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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출판사에서 펴내는
부모와 어른을 위한 책 <개똥이네 집> 2009년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인구 520만여 명에 불과한 북유럽의 작은 나라, 핀란드. 산타클로스와 자작나무 숲, 자일리톨과 노키아로 알려진 나라 핀란드가 21세기에 들어서 '교육의 나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2000년, 2003년, 2006년에 실시된 OECD의 국제 학업성취도 비교 평가 연구 (PISA)에서 핀란드는 3회 연속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적 성취를 보여 주었다. 핀란드의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미국이나 일본, 영국은 물론 우리나라에도 추청되어 성공적인 교육 개혁으니 경험을 전파하고 있으며 동유럽이나 아시아, 아프리카 나라들의 교육 정책과 전략을 자문하고 있다.

핀란드는 특히, 전 세계의 정치인과 교육자들로 하여금 한 나라의 교육이 지향할 가치과 목적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정부와 지방 자치단체는 어떤 철학과 원칙으로 교육 정책을 세워야 하는지, 학교와 교사들은 어떤 자세로 교육에 임해야 하는지, 학생들의 자발적인 학습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성찰을 부추기며 새로운 교육적 상상력을 이끌어 주고 있다.

전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외치면서 학교와 교사와 학생들 사이의 경쟁을 부추기는 정책을 펼치는 동안 핀란드는 차별과 구분의 교육이 아닌 평등과 통합의 교육이, 경쟁이 아닌 협력이 더 좋은 교육 성과를 낼 수 있음을 실증해 보였다.

복지를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 국가

20세기 들어서 핀란드는 동쪽으로는 전 세계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운동의 본산이었던 러시아와, 서쪽으로는 이른바 스칸디나비아형 복지국가 모델의 원조인 스웨덴과 갈등하고 협력하면서 발전해 왔다. 핀란드는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같은 스칸디나비아형 보편적 복지 모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사회주의 러시아의 평등주의적인 이념과 문화로부터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그리하여 핀란드는 사회민주당이 과반수를 넘는 다수당이었던 적이 없었음에도 사회민주주의적인 철학과 이념과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북유럽형 복지국가로 발전해 올 수 있었다.

다른 북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핀란드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모든 국민이 인간답게 하는 복지 제도를 발전시켜 왔다. 핀란드의 모든 국민들은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무상 교육, 무상 진료, 건강 보호, 각종 수당과 노령 연금 같은 복지 혜택을 받는다. 그와 같은 보편적 복지를 위한 재원은 1인당 평균 44% 정도의 세금 부담율을 통해 조성되는 세금이다.

다른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그러하듯이 핀란드식 복지국가는 자본주의적 자유 시장 경제를 인정하면서도, 시장의 횡포나 시장의 실패로부터 삶의 질과 공동체 복지를 지키기 위한 정부의 적극 개입과 중재를 비롯한 공공 부문의 역할을 매우 중요시한다. 이기심과 이윤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장과 공공성과 공익을 지키려는 정부는 서로 견제하고 보완하면서 발전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핀란드의 저력 - 평등사상과 신뢰하는 문화와 교육

북유럽 복지국가에서  자연재해나 질별, 시장의 실패로부터 개개인의 인간적인 삶과 사회적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적 연대 의식을 바탕으로 정부와 지방 자치단체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믿는다. 이에 따라, 공동체 복지를 유지하기 위해서 꼭 핅요한 수많은 공익 일거리들은 영리 기업이 아닌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이 운영해 왔다. 영국이나 미국 같은 많은 나라들이 공공 부문의 민영화를 추진했지만,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에서는 국민의 복지와 삶의 질을 지켜 주는 강력한 교두보인 공공 부문을 노동조합과 비영리 민간단체들에 맡겨 운영해 왔다.

