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출판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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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에서 펴낸 책 가운데 귀하지 않은 책이 없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귀한 책을 꼽으라고 하면 전 아이들이 쓴 글을 모은 책을 꼽습니다. <아버지 월급 콩알만하네>, <일하는 아이들>, <꼴찌도 상이 많아야 한다>, <새들은 시험 안 봐서 좋겠구나>, <개구리랑 같이 학교로 갔다> 들에 담긴 아이들 글을 보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지금까지 이렇게 재미나면서도 감동스런 책을 본 적이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멋드러진 은유법, 비유법,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어려운 표현들을 써야만 '시'라고 생각했던 제 생각을 별다른 설명이나 가르침 없이 단번에 바꿔준 책입니다.

보리 계정으로 트위터를 운영하면서 가장 많이 RT되고 가장 많은 반응을 얻는 글또한 바로 이 책들에 담긴 아이들 글이에요.

'아이가 이런 시를 쓸 수 있다니!'
'세상에 이런 아이가 있다니!'
'아이들 앞에 부끄럽네요.'
'와! 놀라운 표현력!'

새벽에도 트윗에서 아이들 글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눌 만큼 저도 제가 쓰는 트윗을 보는 사람들도 아이들 글에 완전히 빠져들기도 했어요. 트윗 140자안에 담긴 짧은 아이들 글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감동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 글이야말로 가장 진실되고 가장 큰 힘을 지녔다는 것을 느끼곤 했습니다. (저작권 문제가 있다고 하여 지금은 트윗하고 있진 못합니다.)

사무실에서 일이 잘 안될 때 마음이 답답할 때도 이 책들을 열어 봅니다. 그러면 제 자신도 모르게 웃고 있는 절 보게 돼요.

그리고 이 곱고 예쁜 글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 아이들은 어떻게 자랐을까?
 평생에 한 번이라도 이렇게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큰 복일텐데, 잊을 수 없을텐데,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한 삶은 아니지만 소박하고 고운 마음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몇년 전에 방송국에서 만든 임길택 선생님과 제자들이 쓴 글 이야기를 담은 <길택씨의 아이들> 다큐멘터리에서 <아버지 월급 콩알만하네> 책을 보고 아이처럼 즐거워하고 뿌듯해하는 제자분들을 뵐 수 있었거든요. 임길택 선생님께 배울 때 쓴 글이 책으로 나왔다는 것을 믿지 못하다가 정말 자신이 쓴 글이 있는 것을 보고 그 때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자랑스러워 하기도 하는 제자분들 얼굴은 모두 선하디 선한 분들이었어요.

아이들 삶을 가꾸기 위해,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애쓰신 선생님들께 배운 아이들이라면 '시'를 썼던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갈거란 믿음이 있었어요. 전 단지 책으로 아이들 글을 보고 이렇게 생각할 뿐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글쓰기 지도를 하고 문집을 엮고 책으로 펴낸 선생님들은 어떤 마음일까요? 선생님들은 더 가슴 깊은 곳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해 하실테죠.

얼마 전에 보리 블로그에도 썼지만, 2005년에 한길사에서 나온 이오덕 선생님 시집, <무너미마을 느티나무 아래서>에서 아이들 소식을 궁금해 하는 이오덕 선생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너무 가슴 아파서 울고 말았습니다.


청개구리

청개구리가 나무에 앉아서 운다.
내가 큰 돌로 나무를 때리니
뒷다리 두 개를 펴고 발발 떨었다.
얼마나 아파서 저럴까?
나는 죄 될까 봐 하늘 보고 절을 하였다.

                                    (1969년 5월 3일)

<일하는 아이들> 에 담긴 많은 글 가운데서도 특히 마음에 남는 시에요. 이 시를 보고 얼마나 따뜻하게 웃었는지 보는 사람마다 보여주곤 했어요.

