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란집》. 청와대? 아니, 그게 아니지요. 보리출판사에서 펴낸 ‘넘버 쓰리’(Number Three) 그림책.
‘보리’는 이제까지 남이 하는 짓 따라서 하지 말자, 남이 안 하는 짓, 못 하는 짓, 그렇지만 꼭 필요한 짓, 그 고리가 빠지면 삶 한 구석이 텅 비는 그런 짓을 하자는 뜻으로 출판 세상에서 이런 짓, 저런 짓, 모두 어리석은 짓으로 여기는, 그야말로 ‘당랑거철’(螳螂拒轍), 사마귀 주제에 탱크에 맞서겠다고 나서는 짓을 해 왔네요.
그 가운데 하나가 ‘평화 발자국’이라는 시리즈인데요. 권정생 선생님이 쓴 《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를 처음으로, 이번에 여섯 권째인 《
끝나지 않은 겨울》을 냈어요.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벌인 이른바 ‘대동아전쟁’에서 희생된 20만 명 넘는 우리 꽃다운 여자들이 어떻게 일본 제국주의자들 군홧발에 처참하게 짓밟혔는지를 그린 그림책이지요. 권정생 선생님 말씀마따나, 읽고 나서 참 마음이 불편해지는 책, 그래서 ‘좋은 책’이지요. 《
나는 공산주의자다》라는 불온한(?) 책도 ‘평화 발자국’입니다. 그런데 평화 발자국 시리즈에서 잊혀진 책이 그 두 책 사이에 끼어 있어요. 《
파란집》이라는 책인데, 이 책 앞뒤에 그린 이가 쓴 몇 마디 피맺힌 절규가 있지만, 본문에는 글이 하나도 없어요. 저는 이 그림책이 이 나라에서 펴낸 가장 뛰어난 그림책 가운데 하나라고 봐요.
‘보리’에서는 외국 책을 드물게 내는데 이번에 《
꼬마 밤송이 뽀알루》를 보태려고 합니다. 이 책도 글이 하나도 없는 그림책이에요. 《뽀알루》와 《
파란집》은 어떤 점이 다르냐고요?
《뽀알루》는 아이들이 아이들답게 살 수 있는 세상에서 나온, 정말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책인데 《
파란집》은 이 땅에서 아이들 꿈이 왜 떡잎부터 뭉개질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 주는 책이에요. (그래도 이 책에는 민들레 홀씨로 상징되는 크나큰 꿈이 들어 있어요.) 저는 가끔 그냥 그런 그림책들을 보다가 각성제 삼아 제 방 책꽂이에서 이 책을 꺼내서 다시 봅니다. 그리고 《뽀알루》를 그리고 펴낸 작가와 출판사에 이 책을 권하려고 합니다. 당신들도 이 책을 읽고, 당신들 세계에 소금이 될(아니, ‘방부제’나 ‘면역제’라고 해야 알아들을지 모르겠군요.) 이 책을 펴내야 한다고 우기려고 합니다.
세상이 무너지고, 발붙일 곳이 없어도 내 아이만은 제대로 키우고 싶다는 게 자식 둔 부모가 가진 빛바래지 않은 하나뿐인 꿈이지요. 《
파란집》은 그 꿈을 짓밟은 세상에 대한 자그만 저항입니다. 우리한테만 있는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 전체가 어떤 삶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애 아빠 처지에서 외치는 피맺힌 절규지요.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고요? 저도 그렇습니다. 불편한 진실은 견디기 쉽지 않으니까요. 그걸 대물림하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그래도 우리가 아이들과 함께 나날이 겪을 수밖에 없는 이 불편한 진실을 똑바로 보고, 우리 아이들이 맞이할 세상은 진실이 편안한 그런 세상이기를 꿈꾸는 부모라면, 아이와 함께 꼭 한번 보아야 할 책인 것 같아요.
윤구병
보리에서 펴내는 월간 부모님 책
<개똥이네 집>
2010년 9월호에 실린 '고무신 할배의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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