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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 선생님" 갈래 글75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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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에서 아내를 맞았습니다. 아이 둘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선택이었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바라셨던 대로 까막눈 농사꾼이 되었더라면, 비록 헐벗고 굶주리고, 아이들도 그냥 농사꾼 처지를 대물림하기 십상이었겠지만, 죄 덜 짓고 남을 먹여 살리는 일에 힘쓰는 삶을 살았겠지요.

우리 땅 북녘을 가장 닫혀 있고, 가장 굶주리고, 헐벗은 이들이 살고 있고, 밤이 깜깜한 땅인데다, 사람들 얼굴 표정도 가장 어두운 데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 크게 틀리지 않다고 봅니다.

그 러나 이렇게 생각해 보면 안 될까요? 지금 밤이 대낮 같고, 가장 열려 있고, 가장 배불리 먹고 등 따시게 살아서, 사람들 얼굴 표정도 가장 밝은 데로 알려져 있는 미국은 지금 남한테 주는 것보다 내 것을 알아서 쓴느 일에 가장 앞장선 곳인 데다 이 세상 곳곳에서 전쟁을 벌이거나, 벌이라고 부추겨 무기를 내다 팔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가장 죄 많은 나라라고요.

거기에 견주면, 북녘은 물질 에너지를 가장 덜 쓰고, 스스로 바라서 그랬든, 어쩔 수 없이 그랬든, 무엇이든 아끼고 살 수 밖에 없어서 밤도 가장 깜깜하고, 공장 굴뚝에서 내뿜는 매연도, 자동차 배기가스도 형편없이 적어, 그 결과만 놓고 보면, 아직까지는 온 세상 생태계를 가장 덜 오염시키고, 베트남이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에 전쟁 물자나 군대를 보내서 남이 사는 땅을 쑥대밭으로 만들거나, 죄 없는 부녀자를 죽이지 않으니 가장 죄를 덜 짓고 지내는 나라 가운데 하나라고요.

변산에서 농사짓다가 요즈음 서울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면서 저 개인으로는 고통스러운 순간이 많습니다. 민족의학연구원을 설립하는 데 힘을 보내고, 여기에서 '문턱 없는 밥집', '기분 좋은 가게'를 열어, 도시 서민들이 유기농 음식을 눅은 값으로 맛볼 수 있게 하고, 무엇보다 점심때는 고춧가루 한 톨도 남기지 않는 '밥그릇 깨끗이 비우기' 운동을 벌여 날마다 많은 분들이 함께하고, 그냥 버리는 물건 되살려 쓰는 일에도 관심을 갖도록 곁에서 거든 것이 보람이라면 보람입니다.

그래도 물과 함께 씻어 내보낼 수밖에 없는 똥오줌, 막걸리를 마셔도 생길 수밖에 없는 플라스틱 병 같은 자질구레한 생태 오염과 환경 파괴를 비롯해서 제가 앞장서 저지를 수밖에 없는 일들이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가야지' 다짐한 지 꽤 오래됐건만, 뒤에 남기는 게 죄지은 흔적뿐인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이 들어요. 도시에서 뒤치다꺼리할 일이 조금 남아 있어서 당장 다 걷어치우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서울 생활을 빨리 접고 싶네요. 괜한 넋두리로 마음 불편하게 해 드렸을 분들한테 미안한 마음도 들고요.

윤구병


보리에서 펴내는 월간 부모님 책 <개똥이네 집> 2010년 8월호에 실린 '고무신 할배의 넋두리'



저는 <개똥이네 집>이 나오면 가장 먼저 윤구병 선생님이 쓰신 '고무신 할배의 넋두리'를 봐요. 사장님이시지만 자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고무신 할배의 넋두리'를 보면서 선생님이 요즘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도 있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기도 해서 보리 블로그에도 올리고 있고요.

그런데 이번 선생님 글을 읽고 난 후엔 눈물이 났어요.
선생님의 고되고 쓸쓸한 마음이 느껴져서요.

저희 보리식구들에게 선생님은 지금 사장님이시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을 존경하고 배우고 싶어하지만 선생님도 신이 아니시니 완전한 사장님일 순 없죠. 선생님에 대한 불만과 불평이 있을 수 밖에 없고요. 선생님이 큰 나무이신 건 분명한데 말이에요.

저 또한 선생님을 그냥 사장님으로 대한 것이 아닌지, 선생님 마음 불편하실 글들을 보여드리면서 선생님 마음 헤아려보지 않은 것이 죄송해졌어요. 요새 건강이 좋지 않으세요. 살만큼 살았으니 내일 죽어도 자연사라는 말씀을 저희는 지겹게 들었지만 막상 기운 없는 모습을 자주 뵙게 되니 마음이 안좋아요.

제 욕심엔 선생님이 도시에서 가까이 계셔주시면 좋겠지만, 당산 할매 곁에 변산 공동체학교 학생들이 지은 지름박골 흙집에서 산할아버지로 머무셔야 행복하실 것 같아요.

쓰다보니 선생님께 쓰는 편지가 되어버렸네요. 선생님께는 직접 말씀드리지도 못할 거면서 말이에요.






보리

보리 201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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