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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마주 이야기" 갈래 글122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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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보리 편집 살림꾼들이 윤구병 선생님과 몇 주에 걸쳐 교열 공부를 했어요.
윤구병 선생님이 숙제를 내주시면 편집 살림꾼들이 한 주동알 교열을 보고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었습니다. 편집 살림꾼들이 하는 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이 교정교열인데, 교정이 틀린 글자와 맞춤법을 고치는 것이라면 교열은 내용에서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교정도 교열도 정해진 법칙을 기준으로 해서 기계적으로 고치는 것이 아니라 글 내용과 뜻이 가장 쉽고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고민하고 고민해서 이뤄지는 일이에요.

윤구병 선생님은 교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글쓴 이의 글맛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쉬운 글이 되도록 하는 것이라 하셨어요. 배우지 못한 이도 어린 아이도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글이 가장 좋은 글이라고요.

그리고 첫번째 교열 숙제로 내주신 것이 독립신문 창간호였어요.
서재필 박사가 창간한 신문이라고 학교 다닐 때 배우기만 했지 한 번도 읽어 본 적 없었는데 첫번째 숙제부터 이렇게 어려운 글이라니 막막했습니다. 게다가 전 편집살림꾼도 아니어서 교정교열을 잘 알지도 못하거든요.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조금도 어렵지가 않았어요. 옛말이라 어려울 것이라 지레짐작했는데 알 수 없는 말들이 조금 있긴 했지만 글 전체로는 술술 읽어 내려갈 수 있었어요. 입말로 쓴 글이라 오히려 요새 신문보다 쉬운 글이었습니다.


독립신문1.jpg

독립신문

제 1권 제 1호
조선 서울 건양 원년 사월 초칠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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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신문이 본국과 외국 사정을 자세히 기록할 터이요 정부 소식과 민간 소문을 다 보고할터이라.
정치상 일과 농사 장사 의술상 일을 얼만큼씩 이 신문상 매일 기록한 값은 일 년에 일원삼십전, 한 달에 십이전, 한 장에 동전 한 푼. 독립신문 분국이 제물포 원산 부산 파주 송도 평양 수원 강화 등지에 있더라.

신문을 달로 정하든지 일 년간으로 정하여 사보고 싶은 이는 정동 독립신문사로 와서 돈을 미리 내고 성명과 집이 어디라고 적어 놓고 가면 하루 걸러 신문을 보내줄터이니 신문 보고 싶은 이는 속히 성명을 보내기 바라옴.

물론 누구든지 물어볼 말이 있든지 세상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이 신문사로 간단하게 띄어쓰기를 해서 편지하면 대답할만한 말이든지 신문에 낼 만한 말이면 대답할터이요 내기도 할터이옴. 한문으로 쓴 편지는 당최 상관아니함.

경향간에 물론 누구든지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이 이 신문을 가져다가 놓고 팔고자 하거든 여기 와서 신문을 가져다가 팔면 열장에 여덟장만 셈을 하고 백장에 여든장만 셈을 함.



논설

우리가 독립신문을 오늘 처음으로 출판하는데 조선 속에 있는 내외국 인민에게 우리 주의를 미리 말씀하여 아시게 하노라.
우리는 첫째 한쪽으로 치우치지 아니한고로 무슨 당에도 상관이 없고 상하귀천을 달리 대접 아니하고 모두 조선 사람으로만 알고 조선만 위하며 공평히 인민에게 말할터인데 우리가 서울 백성만 위할게 아니라 조선 전국 인민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지 대언하여 주려함.

정부에서 하시는 일을 백성에게 전할터이요 백성의 정세를 정부에 전할 터이니 만일 백성이 정부 일을 자세히 알고 정부에서 백성의 일을 자세히 아시면 피차에 유익한 일만 있을터이요 불평한 마음과 의심하는 생각이 없어질 터이옴.

우리가 이 신문 출판 하는 것이 이득을 취하려 하는 게 아닌고로 값을 헐도록 하였고,
모두 언문으로 쓰기는 남녀 상하귀천이 모두 보게 함이요 또  띄어쓰기는 알아 보기 쉽도록 함이라.

우리는 바른대로만 신문을 할터인고로 정부 관원이라도 잘못하는 이 있으면 우리가 말할터이요 탐관오리들을 알면 세상에 그 사람의 행적을 알려 몰아낼 것이요 일반 백성이라도 무법한 일을 하는 사람은 우리가 찾아 신문에 설명할터이옴.

우리는 조선 대군주폐하와 조선정부와 조선인민을 위하는 사람들인고로 한 당파에 치우친 의논이든지 한쪽만 생각하고 하는 말은 우리 신문상에 없을터이옴.

또 한쪽에 영문으로 기록하기는 외국인민이 조선 사정을 자세히 모르즉 혹 치우친 말만 듣고 조선을 잘못 생각할까 보아 실상 사정을 알게 하고자하여 영문으로 조금 기록함.