이러한 국가 분위기 속에서 핀란드 국민은 정부와 공무원들을 믿고, 정부 또한 국민들을 굳게 신뢰한다. 버스 지하철, 전차 어디에도 검표원이 없으며, 주차장에서도 모두 자동판매기형 주차 미터기에 주차 요금을 자진 신고하고, 국민들은 핀란드 국내에서 생산된 제품을 철저히 신뢰한다.

코트라 헬싱키 무역관장을 지냈던 이승희 씨는 <이것이 바로 핀란드 경쟁력>이라는 코트라 보고서에서 핀란드의 저력은 사회 저변에서 하드웨어를 움직인은 '소프트웨어'에 있다고 지적하고, 핀란드를 움직이는 핵심 소프트웨어로 남녀노소나 지위 고하를 막론한 평등사상 및 문화,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상호 신뢰의 문화, 효율적이인 교육제도 같은 것을 들었다.

질 높은 평등 교육을 보장한 종합학교 제도

1919년에 헌법을 제정하면서 의무교육 제도를 실시할 것을 규정한 핀란드는, 1921년에 의무교육 관련 법률을 시행하면서 본격적으로 공교육을 시작하게 된다. 핀란드의 의무교육은 북유럽형 복지국가의 발전과 맞물려 무상 교육을 원칙으로 점차 확대되어 왔다.

1963년에 핀란드 의회는 종합학교(comprehensive school)제도를 도입할 것을 결정하였고, 1968년 교육법에서 기존 학교를 종합학교로 전환하기 위한 입법이 이루어졌다. 이 법에 따라서 1968년부터 실험학교 운영이 시작되었고, 그 경험과 성과를 바탕으로 1972년부터 1977년까지 연차적으로 북부에서 시작하여 남부 쪽으로 핀란드 전역에서 종합학교로 전환이 이루어졌다.

종합학교 제도는 초등학교 5학년 이후에 인문학교와 직업학교로의 진로를 구분하여 진학하도록 한 독일식 학교 제도 대신에 모든 학생들이 9학년이 될 때까지 보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이다. 이러한 종합학교 제도의 도입으로 7세(1학년)부터 16세까지 학생들은 어떤 학교에 다니더라도 고르게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종합학교 제도는 독특한 핀란드식 교육 모델을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197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초까지 20녀 년은 핀란드의 교육 개혁과 교육 제도 발전에서 매우 중요한 기간이었다. 이 기간 동안에 핀란드에서는 종합학교 교육 과정 개발, 교사 양성 제도 정비, 안정적인 교육 재정 투자, 학교 운영 시스템 개혁 등 종합적인 교육 개혁 정책들이 추진되었다. 특히, 1972년부터 1991년까지 20년 가까이 국가교육청장을 역임한 에르끼아호(Erkki Aho)는 확고한 교육 원칙과 철학을 바탕으로 여러 정당과 이해관계 집단을 조율하면서 교육 개혁을 안정적으로 추진하였다. 이러한 정책 흐름은, 1990년대를 거치면서 좀 더 섬세한 발전 과정을 거치게 되고, 2000년 이후 핀란드가 보이는 교육 성취는 이와 같은 여러 요인들이 함께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교육은 교육만이 아니다. 삶의 터전인 사회가 곧 학교이고, 앎과 삶이 하나됨을 그 바탕으로 삼고 있다. 아이 하나하나가 저마다 독특한 길을 자유롭게 걸어가게 돕는 곳으로 학교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본을 새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진정한 대안 교육은 이런 새로운 교육의 꿈을 실현시키려는 노력을 통해 교육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거듭나게 하는 더욱 적극적인 노력을 아우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까 '다른 교육'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 (보리, 1997)에서


글 | 안승문

1983년부터 교단에 섰다가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 월간 <우리교육>을 창간했으며 서울시교육위원으로도 일했다. 2007년부터 스웨덴에 머물면서 북유럽 복지사회의 공교육을 공부했다. 지금은 '교육희망네트워크'와 '새로운학교네트워크'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보리

보리 201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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