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출판사에서 펴내는
부모와 어른을 위한 책 <개똥이네 집> 2010년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학업성취도 국제비교 연구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는 나라', '국가청렴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남녀평등 지수가 높은 나라', '정직과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 ... 전 세계 많은 언론들이 핀란드를 두고 쏟아 내는 찬사들이다.
1246년부터 1809년 스웨덴 왕의 다스림을 받고, 1809년부터 1917년까지 러시아가 세운 군주의 다스림을 받아야 했던 나라 핀란드. 19세기말부터 여러 번 전쟁을 치르고, 2차 세계대전에서 지는 바람에 돈을 불어내느라 1950년대까지도 그리 잘살지 못했던 나라 핀란드를 세계인들이 이처럼 부러워하고 우러러보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핀란드 사람들이 스스로 말하는, 핀란드의 상징 세 가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가 보기로 하자.
핀란드 사람들이 외국에 있을 때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사우나(Sauna), 시수(Sisu), 시벨리우스(Sibelius)라고 한다. 이 세 가지를 함께 누리면서 눌구나 자신이 필란드 사람임을 되새긴다는 것이다. 그 밖에 또 하나를 든다면 삼포(Sampo)가 있다.
사우나 (Sauna)
사우나는 핀란드어로 '목욕'을 뜻한다. 북위 60도에서 70도 사이에 있어 매우 우춘 겨울을 겪어 온 핀란드 사람들은 선사 시대부터 추위를 이겨내는 지혜로 사우나를 즐겨 왔다. 사우나는 많은 다른 나라에서 자기 나라말처럼 받아들여 쓰고 있는, 몇 개 안 되는 핀란드 말 가운데 하나이다.
핀란드에는 개인 주택이나 아파트는 물론 여름 별장이나 일터, 병원에까지도 사우나가 있다. 사우나에는 옷을 입지 않고 들어가는 것이 전통이며, 가족들이나 가까운 친구들은 남녀가 함께 한다. 공공 사우나나 회사에서는 남녀 사우나실이 따로 있다.
핀란드에서 사우나는 땀을 내며 몸을 풀고 목욕하는 곳일 뿐 아니라 아이를 낳는 곳, 또는 침으로 피를 뽑아내는 곳으로 쓰기도 한다. 고기나 생선을 절이고 말리고 훈제할 때도 사우나에서 한다. 모임을 할 때도 사람들은 사우나를 함께하며넛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한다.
사우나에 가면 편안하게 몸을 풀 수 있다. 누구나 고단함이 풀릴 때까지 사우나에 머물 수 있다. 핀란드인들에게 사우나는 가장 중요한 일상 생활이자 살아 있는 민족 전통이다.
시수(Sisu)
핀란드 사람들은 다른 어느 나라 국민들보다 정직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그이들은 대개 조용하고 부끄럼을 많이 타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갖고 있는 시수 정신만은 매우 자랑스러워한다. 시수는 핀란드 사람들이 타고난 성질 또는 민족혼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수는 핀란드와 핀란드 사람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말이다.
시수는 핀란드 말 가운데 핀란드 사람들이 가장 훌륭하게 여기도, 또 좋아하는 말이라고 한다. 자신감과 용기, 인내심, 일을 잘해 낼 수 있는 능력과 결단력 같은 의미들이 '시수'에 담겨 있다.
어떤 사람이 시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가 배짱과 용기가 있고 강한 의지로 쉽게 포기하지 않으며, 오래 견뎌 내면서 뭔가를 꼭 해내고야 만다는 뜻이다. 비록 지금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언젠가는 스스로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견디는 것, 사람들이 대부분 포기한 뒤에도 남아서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 끝까지 싸우는 것. '시수'르르 가진 사람이 갖는 특징이다. 핀란드에서 '시수를 가지고 있으면 바위도 뚫을 수 있따'는 속담도 있다고 한다.
핀란드 사람들은 자신들이 시수를 가졌기에 매섭게 추운 겨울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2차대전이 남긴 아픔을 딛고 나라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뭔헨 올림픽에서 10킬로미터 달리기를 하다 넘어졌지만 일어나 끝까지 달려 세계 기록을 깨뜨린 라세 비렌이라는 육상 선수는 시수가 무엇인지 잘 보여 준다. 핀란드 작가 알렉시스 키비가 지은 소설 <일곱 현제들>에 나오는 유하니도 많은 시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글을 읽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그려지고 있다.
핀란드에서 시수라는 말은 생활 속에서나 문화 전반에서 두루 쓰이고 있다. 맛이 강한 사탕이나 밀고 나가는 힘이 센 자동차에 '시수'라는 상표가 붙기도 하고, '수오멘 시수'라는 핀란드 민족주의자 조직도 있다. 핀란드 사람인 베이까 구스타프손이 처음 발견한 남극의 산 이름도 '시수'라고 붙여졌다. 핀란드가 최근 눈에 띄게 발전하고, 뛰어난 교육 제도로 세계로부터 주목받는 것 역시 핀란드인들이 가진 시수 정신이 드러난 결과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시벨리우스(Sibelius)
핀란드의 작곡가인 요한 율리우스 시벨리우스 (1865~1957)는 1885년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헬싱키 음악원을 거쳐 1889년부터 1891년까지 베를린과 비엔나에서 공부했다. 시벨리우는 야르벤빠에서 아내 아이노 야르네펠트와 여섯 명의 딸과 함께 살았다.
시벨리우스는 교향곡 7개와 독창곡 100여 개에 이르는 많은 작품들을 썼다. 시벨리우스가 1892년에 완성한 <쿨레르보 교향곡>은 <칼레발라>라고 하는 민족 서사시 전설을 바탕으로 한 첫 번째 핀란드 음악이었다. 1899년에 완성한 교향시 <핀란디아>는 핀란드 독립을 열렬히 바라는 작품이다. <핀란디자>는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핀란드 사람들에게는 자랑스런 민족 정체성을 일깨우는 것이기도 하다.
삼포(Sampo)
사마포는 핀란드 신화에서 나온 말로 그 주인에게 부와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하는 마법의 물건이다. 삼포는 핀란드의 민족 서사시인 <칼레발라>에 나오는 대장장이 일마리넨이 포욜라의 여왕 로우히의 딸과 혼인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것이다. <칼레발라>에서는 삼포를 곡식이나 약재를 가루로 만드는 기계라고도 하지만 삼포가 실제로 어떤 물건인지는 뚜렷하지 않다. 이를테면 <칼레발라>를 채록한 엘리아스 뢴로트는 삼포가 신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하고, 야콥 그림은 스칸디나비아 신화에 나오는 물건과 비슷한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삼포는 오늘날에도 의미나 모습이 뚜렷하지 않고 때에 따라서 상상만 될 뿐이다.
그런데도 삼포는 '행운과 부를 가져다주는 어떤 것'이라는 의미로 지금껏 핀란드 사람들의 생활과 상상력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니까 행운과 부를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이든지 삼포라고 할 수 있따. 국제비교 연구에서 높이 평가받는 핀란드 교육 제도가 바로 삼포고, 전 세계에서 휴대폰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노키아도 삼포다.
삼포는 비록 지금 힘들지라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앞으로 잘되어 갈 것이라 믿는 핀란드인들의 정신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글 | 안승문
1983년부터 교단에 섰다가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 월간 <우리교육>을 창간했으며 서울시교육위원으로도
일했다. 2007년부터 스웨덴에 머물면서 북유럽 복지사회의 공교육을 공부했다. 지금은 '교육희망네트워크'와 '새로운학교네트워크'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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