꿰어 맞춘 글입니다. 삶에서 우러난 글, 진심을 담은 책은 많이 읽을수록 좋겠지요. 그러니까 결국 이 말은 좋은 책을 가려 읽으라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그걸 누가 모를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좋은 책을 가려 읽는 일과 함께 우리가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언제나 몸을 움직여 땀 흘리며 일하는 것이지요. 일을 얕잡아 보고, 일하는 사람을 업신여기고서야 어찌 사람다운 삶을 산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일하는 사람의 삶과 그 사람의 감정은 누구보다도 그 당자인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자세하고 정확하게 나타낼 수 있다. 그래야만 지난날의 소설문학이나 시문학이 전반으로 빠져 있었던 제멋대로 된 값싼 상상이나 겉멋부리는 글재주에서 우리 문학을 살려낼 수 있을 것이다.
이땅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말과 글을 살려낼 사람도 일하는 사람들이다. 일하는 사람들이야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감당할 수 없도록 많이 가졌고, 살아 있는 말을 하는 이땅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이오덕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이오덕 외 씀, 보리, 1996)에서
보리에서 펴내는 월간 부모님 책 <개똥이네 집> 2010년 10월호
글쓴 이 | 서정오
1955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에서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쳤다. 옜이야기를 새로 쓰고 들려주는 일을 해 오고 있다. 펴낸 책으로 <옛이야기 보따리> (모두 10권) <옛이야기 들려주기> <정신 없는 도깨비> <딸랑새> <철 따라 들려주는 옜이야기>(모두 4권) 들이 있다. 옛이야기를 공부하면서 차곡차곡 쌓아 둔 우리말 이야기를 다달이 <개똥이네 집>에 풀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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