그리한즉 이 신문은 조선만 위함을 가히 알터이요 이 신문을 인연하여 내외 남녀 상하 귀천이 모두 조선일을 서로 알터이옴. 우리가 또 외국 사정도 조선 인민을 위하여 간간히 기록할 터이니 그걸 인연하여 외국은 가지 못하더라도 조선인민이 외국 사정도 알터이옴. 오늘은 처음인 고로 대강 우리 주의만 세상에 고하고 우리신문을 보면 조선인민이 소견과 지혜가 진보함을 믿노라. 논설끝치기 전에 우리가 대군주 폐하께 송덕하고 만세를 부르나이다.



우리 신문이 한문은 아니쓰고 다만 국문으로만 쓰는것은 상하귀천이 다 보게 함이라.
또 국문을 이렇게 띄어쓰기를 한 즉 아무라도 이 신문 보기가 쉽고 신문 속에 있는 말을 자세히 알아 보게 함이라.

각국에서는 사람들이 남녀 물론하고 본국 국문을 먼저 배워 능통한 후에야 외국 글을 배우는 법인데 조선서는 조선 국문은 아니 배워도 한문만 공부 하는 까닭에 국문을 잘 아는 사람이 드뭄이라.

조선 국문하고 한문하고 비교하여 보면 조선국문이 한문보다 얼마가 나은 것이 무엇인고 하니 첫째는 배우기가 쉬워 좋은 글이요 둘째는 이 글이 조선글이니 조선 인민들이 알아서 한문대신 국문으로 써야 상하 귀천이 모두 보고 알아 보기가 쉬울터이라. 한문만을 써 버릇하고 국문은 쓰지 않고 버려둔 까닭에 국문만 쓴 글을 조선 인민이 도리어 잘 알아보지 못하고 한문을 잘 알아보니 그게 어찌 한심치 아니하리요

또 국문을 알아보기가 어려운건 다름이 아니라 첫째는 말마디를 띄어 쓰지 아니하고 그저 줄줄 내려 쓰는 까닭에 글자가 위부터인지 아래부터인지 몰라서 몇번 읽어읽어 본 후에야 글자가 어디부터인지 비로소 알고 읽으니 국문으로 쓴 편지 한 장을 보자하면 한문으로 쓴 것보다 더디 보고 또 그나마 국문을 자주 아니 쓰는고로 서툴어서 잘 못봄이라.

그런고로 정부에서 내리는 명령과 국가 문적을 한문으로만 쓴즉 한문 못하는 인민은 남의 말만 듣고 무슨 명령인줄 알고 이편이 친히 그 글을 못 보니 그 사람은 무단히 병신이 됨이라. 한문 못한다고 그 사람이 무식한 사람이 아니라 국문만 잘하고 다른 물정과 학문이 있으면 그 사람은 한문만 하고 다른 물정과 학문이 없는 사람보다 유식하고 높은 사람이 되는 법이라.

조선 부인네도 국문을 잘하고 갖가지 물정과 학문을 배워 소견이 높고 행실이 정직하면 물론 빈부 귀천 간에 그 부인이 한문을 잘하고 다른 것 모르는 귀족 남자보다 높은 사람이 되는 법이라. 우리 신문은 빈부 귀천을 다름 없이 이 신문을 보고 외국 물정과 내지 사정을 알게 하려는 뜻이니 남녀 노소 상하 귀천간에 우리 신문을 하루 걸러 며칠간 보면 새 지각과 새 학문이 생길걸 미리 아노라.

읽고 나니 윤구병 선생님의 본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독립신문을 교열 보라는 것이 아니라 글은 이래야 한다는 걸 알려 주고 싶으셨던 거에요.
독립신문 창간호에 담긴 정신과 그 정신을 누구나 읽고 알 수 있게 쉽게 풀어 쓴 글을 보며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신문과 온갖 글들을 생각해 보면 온통 어려운 말 투성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신문을 보고 싶은 이는 여기 와서 미리 돈을 내고 이름과 어디 사는지 적으세요' 이 말을 지금 우리는 어떻게 쓸까요?

'신문구독을 원하면 방문하여 선불로 결제하고 신청서를 작성하십시오' 라고 쓰지 않을까요?

이오덕 선생님 말씀처럼 우리말 쉬운말 어릴때부터 쓰던 말 강아지와 하던 말을 써야 힘 없는 이, 어린 아이, 배우지 못한 이가 차별받지 않고 소외되지 않고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행복한 세상이 될거에요.


독립신문에서 보듯이 우리말 질서는 말 끝이 '~다'로 끝나지 않는다고 해요.
'~다'로 끝나는 것은 일본말 질서 '~데스'에서 온 것임.

 



보리

보리 2010-08-19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자. 수익이 나면 다시 책과 교육에 되돌리자. 보리출판사의 출판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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