청개구리가 올라 앉아 울고 있는 나무를
장난삼아 돌로 쳤다가
그 청개구리가 놀라 발발 떠는 것을 보고
죄 지었다는 생각이 들어
하늘 보고 절했다는 시를 쓴 아이.
깊은 산골에서 겨울이면 하루 나무를
두 짐씩 하고
여름이면 또 풀을 몇 짐씩 베고
방학 때는 감자를 스무 짐씩 져 날라
그렇게 부지런하고 착하던 아이.
그 아이는 자라나면 훌륭한 시인이 될 것이라
믿었더니
여러 해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무슨 일로
세상이 얼마나 괴로웠기에
얼마나 또 큰 장난을 했기에
지은 죄 갚는다고 목숨까지 버렸을까?

이오덕 선생님 '흔들리는 지구' 가운데 (1998.12.12)


끝까지 읽어내려가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이른봄 담 밑에 돋아나는 새파란 풀싹 같고
가을날 개울가에서 실비단 하늘빛으로 눈부시던 달개비 꽃 같던
그 고운 마음들 다 짓밟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시도 말도 죽어버린 이 쓸쓸한 땅 거친 벌판에
다만 약빠른 재주꾼들만 살아남아 선진 복지 관광 문화 국가를 외치면서
활개치고 다니는 세상.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잿빛으로 덮인 이 낯선 거리를
쫓기는 짐승처럼 엉금엉금 기어가듯 하는 나
이제는 마지막으로 남은 우리들의 오직 하나뿐인 목숨
목숨을 지키자고 말을 살리자고
지팡이 짚고 걸어가는 길이 왜 이다지도 어지러운가
멀미가 난다.
땅이 흔들린다.
지구가 흔들리는구나.

이오덕 선생님 '흔들리는 지구' 가운데 (1998.12.12)


그토록 한편생을 아이들을 살리고 아이들 삶을 가꾸기 위해 온전히 살아가신 이오덕 선생님이 쫓기는 짐승처럼 엉금엉금 기어가야만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웠어요. 무너져내렸을 선생님 마음을 생각하니 제 마음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쓰기교육연구회 연수회는 가슴 한켠에 무거운 마음을 담고 참여했어요.

이번 연수회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 고등학생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학업과 등진 실업계, 입시 교육에 짓눌려 사는 인문계 고등학생들에게 살아있는 글쓰기, 솔직한 글쓰기 지도를 하시는 구자행 선생님 주제 발표는 기적처럼 느껴졌어요.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을 온전한 인격체로 대하고 품어 안는 최관의 선생님 지도 사례에서는 아이들 손을 잡으면 아픔이 느껴진다는 부분에서 소름이 돋을 만큼 감동스러웠고요.

그 가운데서도 특히 선생님들이 가르쳤던 아이들이 나중에 선생님을 기억하고 찾아오는 이야기에선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일진에 빠지게 되었던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정말 멋진 글로 써내려갔던 제자가 졸업 후에 멀리서 달려와 손을 맞잡고 반가워 했던 일, 내 인생 최고의 선생님이라는 쓴 편지글이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자꾸만 자꾸만 이오덕 선생님이 쓰신 '흔들리는 지구'가 생각이 나서 마음이 괴로웠어요. 아이들을 살리는 교육을 하겠다고 방학 중에도 이렇게 모이고 지도 사례를 나누고 토론을 하는 이 좋은 선생님들의 노력과 눈물어린 바람처럼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나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모든 아이들이 어릴 때 '시'를 쓰던 마음을 잃지 않고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어른으로 자라나기 위해선 여기 모인 어른들의 노력과 눈물만으론 너무나 모자른 것이 현실입니다. 경쟁 속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생각과 자세가 바뀌어야 하고 사회가 바뀌어야 하고 교육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너무나 힘겨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현실에서도 이렇게 묵묵히 힘쓰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이 우리가 가진 희망일겝니다.
그 길을 보리도 걸어가고 있다는 것, 계속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 이렇게 세상이 어지러운데도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까닭입니다.

청개구리에게 돌을 던지고 죄 될까 하늘을 보고 절하던 아이가
약빠른 재주꾼들에게 밀리고 짓밟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처럼 가슴 아픈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합니다...






보리

보리 2010-08-18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고 출판의 빈 고리를 메우자. 수익이 나면 다시 책과 교육에 되돌리자. 보리출판사의 출판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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